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127시간] - 낙천적인 생각의 힘을 믿어라.

쭈니-1 2011. 2. 18. 11:16

 

 

감독 : 대니 보일

주연 : 제임스 프랑코

개봉 : 2011년 2월 17일

관람 : 2011년 2월 17일

등급 : 15세 이상

 

 

낙천적인 생각의 힘을 믿는가?

 

저는 상당히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사회에 나와서 고졸 학력으로는 밥벌어 먹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저는 좌절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래? 그럼 나도 대학을 나오면 되지 뭐.'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1년간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4년제 대학은 아니지만 2년제 대학에 입학하고 기여코 졸업하고 말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IMF로 1년간 취업이 되지 않을 때도 저는 좌절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놀아보겠어?'라는 생각으로 정부에서 청년 실업 대책으로 내세운 정보화 근로사업에 참가하며 1년 동안 정말 신나게 놀았습니다. 처음으로 다니던 직장 사정이 어려워 권고퇴직을 당했을 때에도 저는 1년 간 제가 좋아하는 영화 실컷 보며 제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백수 생활을 만끽했습니다.

가끔 제 친구들은 제게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내일을 위해 오늘 자신을 혹사시키는 삶보다는 내게 주어진 생활 속에서 오늘을 즐기는 법을 언제나 찾아냈습니다. 제가 구피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구피는 언제나 내일을 준비하는 편이고, 저는 오늘을 즐기는 편이니까요. 구피 덕분에 저는 오늘을 즐기면서도 내일이 준비되어 있는 셈입니다. ^^;

 

[127시간]을 봤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홀로 블루 존 캐넌 등반을 나선 아론(제임스 프랑코)은 사고로 암벽에 팔이 짓눌려 고립되고 맙니다. 그가 블루 존 캐넌에 갔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상황. 이대로 있다간 아론은 꼼짝 없이 암벽에 팔이 짓눌려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서 암벽에 깔린 자신의 팔을 잘라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솔직히 이러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는 영화들은 뻔합니다. 온갖 역경이 있을 것이고, 그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의 영웅적 생존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더욱더 그러한 스토리 구조를 보일테죠.

그런데 [127시간]은 그러한 제 예상을 보기 좋게 뛰어 넘었습니다. 암벽에 팔이 짓눌린 아론에겐 역경이 없었습니다. 살고 싶다고 발버둥 칠 것으로 보였던 그는 오히려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캠코더를 보고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자신이 처한 이 상황에 울부짓기 보다는 여유를 잃지 않으며 낙천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낙천적인 대처는 삶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고 결국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그가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라고 절망했다면 살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이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칼로 자신의 팔을 자르는 것보다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것이 훨씬 쉬웠을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낙천적인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이 영화 변화무쌍하다.

 

[127시간]은 시작부터 독특했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은 빠른 편집과 화면 분할, 그리고 경쾌한 음악으로 블루 존 캐넌으로 여행을 떠나는 아론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그러한 이 영화의 초반은 마치 내 자신이 신나는 여행을 떠는 것처럼 제 어깨를 들썩이게 하더군요. 아론이 여행 도중 길을 잃은 여성들과 만나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면은 '우와! 나도 저기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아론이 겪게될 고난의 127시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의 초반이 경쾌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쾌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아론이 암벽에 팔이 짓눌리는 사고가 당하자 갑자기 적막함이 흐릅니다. 초반의 경쾌함이 너무나도 강렬했기에 갑자기 찾아온 적막함에 대한 충격도 컸습니다. 그러한 적막함은 영화를 보고 있는 제게 아론 느꼈을 충격이 전해져 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적막함 마저도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127시간]은 이렇게 9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동안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부분 이렇게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면 생뚱맞다는 느낌이 드는데 [127시간]은 그런 느낌보다는 아론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기가 막힌 편집 테크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루 존 캐넌으로 여행을 나선 아론의 상황을 경쾌함으로,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해서는 적막함으로 표현한 [127시간]은 이후에도 계속 변화무쌍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합니다.

암벽에 팔이 짓눌려 움직일 수 없는 아론. 그렇게 밤이 오면서 서서히 공포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아론의 등 뒤의 어둠 속에 무언가 튀어나와 아론을 공격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공포 분위기는 카메라 워크도 한 몫 해내는데 시커먼 어둠으로 뒤덮힌 아론의 등뒤에서 서서히 아론에게 접근하는 화면은 무언가가 아론을 등 뒤에서 덮친다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실제 아론도 공포에 휩싸여 등 뒤의 어둠을 향해 카메라 후레쉬를 터트립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얼마나 깜짝 놀랬는지, 아론이 느꼈을 두려움이 영화를 보는 제게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공포 분위기 역시 짧게 스쳐지나갑니다. 광활한 블루 존 캐넌을 비추는 장면에선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론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선 삶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아론이 스스로 자신의 팔을 자르는 장면에선 그 어떤 슬래셔 무비보다 끔찍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신경이 끊어지는 효과음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며 즐겁고, 무섭고, 슬프고, 잔인했고, 감동스러운 느낌을 한꺼번에 받는 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127시간]이 바로 그러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변화무쌍함은 시시각각 새로운 재미를 제게 안겨줬습니다.

 

 

삶에 대한 열망,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한다.

 

암벽에 팔이 짓눌려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 주위엔 그를 도와줄 그 누구도 없는 상황에 만약 여러분이 처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딱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발생했지? 이건 모두 그 자식 때문이야.'라며 남 탓을 하는 사람과 '그래, 이 모든 것은 내 선택에 의해 발생한 거야.'라며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사람.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의 경우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절망감에 더욱 깊이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에게 생긴 불행에 대해서 남을 원망하며 그렇게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좌절감에 빠지는 거죠.

하지만 아론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고, 자신의 실수였음을 인지했기에 절망보다는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냉정함은 '살고 싶다'라는 삶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고, 결국 죽는 것보다 더욱 괴로운 고통을 감내하는 용기로 이어진 것입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됩니다. 그는 언제나 투덜거리며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일수록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보다는 불평만 늘어놓고 '누군가 해결하겠지.'라는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아론이 그러했다면 그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결국 아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낙천적인 태도와 '내 탓이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127시간 동안 물 한 병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 속에서 캠코더를 향해 토크쇼를 하는 장면을 보며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면 살려 달라고, 살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울부짖으며, 공포에 휩싸이고, 결국 희망을 잃고 절망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저 역시 아론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낙천의 힘과 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습니다. 이것은 이 영화의 흡입력의 힘인데, 이러한 재난 영화에서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보다는 멀찌감치에서 관망하는 것을 택합니다. 그 누구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27시간]은 제게 아론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이입을 하도록 유도했고, 아론이 가진 낙천적인 힘과 열망을 스스로 느껴도록 만들었습니다.

새벽 햇살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느끼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상황에서 사랑하던 여인의 미소와 그녀가 떠나가던 날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살아 남아야만 경험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아련함. 그것을 아론과 함께 저도 영화를 보며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니 보일... 그는 언제나 최고이다.

 

[127시간]은 어쩌면 대니 보일이었기에 가능했던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대니 보일 감독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데뷔작인 [쉘로우 그레이브] 때문입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세 남녀의 집에 의문의 남자가 세를 들어 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거액의 돈가방을 남기고 죽어버립니다. 그들은 시체를 유기하고 돈 가방을 차지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돈 가방으로 인하여 그들의 우정은 금이 가고 결국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한 서로를 향한 음모를 진행시킵니다.

이완 맥그리거, 케리 폭스, 크리스토 에클레스톤이 주연을 맡았던 이 영국식 스릴러는 대니 보일 감독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수작입니다. 돈 가방 때문에 점점 바뀌는 세 주인공의 캐릭터 묘사도 좋았고, 빠르고 경쾌한 편집, 그리고 스릴러 특유의 섬뜩함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은 [쉘로우 그레이브]이후 [트레인 스포팅]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결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한 [비치]로 할리우드로 진출을 했습니다. 하지만 [비치]는 대니 보일 감독의 최악의 실패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대니 보일식 착한 영화 [밀리언즈]로 전열을 가다듬었고, 역시 착한 영화인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까지를 거머쥡니다.

하지만 저는 대니 보일의 진짜 힘은 아카데미 위원회가 열광하는 착한 영화가 아닌 [쉘로우 그레이브]와 같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27시간]이 정확히 그러합니다. 대니 보일 특유의 현란한 편집과 음악,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캐릭터의 심리 묘사와 강한 힘이 느껴지는 연출력. 비록 이야기의 힘에서 [127시간]은 [쉘로우 그레이브]를 뛰어 넘지 못했지만 연출력과 캐릭터 구축 만큼은 대니 보일의 영화 중에서 최고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구피와 웅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이 삶이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지않아도 낙천적인 제게 [127시간]의 낙천적의 힘이 영화를 본 제게도 고스란히 옮겨진 것입니다. 비록 팔을 잃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이 영화의 실존 인물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물가도 오르고, 이 세상은 서민이 살기엔 너무 힘든 곳이야.'라는 절망보다는 지금 내게 오늘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에 대한 행복함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낙천적인 힘이며, [127시간]이 가지고 있는 주제였습니다.

 

 

살고 싶다는 그의 열망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게 느껴졌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아름답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살만한 곳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