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타이머] -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과연 타이머는 필요할까?

쭈니-1 2011. 3. 28. 11:17

 

 

감독 : 잭 쉐퍼

주연 : 엠마 콜필드, 존 패트릭 아메도리, 미셸 보스

 

 

나도 '타이머'가 필요했었다.

 

제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저는 사춘기 시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내게도 생애 단 한 번뿐인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 굳게 믿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언제 찾아올지 알수가 없어 답답했었습니다. 몇 년후에 찾아올 수도 있고, 아니면 몇 십년 후, 어쩌면 늙어서 죽기 바로 전일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는 이미 지나가 버렸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죠.

만약 그때 제가 [타이머]라는 영화를 봤다면 '나도 타이머가 필요해.'라며 울부짖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던 제 순진했던(혹은 바보같았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지금 저는 운명적인 사랑 따위는 믿지 않습니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순진한 사람들의 세상

 

영화 [타이머]는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제 사춘기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어른이었지만 순진하게도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고, 그러한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오는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에 집착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한 편으로는 그런 타이머가 정말 있다면 참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운명적인 사랑이 있다면 사랑했다가 이별하는 아픔도 없을 것이며, 결혼했다가 서로의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하는 경우도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세상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그러하듯이 편리한 면이 있는 반면 나쁜 점도 있습니다. 타이머에 너무 의지한 나머지 순수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타이머에 표시된 시간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되기도 합니다.

 

타이머를 믿는다면 이런 장점이...

 

흥미롭게도 영화 [타이머]는 디지털로 사람의 사랑을 정형화시키는 기계 '타이머'의 순기능과 악기능을 번갈아 보여줍니다.

'타이머'의 순기능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인 우나(엠마 콜필드)의 어머니입니다. '타이머'의 광신론자인 그녀는 첫 번째 남편이 운명의 상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운명의 상대를 만나 재혼합니다. 그리고 아주 이상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냅니다.

과연 그녀의 행복은 '타이머' 덕분일까요? 제 생각에는 '타이머' 덕분이라기 보다는 서로가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는 믿음 덕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나의 운명의 상대이다.'라는 전제아래 만남을 이어나가니 당연히 모든 것이 좋아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겠죠.

그러한 믿음은 비록 '타이머'에 의한 무조건적인 믿음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어차피 사랑이라는 것이 믿음을 기반으로 둔 것이니만큼 '타이머'에 의한 사랑 역시 또 다른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타이머' 덕분에 진정한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타이머 때문에 이런 경우도...

 

'타이머'의 광신론자인 어머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타이머'에 집착하게 된 우나. 그녀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 자신의 '타이머'로 인하여 서른이 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연애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에 빠집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것이 아닙니다.

'타이머'의 제작사는 '타이머'의 정확성을 강조하지만 이 세상 그 무엇도 100%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결국 우나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남자인 8살 연하의 마이키(존 패트릭 아메도리)와 '타이머'가 찍어준 남자인 댄 사이에서 당황하게 됩니다.

문제는 댄이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배 다른 동생인 스테프(미셸 보스)가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였다는 사실이죠. 결국 우나는 '타이머'의 때문에 스테프와의 관계도 서먹해지고, 마이키와도 헤어지게 됩니다. 만약 그녀가 '타이머'를 떼어 버리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상대인 마이키와 만남을 이어갔다면 그들의 엇갈린 관계는 발생되지 않았겠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과연 타이머는 필요할까?

 

영화를 보고나서 구피에게 물었습니다. '너에겐 타이머가 필요하니?' 그러자 구피는 필요하다는 답변을 하더군요. 하지만 만약 정말 '타이머'가 있다면 그래서 구피와 제가 착용을 했는데 우리 둘이 운명의 상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면 우린 우나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혼을 해야할까요?

사랑은 어차피 믿음입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된 사랑이라면 굳이 '타이머'에 의한 기계적으로 가공된 믿음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영화 [타이머]만 놓고 본다면 '타이머'라는 기계의 특이한 설정을 제외하고는 로맨틱 코미디의 뻔한 설정을 고스란히 밟아 나가는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타이머'라는 설정 하나로 영화는 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에서 살짝 비켜나가 꽤 효과적으로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더군요. 잭 쉐퍼 감독의 영특함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