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손수범
주연 : 송혜교, 아노 프리치, 애쉬나 커리, 롭 양
페티쉬의 의미는?
일단 이 글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 영화의 제목인 '피티쉬'의 의미부터 다시한번 되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페티쉬는 위키 백과에 따르면 인격체가 아닌 물건이나 특정 신체 부위 등에서 성적 만족감을 얻으려는 경향을 말하며, 원시 신앙 중 하나인 주물숭배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합니다. 성적 도착증의 하나로 분류된다고 하네요.
그리고 영어 사전에서 'fetish'는 1. 집착 2. 페티시(특정 물건을 통해 성적 쾌감을 얻는 것) 3. 주물, 숭배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제가 [페티쉬]의 '아주 짧은 영화평'을 쓰면서 먼저 '페티쉬'의 의미를 찾아 본 것은 제가 알고 있는 '페티쉬'와 이 영화의 전개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페티쉬]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런데 왜 제목이 '페티쉬'인거야?'였습니다.
숙희는 무엇에 집착하였는가?
[페티쉬]는 무당 집안의 여성 숙희가 자신의 숙명을 거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국제 결혼을 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혹한 그녀의 운명은 미국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남편과 시어머니를 잃은 그녀는 옆집의 존(아노 프리쉬), 줄리(애쉬나 커리) 부부와 가깝게 지내며 존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파국을 맞이합니다.
우선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토대로 한다면 제목인 '페티쉬'가 의미하는 것은 특정 물건을 통해 성적 쾌감을 얻는 성적 도착증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주물, 숭배의 대상일까요? 글쎄요. 숙희가 무당 집안의 딸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캐릭터일뿐, 그녀가 다른 주물 숭배를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입니다. 이 영화가 의미하는 '페티쉬'는 집착이 아닐까요?
줄리가 되고 싶은 숙희? (이후 스포 있음)
숙희는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랑 없는 국제 결혼을 한 그녀는 자신의 미국 이름으로 줄리를 선택합니다. 옆집 여자와 같은 이름이죠. 그러한 초반 전개 장면에서 숙희가 집착을 하는 것은 줄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당같은 숙명도 없고, 존과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는 그녀에 대한 부러움이 숙희의 줄리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숙희의 남편인 피터가 줄리가 준 마약을 과다복용하다 죽자 상황이 바뀝니다. 피터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 줄리는 숙희에게 끌려 다니고, 숙희는 그런 줄리를 이용해서 자신이 줄리를 대신하여 존과 사랑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버립니다.
줄리에 대한 집착이 존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그러한 집착에 의한다면 숙희는 금발로 염색을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줄리를 흑발로 염색시킵니다. 스스로 줄리가 되겠다는 염원이 아니라 줄리를 숙희로 만들겠다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이 영화는 이 부분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숙희가 된 줄리
이렇듯 숙희의 강요에 의해서 숙희가 된 줄리. 그녀는 숙희와 존의 애정 행각을 목격하고 그녀를 우발적으로 살해합니다. 여기에서 또 이상한 전개가 나오는데 숙희를 죽인 줄리는 점점 숙희화되어 갑니다. 미국인인 그녀가 김치찌개를 끓이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존 몰래 어린 딸과 한국말로 대화까지 합니다.
줄리에 대한 숙희의 집착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오히려 줄리를 숙희로 만드는 과정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제목과 전혀 맞지 않은 이러한 이상한 전개를 보며 제목인 '페티쉬'는 그냥 관객들에게 성적 기대감을 불어 넣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다.
송혜교를 내세워 야한 영화로 포장한 얄팍한 상술을 버젓이 부리고 있는 [페티쉬]. 그러나 그 이면에는 허술한 캐릭터, 허술한 연기력, 허술한 스토리 전개 등 모든 것이 허술하기만 합니다.
먼저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이 숙희라는 캐릭터인데 초반 줄리에 대한 집착을 하는 숙희의 모습은 그나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점점 그녀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해집니다. 줄리를 흑발로 염색시키는 것을 보면 줄리를 닮고 싶은 욕망에 의한 행동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정말 존을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으며, 남편인 피터의 죽음에 대한 원한으로 존과 줄리 부부를 파멸시키기 위한 복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며 '도대체 왜 저래?'라는 의문이 제 머리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그러한 어처구니 없는 숙희를 연기한 송혜교의 연기력 또한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무당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가냘픈 여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악녀도 아닌, 뭐랄까 감정의 기복이 없는 잔잔한 연기만을 선보입니다.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는 물론 느낄 수가 없었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애매모호합니다. 결국 남은 것은 송혜교와 '페티쉬'라는 단어가 주는 야릇한 상상을 내세운 얄팍한 상술입니다. 뭐 저도 피곤한 화요일밤, 졸리움을 무릅쓰고 이 영화를 봤으니 그 상술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주짧은영화평 > 2011년 아짧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타스틱 우체국] - 이상한 나라의 우체국에선 무슨 일이? (0) | 2011.01.24 |
---|---|
[여의도] - 뻔한 반전, 촌스러운 전개.(스포 있음) (0) | 2011.01.20 |
[해바라기] - 신파라고 하기엔 마지막 울림이 가슴 아프다. (0) | 2011.01.16 |
[트라이앵글] - 잔인하지만 매혹적인 열린 결말... 새로운 지옥도를 보다. (0) | 2011.01.13 |
[세인트 클라우드] - 판타지 멜로라는 장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0) | 2011.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