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아이들...] - 범인보다는 부모의 마음을 더 헤아려라.

쭈니-1 2011. 3. 2. 08:45

 

 

감독 : 이규만

주연 : 박용우, 류승룡, 성동일, 성지루, 김여진

개봉 : 2011년 2월 17일

관람 : 2011년 2월 28일

등급 : 15세 이상

 

 

어린 아이들의 실종 영화는 보고 싶지 않았다.

 

2003년 9월 4일 구피의 뱃 속에서 아주 조그만 녀석 하나가 태어났습니다. 바로 웅이입니다. 그 순간 하루에 한 편씩 영화만 볼 수 있다면 이 세상 그 무엇도 필요없다는 철없는 낙천주의자였던 저는 아빠가 되었고, 아들을 위해서 영화 보기를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아빠가 되며 바뀐 것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뉴스를 보더라도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웅이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갑자기 차가 웅이에게 달려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제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 영화를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을 소재로 한 첫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은 봤지만 두번째 영화인 [그놈 목소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아이들...] 역시 보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2월 한달동안 열심히 영화를 보러 다녔지만 2월 28일이 사용기한 만기인 메가박스 영화 예매권이 한 장 남아 있었고, 회사에 퇴근하고 들른 극장에선 제가 안 본 영화라고는 [아이들...]과 [메카닉]뿐이었습니다.

극장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임스 스태덤 주연의 시원시원한 킬러 액션 [메카닉]을 보는 것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데 제 앞에서 영화표를 발권하던 두 커플이 연달아 [아이들...]의 표를 사는 것을 보고 저도 그만 얼떨결에 [아이들...]의 표를 끊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저는 긴장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1991년 실제로 일어난 다섯 아이들의 실종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 결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그 끔찍한 범죄가 바로 내 앞에 펼쳐질 것을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기 시작한 저는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모두 알고 있는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이규만 감독은 실제 사건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와 관객에게 영화적인 재미를 줘야 한다는 상업 영화로써의 타협 속에서 갈피를 못잡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지부조화에 빠진 교수, 출세에 눈이 먼 방송국 PD

 

영화의 시작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 선거로 임시공휴일이었던 그 날 도룡뇽을 잡겠다면 다섯 아이들이 산으로 갑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산으로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짧게 잡아내고, 곧바로 사라진 아이들의 부모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울고 불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찾겠다는 절실한 장면이 몇 장면 보이긴 하지만 꽤나 담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아이들을 잃어버리 부모들의 가슴 절절한 아우성으로 시작할 것이라 생각했던 저는 이 의외의 시작이 오히려 편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PD였지만 조작 사건으로 인하여 지방 방송국으로 좌천된 강지승(박용우)과 부모 중에 범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황우혁(류승룡) 교수를 내세워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를 이끌어 냅니다.

황우혁의 말대로 종호 아버지(성지루)와 종호 어머니(김여진)은 뭔가 수상했고,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강지승과 황우혁은 사건을 파해치며 아이들의 실종을 소재로한 가슴 절절한 드라마를 예상했던 제게 의외의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아시겠지만 황우혁의 주장과는 달리 종호네 집에서는 아이들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세운 가설을 통해 사건을 짜집기 했던 황우혁과 특종을 잡아 서울로 화려하게 컴백하려 했던 강지승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단어가 나옵니다. 황우혁이 대학 강단에서 아이들에게 강의하는 장면 중에서 인지부조화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이 믿었던 것이 거짓임이 밝혀졌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가설로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한다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그런데 황우혁이 바로 그러한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설로 인하여 종호 부모가 범인이라고 믿었던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종호네 집을 파해치지만 시체가 나오지 않자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가설을 내세우며 자신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망상에 빠진 것입니다.

놀랍게도 황우혁이라는 캐릭터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후에도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라는 책을 쓰며 여전히 자신의 가설을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도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다.(스포 포함)

 

종호 부모를 범인이라고 생각한 황우혁 해프닝은 실화에 대한 리얼리티와 영화적 재미 사이에서 완벽한 줄타기에 성공하였습니다.

[아이들...]이 개봉하기 전,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도 바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방영했고,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개봉 첫 주 현빈 열풍을 내세운 [만추]와 개봉 둘째주 아카데미 열풍울 내세운 [블랙 스완]을 물리치고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낸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황우혁 해프닝으로 2시간 러닝 타임을 채우기엔 부족했으며, 이규만 감독은 후반부를 채울 뭔가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찾아낸 것은 [살인의 추억] 식의 스릴러적 요소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강지승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출세를 위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범인을 잡고 싶다는 생각에 실종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박경식(성동일)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범인으로 충분히 의심이 갈만한 용의자를 알게 되고 몰래 그의 뒤를 쫓습니다. 

그러한 부분은 스릴러적인 재미를 극대화 시키는 장치인데 실제로 강지승이 용의자를 뒤쫓으며 벌어지는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장되며 섬뜩했습니다.

 

발견된 아이들의 유골에서의 증거와 박경식의 심증으로 촉발된 이 후반부의 장면은, 중반부까지 이 영화가 실제 사건 묘사에 충실했기 때문에 더욱더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부분입니다. 아예 [살인의 추억]처럼 실제 사건은 영화의 소재로만 사용하고 영화 자체는 픽션으로 이루어 졌다면 [아이들...]의 후반부 장면은 스릴러적 요소로 꽤 괜찮은 장면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살인의 추억]과는 달리 중반부까지 실제 사건을 충실하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서는 갑자기 범인으로 의심되는 캐릭터를 내세워 놓고 마치 황우혁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스스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고 아예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아이들...]은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고, 이 영화를 통해 일명 '개구리 아이들 실종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난 현재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반부의 장면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이 영화가 미해결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만큼 영화 자체에서도 범인 제시보다는 미해결로 끝맺음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아이들을 부모들에 대한 예의이고, 이 영화를 통해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관객에게 올바른 판단력을 제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야만 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어차피 [아이들...]은 상업 영화이고, 영화적인 재미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황우혁 해프닝 만으로는 뭔가 부족했고, 게다가 비슷한 장치를 통해 흥행에 대성공한 [살인의 추억]의 성공 사례도 있었으니, 범인을 잡고 싶다는 관객의 욕망을 이용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황우혁 해프닝과 범인을 잡고 싶은 관객의 심리를 이용한 스릴러 놀이에 빠져 있는 동안 소외된 것이 있으니 바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이들...]은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다루며 놀랍게도 철저하게 아이들의 부모를 배제시킵니다. 초반엔 황우혁이 주인공처럼 등장하여 영화를 이끌더니 후반부엔 아예 강지승이 범인을 쫓는 영웅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황우혁에게 범인으로 지목된 종호 부모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아이들의 부모는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종호 부모도 마찬가지인데, 아들을 잃고, 범인으로 지목까지 받아야 했던 종호 부모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좀 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짧은 장면이지만 '우리 아들이 다들 죽었다고 생각하는 가보다.'라며 눈물짓는 종호 아버지와 세상 사람들이 사라진 아이들 사건을 잊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범인으로 오인받을 행동을 한 것을 실토하는 정호 어머니의 마지막 대사의 울림이 이 영화의 그 어떤 장면보다 뜨겁고, 슬펐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영화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범인을 내세우는 짓거리보다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절절한 모습에 좀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덕분에 저는 아주 편하게 영화를 봤습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아픈 심정을 느끼며 영화를 보게 될줄 알고 영화를 보기 전부터 잔뜩 긴장했는데, 적절하게 유머를 섞은 캐릭터들과 스릴러적 요소, 그리고 최대한 배제된 부모들의 절절함 덕분에 영화는 편하게 봤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는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만이 남아 버렸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아픔보다 아이를 잃은 아픔이 크다는 것을

부모가 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의 실제 부모의 마음 역시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던 사회가 밉고,

이러한 사건을 그 동안 쉽게 잊고 지냈던 내 자신이 죄송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