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만추] - 현빈보다는 탕웨이를 위한 영화이다.

쭈니-1 2011. 2. 21. 07:58

 

 

감독 : 김태용

주연 : 탕웨이, 현빈

개봉 : 2011년 2월 17일

관람 : 2011년 2월 18일

등급 : 15세 이상

 

 

요즘 대세는 현빈이다.

 

'이 세상 모든 영화를 보고 말테닷!'이라는 제 블로그의 모토를 나름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드라마는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드라마에 한번 빠지면 매주 2시간씩 최소한 20주 이상의 시간이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제가 드라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렸을 적에는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를 비디오 테잎에 녹화해 놓고 보고 또 봤을 정도로 저도 한때는 드라마 매니아였으니까요.

드라마라는 것이 참 매력적입니다. 일단 캐릭터 구축이 영화보다 탄탄합니다. 2시간 안에 모든 것을 끝마쳐야 하는 영화와는 달리 드라마는 아주 서서히 캐릭터를 구축하며 이야기를 고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영화보다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도 쉽게 잘 되는 편입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를 보면 좀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출생의 비밀은 거의 모든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 같고, 결혼한다고 하면 왜 한 쪽 부모들은 꼭 반대를 해야 하며, 왜 여 주인공은 캔디 같은 인물이어야 하는지, 요즘은 드라마 작가하기 참 쉽다라는 생각이 드는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더군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드라마를 멀리하기 시작했던 제가 최근에 흠뻑 빠졌던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시크릿 가든'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하지원이 출연한다고 해서 4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가 있어서 케이블 TV의 재방송으로 보고 또 봤을 정도입니다.

'시크릿 가든'의 매력은 재벌 3세와 평범한 스턴트 우먼의 사랑이라는 막장 드라마의 기본 설정 위에 남녀의 몸이 서로 뒤바뀐다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섞어 놓고, 그 속에서 캐릭터를 맘껏 비틀며 웃음과 감동을 줬다는 점입니다.

암튼 그러한 '시크릿 가든'덕분에 현빈은 대세남이 되어 버렸고, 그가 출연한 두 편의 영화 [만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부족한 영화의 흥행성과는 별로 관객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제가 [만추]를 본 이유는 현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저는 '시크릿 가든'을 보며 현빈보다 하지원에 열광했습니다.) 그저 [색, 계]의 탕웨이가 한국 영화에 출연했다는 소식에 오래 전부터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대세남 현빈 덕분에 여성 관객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홀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현빈보다는 탕웨이를 위한 영화이다. 

 

금요일 밤에 극장을 가득 채운 여성 관객들이 [만추]에 바라는 것은 아마도 단 한가지였을지도 모릅니다. 현빈의 멋진 모습을 보는 것.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에 이곳 저곳에서 영화에 대한 만족감보다는 '이게 뭐야?'라는 투덜거림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만추]는 현빈을 멋지게 포장할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저는 이 영화의 포커스가 현빈이 아닌 탕웨이에게 맞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제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만추]는 시작부터 가정 폭력을 당한 듯한 애나(탕웨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그녀는 곧 무언가 잊은 듯이 서둘러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그녀의 집에는 그녀의 남편인 듯 보이는 한 남자가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오프닝부터 애나가 감옥에 간 이유를 짧게 압축하여 보여준 이 영화는 그 이후에도 철저하게 애나를 위주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감옥에서 7년 만에 특별 휴가를 나오고, 버스에서 훈(현빈)이라는 낯선 남자를 만나고,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어머니의 식당과 집에만 관심이 있는 오빠와 언니의 모습을 보게 되고...

 

애나의 캐릭터 묘사는 영화전반에 걸쳐 서서히 완성되어 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기대했던 훈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미완성인 상태에서 시작하여 미완성인 상태로 끝을 맺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애나이고, 훈은 애나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애나가 왜 남편을 죽였는지는 자세하게 설명되지만 훈이 왜 미국에 건너와서 자신의 몸을 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애나가 서서히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훈을 사랑하는 과정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돈을 위해서 몸을 파는 훈이 왜 애나에게 집착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한 이유는 훈이라는 캐릭터를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애나에게 촛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멋진 현빈을 기대하며 [만추]를 본 관객이라면 당연히 이 영화는 캐릭터가 이해도 되지 않는 따분한 멜로 영화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을 돌려 훈이 아닌 애나를 중심으로 영화를 관람한다면 애나가 서서히 변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 어떻게 마음의 문을 열었는가?

 

처음 특별 휴가를 위해 감옥을 나선 애나의 표정은 그저 무표정하기만 했습니다. 7년 만에 감옥 밖으로 나선 것에 대한 기쁨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그녀의 얼굴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죽음과 7년 간의 감옥 생활이 그녀에게 감정이라는 것을 앗아가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버스에서 훈을 만납니다. 자신과는 달리 감정 표현이 확실한 그는 적극적으로 애나에게 말을 겁니다. 속된 표현으로 작업을 거는 것이죠. 애나는 그런 그를 애써 외면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문제로 오랜만에 집에 들린 애나. 하지만 그곳이 그녀에게는 불편하기만 합니다. 그녀는 밖으로 나와 옷도 사고, 화장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 버립니다. 다시 감정을 갖고 싶어도 그러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사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탕웨이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은 마치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오히려 제겐 그녀가 하는 많은 말들이 느껴졌습니다. 그녀의 슬픔, 그녀의 아픔이 굳게 다물어진 그녀의 입에 막혀 밖으로 튀어 나오지 못했지만 그녀의 표정만큼은 그러한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너무나 아프고, 슬프고, 무섭다고... 그녀의 무표정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훈과의 만남은 그러한 의미에서 애나에게 중요한 사건입니다. 남편을 살인했다는 애나의 과거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애나의 미래에 별다른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는 훈. 사실 그는 돈을 주면 사랑을 파는 남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애나의 과거도, 미래도 관심이 없었을런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애나에겐 힘이 되었습니다.

훈과의 만남은 애나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오리 버스를 타고 시애틀을 관광하고, 낡은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면서 그녀의 태도가 점점 소극적에서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특히 범퍼카에 앉아 서로 싸우는 남녀를 바라보며 그들의 대화를 상상력으로 지어내는 장면은 매우 중요한데, 처음엔 훈 혼자 하지만 나중엔 애나까지 끼어듭니다. 애나가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스스로 입을 여는 장면입니다.

그러한 훈과의 만남으로 애나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훈과 싸움이 붙은 왕징에게 울부짖는 장면은 비로서 애나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장면입니다. 결국 그녀는 훈을 사랑했다기 보다는 훈에게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애나를 중심으로 영화를 봤다면 이렇게 중요한 장면도 훈을 중심으로 영화를 본다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서 애나가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장면인 범퍼카에서의 장면은 갑자기 연극적인 장면으로 변합니다. 서로를 향해 말다툼을 하던 남녀는 서로를 향해 춤을 추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분명 훈을 중심으로 본다면 매우 어색하고 생뚱맞은 장면입니다. 그러나 애나를 중심으로 놓고 본다면 이전과는 사뭇다른 영화의 분위기로 이 장면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김태용 감독의 노력이 물씬 풍겨나는 장면인 셈이죠.

한가지 더 예를 들자면 드디어 애나가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애나를 중심으로 본다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명장면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슴 속 깊이 꾹꾹 눌러버렸던 감정이 한 순간에 폭발하며 탕웨이의 연기가 빛을 발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린 관객이 꽤 계셨습니다. 그것은 왕징과의 싸움의 이유에 대해서 '그가 내 스푼을 썼기때문'이라고 어이없게 둘러댄 훈 때문입니다. 훈을 중심으로 영화를 본다면 애나가 감정을 폭발시키고 울음을 터트린 이유가 고작 스푼 때문인 셈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스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애나의 감정 폭발의 계기를 훈이 마련해줬다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후반부에 갑자기 훈에게 관심을 돌린 김태용 감독의 선택입니다.

중반까지 애나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서며 갑자기 훈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물론 [만추]가 멜로 장르에 속하는 영화이고, 여주인공만큼이나 남주인공이 중요한 영화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러한 훈에 대한 영화의 관심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려면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습니다. 처음엔 훈을 애나의 억눌린 감정을 폭발하게 하기 위한 캐릭터로만 이용하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훈의 매력을 부각시키고, 마지막 장면에선 훈과 애나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한 것은 조금 무리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훈은 그저 재미로 혹은 자신에게 냉정한 애나에게 자존심이 상해서 애나의 곁에 있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나가 감정을 폭발하도록 도와주고, 아무 책임감 없이 출옥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2년 후 그러한 약속을 한 것조차 잊어버린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더욱 깔끔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그렇다면 현빈을 위해 이 영화를 택한 관객들에게 더욱 원성을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훈이 애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이해되지 않는 무리한 설정은 피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뭐 그렇다해도 [만추]는 상처입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담아낸, 제겐 꽤 여운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만추]는 애초에 현빈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현빈에 대한 기대를 조금 덜어내고 애나를 중심으로 영화를 본다면,

상처받은 한 여성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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