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컨트롤러] - SF 액션? NO, 멜로? OK

쭈니-1 2011. 3. 4. 11:28

 

 

감독 : 조지 놀피

주연 :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개봉 : 2011년 3월 3일

관람 : 2011년 3월 3일

등급 : 12세 이상

 

 

[본 시리즈]와 [인셉션]이 만났다고?

 

극장에 가면 영화 시작 전 10여분 동안 나오는 CF들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항상 목동 메가박스, 아니면 목동 CGV를 이용하기에 제가 보는 CF들도 거의 똑같아서 CF가 나오면 저는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시작 10분 전에 언제나 극장 좌석에 미리 가서 앉는 이유는 영화 예고편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가끔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도 예고편을 보고 기대작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영화 예고편들은 우리말 더빙이 대세인가 봅니다. [월드 인베이젼]도 그렇고, [랭고]도 그렇고, [컨트롤러]도 그렇고, 익숙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영화를 소개하면 저는 무슨 80년대 영화 예고편이 생각나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중 가장 유치했던 것은 '맷 데이먼의 인생이 조작되고 있다.... [본 시리즈]와 [인셉션]의 만남...'이라고 유치찬란하게 영화를 소개했던 [컨트롤러]였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게... 예고편을 볼 때는 '아! 유치해. 무슨 영화를 저따위로 소개하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영화가 개봉했을 때는 '이 영화 재미있겠는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100%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본 시리즈]와 [인셉션]의 조화라면 그야말로 대박 영화임에는 분명했고, 거기에 왠지 신뢰가 가는 맷 데이먼과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리콜], [페이첵] 등의 필립 K. 딕의 원작이라면 극장가의 비수기라는 3월에 어울리지 않는 대박 영화 한 편이 탄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컨트롤러]는 뭐랄까... 제가 기대했던 SF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미리 밝혀둘 것은 [본 시리즈]와 [인셉션]의 조합을 기대하면 절대 안되며, 필립 K. 딕의 원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는 SF 요소보다는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에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컨트롤러]가 완전 재미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영화를 즐길려면 이 영화에 대한 제대로된 기대감을 갖고 극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잘 나가는 남자, 운명의 사랑을 만나다.

 

[컨트롤러]의 설정은 이러합니다. 브룩클린의 빈민가 출신이지만 핸섬한 외모와 강직한 성격으로 대중에 인기를 얻으며 상원의원 선거에서 거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는 노리스(맷 데이먼). 하지만 과거의 사진이 유출되며 지지도가 급하락하게 되고 그는 선거에서 패배를 하게 됩니다. 선거 패배에 절망하던 그에게 엘리스(에밀리 블런트)가 불쑥 나타나고, 노리스는 그녀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리스의 인생은 초현실적인 단체 조정국에 의해 조작된 것입니다. 우연히 조정국의 존재를 알게 된 노리스. 그는 조정국에 의해 제안을 받습니다. 절대로 엘리스를 다시 만나지 말것. 그의 인생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운명이었지만 엘리스를 만난다면 그의 운명은 뒤바뀔 것이라며 경고합니다. 

결국 노리스에겐 두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조정국이 조작하는 현실을 받아들여 미국의 대통령이 되거나, 아니면 조정국에 맞서 싸우며 엘리스의 사랑을 쟁취하거나. 여러분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자신의 야망이냐? 아니면 진실한 사랑이냐? 마치 착하디 착한 디즈니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러한 유치한 질문으로 [컨트롤러]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인 노리스의 선택은 뻔합니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 못된다고 할지라도 주인공은 사랑을 선택하고, 초현실적인 존재인 조정국과 그들이 설계한 자신의 운명에 대항하게 됩니다.

이후 [컨트롤러]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뻔한 스토리 전개를 보입니다. 특히 이 영화의 엔딩은 요근래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손발이 오글거립니다. 무슨 동화책에서처럼 마법에 걸린 공주가 왕자의 진실된 키스로 마법에서 풀리는 이야기도 아니고... [컨트롤러]의 엔딩은 아무리 후한 점수를 처주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트롤러]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대한 기대도를 살짝 낮추고([본 시리즈]와 [인셉션]의 조합을 기대한다면 100% 이 영화에 실망할 것입니다.)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본다면 [컨트롤러]도 나름 재미있는 설정과 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조정국... 너희들의 정체는 대체 뭐냐?

 

[컨트롤러]를 보기 전에 제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조정국이 한 사람의 미래를 조작한다는 설정의 허술함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환상특급'이라는 외화 시리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그래도 저는 몇몇 에피소드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사람의 인생이 기차를 갈아타는 것과 같다라는 설정에서 시작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어느 남자가 우연한 계기로 멈춰진 시간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 사람들은 초현실적인 존재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공간을 기차 칸을 바꾸듯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끔 실수를 하는데 우리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예상치못한 곳에서 찾게 되는 것은 그들이 옮기면서 실수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이유는 저 역시 분명 제자리에 뒀던 물건을 가끔 잃어버렸다가 시간이 흘러 다른 곳에서 찾는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이 에피소드의 이야기 구조는 허술합니다. 

 

조정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정국의 리차드슨이 노리스에서 설명합니다. 가끔 커피를 옷에 쏟는다거나, 열쇠가 안맞는다거나 한다면 그것은 조정국이 재설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그러한 부분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가끔 저 역시 무언가 초현실적인 존재가 어떤 일을 못하게 하거나, 어느 곳을 못가게 하려고 운명의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거군요.

하지만 '환상특급'의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제외하고는 조정국의 정체는 허술합니다. 미래를 배경으로 '어쩌면 저럴지도...'라는 제 상상력을 자극했던 필립 K. 딕 원작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컨트롤러]는 그러한 요소들이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하지만 시나리오에 잔뼈가 굵은 조지 놀피 감독은 허술할 수 밖에 없는 조정국의 실체를 그럴 듯하게 꾸며놓았습니다. 자유 의지에 의한 인간의 만행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인간의 자유 의지대로 행동하게 둔다면 지구를 파괴하고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조정국의 설명만으로 조정국의 허술한 실체는 오히려 흥미진진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배우들의 매력, 그리고 영화의 오랜 화두인 운명의 사랑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 될수도 있었던 조정국의 실체를 인간의 만행으로 두리뭉실하게 커버한 [컨트롤러]는 배우들의 매력으로 영화의 부족한 재미를 채워놓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구피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맷 데이먼은 참 신기하다고... 얼굴 하나하나를 뜯어놓고 본다면 결코 잘 생긴 얼굴이 아닌데 왠지 신뢰가 간다고... 저 역시 그러한 구피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언젠가는 변할지도 모를 사랑을 위해 자신의 야망을 포기하는 모습이 오히려 믿음직해 보였던 것은 맷 데이먼이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 [컨트롤러]의 발견이라면 에밀리 블런트입니다. 실패한 블록버스터 [울프맨], [걸리버 여행기]의 주연이었던 그녀는 [컨트롤러]에서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발산합니다. 초반엔 도발적인 매력을 선보이더니, 중반엔 사랑에 상처입은 가련한 여인이 되었다가, 후반엔 사랑의 힘으로 거대한 존재에 대항하는 당찬 여인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며 '참 매력적인 배우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러한 맷 데이먼과 에밀리 블런트의 매력은 유치하다면 유치할 수 있는 운명적인 사랑을 오히려 애잔하게 표현해냅니다. 운명이 갈라놓은 사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 애절합니다.

여기에 다시한번 조지 놀피 감독의 시나리오 실력이 발휘되는데 노리스와 엘리스의 사랑을 위해 조지 놀피 감독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축해 놓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을 잃은 노리스의 외로움을 엘리스를 향한 노리스의 집착으로 연결하는 부분, 노리스에 대한 죄책감으로 노리스를 돕는 조정국 요원 해리의 캐릭터 등.  최소한 조지 놀피 감독의 시나리오 실력 만큼은 인정하고싶어 졌습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가 사랑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랑 제일주의식 스토리 전개와 [컨트롤러]의 나름 재미있는 설정과 매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용서가 안되는 엔딩 장면은 [컨트롤러]를 다른 분들에게 추천하는데 조금 주저하게 만들지만, 액션, SF에 대한 기대도를 버리고 조금은 특별한 (예를 들자면 [시티 오브 엔젤] 식의...) 러브 스토리를 즐길 자세가 되어 있는 분이라면 [컨트롤러]는 의외의 재미를 안겨줄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장담컨데 이 영화의 액션은 뛰어다니기가 전부이고,

이 영화의 특수효과는 조정국이 사용하는 비밀의 문의 전부이지만,

운명을 뛰어 넘는 사랑 만큼은 '로미오와 줄리엣'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