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폴 해기스
주연 : 러셀 크로우, 엘리자베스 뱅크스
몰입도가 상당하다.
개봉 전부터 제겐 기대작이었던 [쓰리 데이즈]. 하지만 러셀 크로우, 리암 니슨(사실 우정 출연에 불과했지만...)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국내 개봉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극장에서 쓸쓸히 퇴장하였습니다.
[쓰리 데이즈]가 개봉 당시 [황해]와 더불어 극장에서 볼 1순위 영화로 손꼽았던 저는 그렇게 '어! 어!'하다가 [쓰리 데이즈]를 극장에서 놓치고 말았고, 천신만고 끝에 어제 비로서 영화를 보고 말았습니다.
[쓰리 데이즈]를 보기 시작한 시간은 밤 10시 30분.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이 2시간 10분이 넘는 꽤 긴 영화였기에 저는 일단 1시간 정도만 보고, 나머지는 나중에 이어서 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기 시작하니 중간에 도저히 영화를 끊어 버릴 수가 없더군요.
결국 다음날 출근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쓰리 데이즈] 보기를 마쳤고, 그 후유증으로 오늘 아침은 진한 커피로 피곤함을 달래고 있는 중입니다. ^^
내 아내가 살인자로 누명을 썼다.
[쓰리 데이즈]는 어느 행복한 삶을 살던 한 가정에 닥친 위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교수인 존(러셀 크로우)와 라라(엘리자베스 뱅크스)는 어린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존의 집에 경찰이 들어 닥쳤고, 라라는 살인 혐의로 끌려갑니다. 라라는 무죄를 주장하지만 모든 증거는 라라에게 불리한 상황, 더 이상 법으로 라라의 무죄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존은 라라를 탈옥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어찌보면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스릴러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영화는 상당히 독특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라가 누명을 쓴 살인 장면은 영화의 후반까지 자세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식입니다.
존이 라라를 탈옥시키기 위해 할리우드 범죄 영화 특유의 정교한 작전을 세울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것 역시 제 기대에서 어긋났습니다. 존의 계획은 그다지 정교하지 못했고, 오히려 허술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스릴러의 외형을 띤 이 영화가 정작 관심을 가진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존의 변화입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긴 러닝타임동안 폴 해기스 감독은 소심한 교수에 불과했던 존이 아내를 위해 어떻게 대담하게 변하는지 그 과정을 그려냅니다.
모두 믿지 않아도 난 믿는다. 왜냐하면 우린 가족이니까.
라라가 누명을 쓴 살인 장면이 영화의 후반까지 자세히 나오지 않음으로써 영화를 보는 저는 라라가 정말 범인인지, 아니면 누명을 쓴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존은 그녀의 무죄를 믿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녀가 죽였다고 가리키고 있지만 존은 라라의 무죄를 믿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족이니까요.
초등학생 시절 전 도둑으로 몰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농부가 길에 옷을 벗어두고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벗어놓은 옷에 돈이 없어진 것입니다. 당시 길에는 운동화 자국이 찍혀 있었고, 길에 찍혀 있는 운동화와 같은 운동화를 신었던 저는 선생님에게 불려가 추궁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너무 억울했지만 제 누명을 벗을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어렸고, 저를 추궁하던 선생님은 너무 무서워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제게 힘을 주신 것은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너무 순하셔서 동네에서도 큰 소리 한번 못 치시던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학교에 오셔서는 절 추궁하던 선생님에게 큰 소리로 난리를 치셨습니다. 어떻게 우리 착한 아들을 도둑놈으로 몰아 세울 수가 있느냐고... 저는 어머니가 그렇게 화내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네가 훔쳤니?'라고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겁에 질린 제 표정을 보시곤 아무 말 없이 절 믿으셨고, 그러한 어머니의 믿음 덕분에 저는 도둑이라는 누명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족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날 믿어주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가족인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믿음이 그들을 변화시켰다.
어쩌면 존은 당시 제 어머니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죽였어?'라는 질문 따위는 그에겐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가족이기에 그는 라라를 믿었고, 모두가 그녀를 살인자라고 손가락질해도 그만은 그녀의 무죄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믿음은 그를 변화시킵니다. 영화에 처음 보인 그의 모습은 소심한 학자였습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남에게 나쁜 소리 한번 못할 정도로 순둥이였습니다. 하지만 라라가 교도소에서 고통을 받고, 급기야 자살 시도까지 하자 그는 스스로를 변화시킵니다.
처음 가짜 여권을 만들려고 뒷골목 양아치에게 접근했다가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돈을 빼앗기는 장면을 보며 저는 존이 다시 그들을 찾아가 멋지게 복수할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베짱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아내의 탈옥과 도피 자금을 위해 총 한자루 들고 마약상의 집을 텁니다. 비록 서툴렀고, 그러한 서투룸은 결정적인 증거를 현장에 남겨 놓았지만 두려움을 꾹꾹 눌려 참으며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그의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존의 도피 계획을 알면서도 무표정한 모습으로 존을 격려하는 존의 아버지 역시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존과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그에게 존은 아들이었고, 자식의 행복을 비는 것은 모든 부모의 공통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여운이 남았다.
어쩌면 [쓰리 데이즈]는 제가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할리우드 특유의 정교한 액션 스릴러를 기대했지만 정작 영화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평범하다고 한다면 평범할 수 있는 존의 라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꽤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저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구피의 얼굴을 보며 '만약 내가 존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난 구피를 믿었을까?' 혹은 '내가 살인 누명을 쓴다면 구피는 끝까지 날 믿어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믿음을 받고 싶은 것은 모두의 소망이 아닐까요? '난 믿음을 주는 가족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늦은 새벽에 잠을 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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