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언노운] - 특별하지는 않지만 할리우드 액션스릴러의 재미를 갖춘...

쭈니-1 2011. 2. 22. 10:56

 

 

감독 : 하우메 콜렛 세라

주연 : 리암 니슨, 다이앤 크루거, 제뉴어리 존스

개봉 : 2011년 2월 17일

관람 : 2011년 2월 21일

등급 : 15세 이상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해서라면 구피는 열정적이다.

 

솔직히 요즘 너무 많은 영화를 봤습니다. 기대작이 많이 개봉하기도 했지만 구피가 사준 메가박스 영화 예매권 10장의 사용 기한이 2월까지여서 쉬지 않고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메가박스 영화 예매권은 6장이나 남았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주중에 7시에 퇴근해서 9시까지 웅이와 놀아주고 10시에 영화를 보러가서 12시에 집에 들어오는 일정을 반복하다보니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직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언노운], [아이들...], [그대를 사랑합니다]) 월요일 만큼은 아무 생각없이 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평소엔 '피곤해!'라며 극장가는 것을 거부했고, 급기야 메가박스 영화 예매권 10장을 쥐어주며 '혼자 실컷 봐!'라고 이야기하던 구피가 퇴근한 제게 [언노운] 상영 시간표를 물으며 관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피는 [언노운]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구피와 저는 영화 취향이 일정 부분이 겹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다르기도 합니다. 저는 잔잔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을 즐깁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보는 것보다 극장에서 보면 영화의 잔잔함에 더욱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여운이 깊게 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도 놓치고 싶지 않고, 아직 제게 코딱지만큼 남아 있는 동심을 유지시켜 주는 애니메이션과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멜로 영화도 극장에서 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피는 오로지 판타지, SF와 액션입니다. 액션도 잔인한 액션이 아닌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언노운]은 구피의 취향에 딱 맞는 영화인 셈이죠.(구피는 현재 [아이 엠 넘버 포]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암튼 그러한 구피의 기대에 맞춰 '오늘은 쉬어야지.'라는 계획을 취소하고 다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피곤에 절어 구피와 함께 쌍하품을 연달아 발사했지만 영화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너무 하품을 해서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구피... 하지만 영화가 재미있었다며 웃는 모습을 보니 자칭 영화광인 저와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내가, 내가 아닌 이상한 세상

 

[언노운]의 시작은 흥미진진했습니다. 마틴(리암 니슨)과 리즈(제뉴어리 존스)는 의학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독일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실수로 공항에 가방을 놓고 온 것을 안 마틴은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하다 사고를 당하고 4일간 의식을 잃게 됩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마틴. 아내인 리즈를 찾아가지만 리즈는 마틴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낯선 남자가 리즈의 곁에서 자신의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 마틴마저도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처음 [언노운]을 보며 가장 먼저 기억이 난 영화는 줄리안 무어 주연의 [포가튼]이었습니다. 비행기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던 텔리(줄리안 무어). 그런데 어느날 아들에 대한 흔적이 모두 사라졌음을 발견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텔리에게 그녀의 아들에 대한 기억은 그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텔리는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녀는 아들의 사라진 흔적에 대한 비밀을 혼자의 힘으로 풀어 나갑니다.

 

[언노운]과 [포가튼]의 공통점은 자신의 기억에 대한 혼란입니다. 분명 모든 것을 뚜렷하게 기억하는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모두 환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에 대한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만큼 조작되기 쉬운 것도 없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본 사실만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기억을 갖게 되는 것이죠. 결국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고 있는 셈입니다.

[언노운]과 [포가튼]은 바로 그러한 기억에 대한 맹점을 이용합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다보니 당연히 주인공의 기억에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죠. 주인공의 기억이 과연 맞는 것일까? 그러한 의심은 스릴러의 반전과도 효과적으로 맞물리게 됩니다.

그러나 [언노운]과 [포가튼]은 중반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언노운]이 기억의 조작을 액션 스릴러로 풀어 나간다면 [포가튼]은 뜬금없는 SF 장르로 변신을 시도합니다. 

 

 

[테이큰]이 되고 싶었던 [언노운]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는 마틴. 그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사고의 후유증이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자신을 죽이려 하는 괴한의 습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입니다.

이후부터 [언노운]은 [테이큰]을 뒤쫓습니다. 자신을 '닥터 마틴 해리스'라고 소개했던 마틴. 하지만 그의 행동은 '닥터'가 아닌 '스파이' 수준의 액션을 선보입니다.

여기에 마틴이 사고를 당했을 당시 택시 운전을 했던 지나(다이앤 크루거)는 덤입니다. 이런 류의 액션 스릴러에서 남자와 여자를 짝지워 함께 쫓기게 만드는 것은 거의 공식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틴이 괴한에게 쫓기며 현란한 운전 솜씨를 보여주는 장면은 [언노운]이 액션 스릴러라는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는 명장면입니다. 이렇게 [언노운]은 착실하게 [테이큰]의 뒤를 쫓습니다.

 

사실 [언노운]이 [테이큰]의 뒤를 쫓는 것은 감독으로써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리암 니슨은 [쉰들러 리스트], [마이클 콜린스] 등을 통해 연기파 배우로 명성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그런 연기파 배우인 리암 니슨이 아닌 [테이큰], [A 특공대]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날렵한 액션을 선보였던 리암 니슨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데 리암 니슨의 대표작이 뭐지?'라고 묻는 구피에게 저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분명 리암 니슨을 연기파 배우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가 주연한 영화는 [테이큰]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노운]은 바로 그러한 리암 니슨의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언노운]은 기억의 혼란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로 시작해서 곧바로 엄청난 음모에 맞서는 한 남자의 액션으로 방향을 틉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영화적 재미 측면에서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전은 그리 어렵지 않다.(스포 주의)

 

[언노운]은 인터넷 광고에서 '스포일러 주의'라며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분들의 리뷰를 아주 살짝 봤는데(제목만) 반전이 좋았다는 분들도 계시고, 억지 반전이라는 분도 계시더군요. 이럴 경우 저는 또 영화를 보며 반전 알아맞추기 전투 태세에 돌입합니다.

일단 이 영화의 반전의 포인트는 리즈가 마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리즈의 기억이 조작되었거나 마틴의 기억이 조작되었다는 두가지 가능성으로 압축됩니다. 과연 누구의 기억이 조작되었을까요?

여기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마틴이 찾아간 전 동독 비밀 경찰 출신의 요르겐이라는 남자입니다. 그는 마틴에게 말합니다. 음모를 꾸민 자들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자동차 사고까지 알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것은 곧 마틴이 당한 자동차 사고는 우연한 사고이고, 그러한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 모든 것들이 조작될 수 밖에 없었음을 시사합니다.

 

요르겐의 친절한 힌트 덕분에 저는 이 영화의 반전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마틴의 제임스 본드 버금가는 운전 솜씨에 제 추측을 기정사실화 시켜줬습니다.

사실 리즈의 기억이 조작되었다는 것은 너무 억지였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확실해 집니다. 마틴의 기억은 조작되어 졌고, 마틴 역시 음모의 일부였지만 마틴의 사고로 인하여 모든 계획이 헝클어진 것입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의 반전이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전 강박증에 걸린 억지 반전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포가튼]의 반전을 보며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전 그런 억지 반전보다는 차라리 쉬운 반전이 좋습니다.)

이렇게 [언노운]은 특별한 재미를 지닌 영화는 아니었지만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로써의 공식에 충실하며 최소한 기본 이상의 재미를 주는 킬링타임으로 딱 알맞은 영화였습니다. 최근 [127시간], [만추]등을 보며 영화적인 재미보다는 작품성 위주로 영화를 감상했는데 오랜만에 영화적 재미로 채워진 영화를 보고나니 뭔가 뿌듯한 생각까지 드네요.

 

 

그래, 부수고, 때리고, 달려라.

그것이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의 진정한 재미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