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우디 알렌
주연 : 레베카 홀, 스칼렛 요한슨, 하비에르 바뎀, 페넬로페 크루즈
어이없는 제목 때문에...
지난 주 내내 야근을 했던 구피, 이번 주는 좀 빨리 퇴근할 수 있을 것이라 하더니 어제도 밤 11시가 넘어서 거의 초 죽음이 되어 집에 들어왔습니다. 원래는 퇴근 후 곧바로 [글로브]를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구피도 늦게 온다는데 저까지 웅이에게 안가면 웅이가 섭섭할 것 같아 또 다시 [글로브]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도대체 [글로브]는 언제쯤 볼 시간이 날까요?)
[글로브]도 보지 못했고, 구피도 야근하느라 늦는 쓸쓸한 월요일 밤, 그냥 보내기 아쉬워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상당히 유치찬란한 제목을 가진 영화를 봤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영화의 원제는 [Vicky Cristina Barcelona,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입니다. 제목 그대로 비키와 크리스티나라는 두 여성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며 겪는 사랑 소동이 주요 내용입니다.
3류 에로 영화인 듯한 야릇한 제목을 붙인 이 영화의 수입사의 저질 안목이 오히려 노장 감독의 사랑에 대한 유쾌한 농담같은 이 영화를 관객들엑 멀어지게 했습니다. 저 역시 어이없는 제목 때문에 이 영화가 별로 땡기지 않았거든요.
서로 다른 애정관을 가진 두 여자의 바르셀로나에서 여름 나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비키(레베카 홀)와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입니다. 이 두 미국 여성은 단짝 친구 사이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조금도 닮은 점이 없습니다. 비키는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사랑을 원하고, 크리스티나는 열정적이고 모험적인 사랑을 갈구합니다. 비키는 자신의 원했던 것처럼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남자와 약혼중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바르셀로나에서 후안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와 만납니다. 스페인 특유의 정열을 가진 이 남자를 본 순간 비키는 위험을 느끼고 거부하지만, 크리스티나는 대책없이 그에게 빠져듭니다.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발생합니다. 크리스티나의 위궤양으로 인해 어쩔수없이 안토니오와 하루를 보내게된 비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빠져듭니다. 하지만 다시 이성을 찾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죠.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크리스티나는 안토니오와 짧은 동거를 시작하고 그곳에서 안토니오의 전부인인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와 만나게 됩니다.
안토니오를 사이에 둔 세 여자의 사랑 이야기
이 영화의 국내 제목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된 이유는 크리스티나와 마리아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매료된 크리스티나는 점점 마리아에게 빠져듭니다.(그렇다고 야한 동성애 관계까지는 아닙니다.) 그렇게해서 안토니오를 사이에 둔 비키, 크리스티나, 마리아의 사각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세 여자의 질투가 난무하는 3류 치정극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관객의 정서와 전혀 맞지 않게 세 여자는 한 남자를 사이에 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쿨'합니다. 크리스티나와 마리아는 안토니오를 공유하고(오히려 안토니오와 마리아가 있을땐 둘은 불안정했지만 크리스티나가 사이에 있음으로써 안정을 되찾습니다.) 크리스티나는 비키가 안토니오를 사랑했었다는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심각하지 않기에 즐길 수 있는 노장의 멜로 영화
어찌보면 이 영화에 상당히 심각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로 애정관이 다른 비키와 크리스티나가 낯선 바르셀로나에서 겪은 여름날의 짧은 사랑을 통해 그녀들의 내적 성장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 영화에 그런 심각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저 스페인의 아름다운 풍경과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배우들의 아름다운 연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으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노장의 이 여유롭고 아름다운 멜로 영화는 2009년 골든글로브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조울증에 시달리는 마리아 연기를 카리스마 넘치게 해낸 페넬로페 크루즈는 LA 비평가협회, 뉴욕 비평가 협회, 미국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휩쓸었습니다.
물론 페넬로페 크루즈의 그 광적인 연기도 최고였지만 이 영화를 통해 발견해낸 배우가 있다면 저는 레베카 홀은 꼽고 싶습니다. 외모는 약간 [아마겟돈]의 리브 타일러를 연상시키는 레베카 홀은 페넬로페 크루즈의 카리스마에 눌려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스칼렛 요한슨과는 달리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안토니오의 야성적 매력에 어쩔수없이 끌리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정말 실감나게 묘사했습니다. 그녀는 이번 주에 개봉하는 [타운]에 출연한다고 하네요. [타운]에서 벤 에플렉, 제레미 레너 외에도 레베카 홀의 연기를 눈여겨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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