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아이 엠 넘버 포] - 후반부의 짜릿함을 위해 지루함을 견뎌라.

쭈니-1 2011. 2. 25. 14:31

 

 

감독 : D.J. 카루소

주연 : 알렉스 페티퍼, 디애나 애그론, 티모시 올리펀트, 테레사 패멀, 캘런 매컬리피

개봉 : 2011년 2월 24일

관람 : 2011년 2월 24일

등급 : 12세 이상

 

 

외계에서 온 초능력자를 만나다.

 

저는 2월에 쉴새없이 영화를 보고 있지만  구피는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며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2월에 구피와 함께 본 영화는 [생텀]과 [언노운]뿐. 구피의 영화 취향에 딱 맞는 영화는 이 두 편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구피가 2월 24일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구피의 취향에 딱 맞는 영화인 [아이 엠 넘버 포]가 개봉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블랙 스완]을 먼저 보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영화에 대한 기대로 눈망울이 똘망해진 구피의 그 표정을 배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이번 주 개봉작으로 [블랙 스완]와 [더 브레이브]를 먼저 기대작으로 꼽았지만 제게도 [아이 엠 넘버 포]는 기대가 되는 영화이긴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외계에서 온 초능력자가 지구에서 인간들 틈에서 생활하며 지구인을 위협하는 악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외계에서 온 초능력자라는 캐릭터에서 [슈퍼맨]이 떠올랐으며, 9명의 초능력자가 차례로 죽임을 당한다는 설정에서 [점퍼]가 생각났고, 넘버 포(알렉스 페티퍼)가 새라(디애나 애그론)와 사랑에 빠지다는 부분에서는 [트와일라잇]이 엿보였습니다.

최근 잔잔한 영화를 주로 봤던 저는 [아이 엠 넘버 포]를 통해 오랜만에 할리우드 SF영화의 시원시원한 액션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으로 보기 시작한 [아이 엠 넘버 포]는 중반까지 제게 실망감을 안겨줬습니다. 시원시원한 액션을 기대했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것은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였습니다. 액션은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제가 기다렸던 액션은 영화가 끝나기 30분 후에나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터진 액션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영화의 '2/3'가 재미없었지만, 마지막 '1/3'이 재미있어서 속편이 기대되는 영화... [아이 엠 넘버 포]의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점퍼]로 시작해서 [트와일라잇]으로 넘어가다.

 

영화의 시작은 제 예상대로 였습니다. [아이 엠 넘버 포]는 넘버 쓰리의 죽음으로 시작하는데 케냐의 밀림에서 숨어 지내던 넘버 쓰리는 한 밤중의 습격으로 잔인하게 죽음을 당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앞에서도 언급한 [점퍼]와 닮았습니다. [점퍼]는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점퍼'와 그러한 공간 이동 능력을 범죄에 사용하는 '점퍼'를 없애는 임무를 지닌 팔리딘의 대결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점퍼'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공간 이동 능력 때문에 팔라딘에게 쫓기고 목숨을 위협받게 됩니다.

[아이 엠 넘버 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가도어인의 침략으로 멸망한 로리언 행성의 아홉명의 어린 초능력자가 지구로 숨어듭니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지구까지 쫓아온 모가도어인들에게 잔인하게 죽음을 당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넘버 포는 자신이 왜 쫓겨야 하는지, 자신의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릅니다. 자신의 수호 전사인 헨리(티모시 올리펀트)에게 마지막 남은 로리언인으로써의 운명을 듣지만 그에겐 그저 귀찮은 잔소리일 뿐입니다.

 

[점퍼]의 데이빗(헤이든 크리스텐슨)과 마찬가지로 넘버 포는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에 불과한 것입니다. [점퍼]의 데이빗이 자신의 공간 이동 능력으로 개인적인 욕망을 채웠듯이 넘버 포 역시 영웅적인 사명감 따위에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이 엠 넘버 포]는 변화를 줍니다. 바로 새라의 등장입니다. 로리언인은 인간과 달리 평생 단 한번만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헨리의 부연 설명처럼 새라에게 사랑을 느낀 넘버 포는 새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능력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로리언인을 몰살시키고 그 다음 차례로 지구 정복을 계획 중인 모가도어인과의 전투를 선언한 것입니다.

꽤 자연스러운 전개입니다. 영웅적인 사명감 따위는 없었던 넘버 포가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과정을 [아이 엠 넘버 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영화 속에 펼쳐 놓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그러한 전개 덕분에 넘버 포의 캐릭터는 완성되었지만 시원시원한 액션을 기대한 관객들에겐 예상치 못한 지루함을 안겨준 것입니다.

 

 

[트와일라잇]의 손발이 오글거리는 재미... 여기에도 있다.

 

넘버 포가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과정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영화의 중반까지 펼쳐진 [아이 엠 넘버 포]의 전개는 너무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의 룰을 쫓아가기만 합니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새라의 캐릭터부터가 그러한데 그녀는 학교의 퀸카였고, 역시 학교의 킹카이며 풋볼 선수의 전 애인이기도 합니다. 이 풋볼 선수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이 취미인데(왜 아니겠습니까?)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전형적인 왕따인 샘(캘런 매컬리피)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미국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보면 거의 이러한 틀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도 [트와일라잇]은 이러한 틀에 얽매이지 않았는데 [아이 엠 넘버 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남자와 보통 여자의 사랑이라는 [트와일라잇]과 비슷한 스토리 전개 안에 하이틴 로맨스의 전형성을 차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형성은 [아이 엠 넘버 포]의 재미를 상당 부분 갉아 먹는데, [트와일라잇]의 손발이 오글거리는 로맨스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이 영화의 넘버 포와 새라의 사랑 이야기는 '내가 겨우 이걸 보기 위해 [블랙 스완]을 미루고 극장에 달려왔단 말인가?'라는 생각까지 들게했습니다.

 

이 영화의 초반에서부터 중반까지가 제가 얼마나 지루했는지 단적인 예를 들자면 후반의 액션이 펼쳐지기 전까지 전 [아이 엠 너버 포]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마을의 축제에서 넘버 포와 새라가 함께 들어간 유령의 집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령의 집보다 훨씬 무서운 작은 미국 도시의 유령의 집은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장면들이 집결되어 있어서 영화를 보며 깜짝 깜짝 놀라게 하더군요.

그 전까지 영화의 진행이 너무 지루해서 영화를 보는 제 자세도 한껏 풀어져 있었는데 이 유령의 집 장면 덕분에 다시금 긴장감의 끈을 바짝 조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유령의 집 장면은 어쩌면 하이틴 로맨스의 뻔한 설정(놀이공원에서의 데이트, 여주인공의 위기,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구출함)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D.J. 카루소 감독은 영리하게도 그러한 뻔한 설정을 이용하여 비로서 자신의 능력을 깨닫는 넘버 포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본격적으로 후반부에 접어드는데 [아이 엠 넘버 포]의 진정한 재미가 시작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후반부를 위해 난 그 지루한 전, 중반부를 참아야만 했나보다

 

[아이 엠 넘버 포]는 마치 후반부를 위해 모든 잔뜩 벼르고 별렀던 영화인 듯이 보입니다. 지루했던 전, 중반부에서도 간간히 출연하여 그 넘쳐나는 포스를 보여줬던 넘버 식스(테레사 패멀)와 초반에 넘버 쓰리를 죽이며 잠깐 악명을 펼쳤던 모가도어인, 그리고 넘버 쓰리의 수호 전사를 죽인 비밀에 쌓인 외계 괴물 등등 중반까지 꼭꼭 숨겨뒀던 것들이 후반부에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특히 저는 넘버 식스에 환호했는데 유난히 여성 전사를 좋아하는 저는 여성 전사의 대명사인 안젤리나 졸리의 포스를 뛰어 넘는 테레사 패멀의 관능적인 자태가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대폭발을 온 몸으로 막아내는 넘버 식스의 S라인은 정말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 외에도 초반 잠시 스치듯 보여줬던 외계 괴물의 존재는 중반엔 커다란 콘테이너의 흔들림만으로 저를 감칠 맛 나게 하더니 후반부엔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대한 괴물 날다람쥐를 연상하게 하는 괴물의 모습을 보며 저는 '그래, 내가 기대했던 것이 바로 이거였어.'라고 환호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마치 '아이언맨'을 연상시키는 넘버 포의 능력, 강력한 여전사 포스의 넘버 식스, 게다가 왕따 학생에서 어느새 실종된 아빠를 찾는 주요 조연 캐릭터로 급부상한 샘까지...

영화의 후반부는 할리우드 SF영화의 볼거리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여기에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속편을 예고합니다.

이제 넘버 포는 넘버 식스와 샘과 함께 나머지 동료인 넘버 파이브, 넘버 세븐, 넘버 에잇, 넘버 나인을 찾아 나설 것이며, 넘버 식스의 등장만으로 활기를 되찾은 이 영화는 나머지 멤버들이 속속들이 합류를 한다면 얼마나 더 재미있어질지 저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중반까지 재미가 없었다면 그 영화는 더이상 회복 불능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 엠 넘버 포]는 중반까지 재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고, 시원시원한 후반부 덕분에 극장을 나서며 '재미있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1편보다 더욱 재미있을 것이 확실한(꼭 확실해야함)2편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록 스타급 연기자의 부재로 이 영화의 흥행이 폭발적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꼭... 2편은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

 

 

넘버 포보다 매력적인 넘버 식스...

그렇다면 그 다음 멤버들은 넘버 식스보다 매력적이길...

2편을 기다릴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