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서군
주연 : 류승룡, 이요원, 이동욱, 조성하
당신은 된장을 좋아하는가?
어린 시절 저는 항상 혼자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맞벌이를 하셨기에 집에 들어오면 아무도 없었고, 어린 나이에 혼자 저녁 밥을 챙겨 먹어야만 했습니다. 새벽같이 나가 밤 늦게 들어오시는 어머니는 언제나 피곤하셨고, 그래서 전기밥솥에 밥은 항상 가득 차 있었지만 냉장고는 언제나 비어 있었습니다. 밤 늦게 들어오시는 어머니는 반찬을 만드실 시간이 부족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인스턴트를 섭렵했습니다. 3분 카레는 어느 회사 제품이 싸고 맛있으며, 라면은 어떻게 끓여야 맛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터득한 셈입니다.
그런데 가끔 어머니께서 된장 찌개를 하시곤 했습니다. 두부가 큼지막하게 들어있는 된장 찌개는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한 제겐 별미였습니다. 지금도 어머니께서 해주신 된장 찌개를 생각하면 입에 군침이 돕니다.
된장... 사람잡는 맛이로구나.
저는 우리 고유의 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김치가 아닌 된장 찌개입니다. 된장 찌개의 구수한 그 맛은 한국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립니다.
영화 [된장]은 바로 그러한 '된장'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희대의 살인마 김종구, 그가 사형 집행전 마지막으로 한 말은 '그 된장 찌개를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다.'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죽음 직전의 사형수가 마지막 순간 된장 찌개를 떠올린 것일까요?
특종 킬러 최유진(류승룡) PD는 김종구가 떠올린 된장 찌개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김종구가 맛본 된장 찌개는 장혜진(이요원)이라는 묘령의 여성의 솜씨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교통 사고로 숨진 상태. 이에 굴하지 않고 최유진은 장혜진의 된장의 맛을 끝까지 추적합니다.
된장... 그리 간단한 음식이 아니다.
이 영화는 장혜진이 된장을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장독, 소금, 햇빛, 콩 등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는 장혜진의 된장은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냄새를 잃은 박민(조성하)의 코를 틔어 주고,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던 김종구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고보니 저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신 된장 찌개의 맛은 잊을 수가 없네요. 구피가 열심히 된장 찌개를 끓여주지만 어머니의 된장 찌개 맛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냥 메주로 된장을 만들고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면 될 것 같은 된장 찌개... 이 영화만큼이나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닌가 봅니다. 음식 솜씨는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구피가 아직 된장 찌개 만큼은 맛있게 끓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결국 그 맛의 비밀은 사랑이었네.
최유진이 장혜진의 된장 맛의 비밀을 추적한 결과 마지막에 등장한 된장의 비밀은 사랑이었습니다. 장혜진과 김현수(이동욱)의 비련의 사랑. 된장 맛이 비밀을 뒤쫓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던 이 영화가 갑자기 슬픈 멜로 영화로 바뀌어 잠시 당황했지만 어쩌면 사람 잡는 맛이라는 된장의 비밀이 결국 사랑의 힘이라는 결론은 아주 적절해 보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저를 보시며 한숨을 짓습니다. 제가 한참 많이 먹고 쑥쑥 클 나이에 일 다니시느라 제대로 먹이지 못해 지금까지 삐쩍 말랐다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어쩌면 제가 어린 시절 맛 본 그 된장의 비밀은 그런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의 맛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기에 저는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슬픈 사랑을 끝맺음 하는 이 영화가 충분히 공감 되었고, 가슴 찡한 감동마저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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