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강석범
주연 : 김래원, 김해숙, 허이재
블친 추천 영화 제 3탄.
[피아니스트의 전설], [트라이앵글]에 이어 이번엔 [해바라기]입니다. 이렇게 다른 분들이 추천해 주는 영화를 의식적으로 본다는 것이 의외로 좋은 점이 있더군요. 제 경우는 철저하게 신작 위주, 제가 좋아하는 장르 위주, 한국 영화, 미국 영화 위주로만 영화를 보다가 블친 추천으로 제 취향과는 다른 영화들을 보게 되니 조금 색다르네요.
[해바라기] 역시 제 입장에선 제 취향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개봉한지 5년이나 지난 2006년 영화이고, 제가 당시 이 영화를 안봤던 이유는 스토리 자체가 신파의 냄새가 풀풀 풍겼기 때문입니다. (전 영화를 보며 웃는 것은 좋아하지만 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바라기]에 대한 제 글을 꼭 보고 싶다는 오퀸님의 청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애초에 송혜교 주연의 [페티쉬]를 보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토요일의 화창한 오후, [해바라기]를 봤습니다.
미친개 오태식... 새 출발을 결심하다.
[해바라기]는 '술 마시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담긴 수첩을 들고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오태식(김래원)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 후 맨 주먹으로 거리의 양아치들을 모두 제압한 소문난 미친 개였습니다. 하지만 살인죄로 감옥에 간 후 10년 만에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이는 해바라기 식당을 운영하는 덕자(김해숙).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태식을 친아들처럼 반기는 그녀를 위해 태식은 새 삶을 결심한 것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새 삶을 결심한 태식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시의원이자, 깡패 두목인 조판수와 태식의 시다바리였지만 태식이 감옥에 간 이후 조판수의 밑으로 들어간 양기와 창무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덕자의 식당을 호시탐탐 노리며 태식을 압박합니다.
답답한 남자 캔디 오태식
이렇게 영화의 중반까지는 새 출발을 결심함으로써 주위의 부당한 폭력을 묵묵히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태식의 모습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싸우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는 싸움을 걸어오는 이들에게 묵묵히 맞으며 버팁니다.
영화를 보며 속으로 '주먹을 휘두르란 말야. 넌 할 수 있잖아.'를 외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덕자의 딸인 희주(허이재)의 싸가지없는 행동도 짜증이 났고, 식당을 빼앗으려는 조판수 일당의 음모에 순진하게 대처하는 덕자의 선택도 한심했습니다.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고난의 길이 펼쳐질 거인지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싸워'를 외치는 남자 캔디 오태식 스토리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답답한 만큼 그 폭발력은 엄청났다.
하지만 1시간 40분 가량의 답답함으로 마지막 20여분간의 폭발력을 위해 준비한 미끼였나봅니다. 분명 영화를 보며 마지막 태식의 복수가 너무 뻔하게 그려졌지만 강석범 감독은 너무나도 처절하게 태식의 답답함을 치밀하게 담아냈기에 마지막 20분의 폭발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컸습니다.
자신과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덕자 모녀를 괴롭힌 사람들을 향한 마지막 복수 장면에서 전 두 주먹을 불끈쥐고 나도 모르게 쾌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쾌감 뒤에 흐르는 슬픈 감성 역시 강석범 감독은 결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마지막 울림이 가능했던 것은 김래원의 연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도 범상치 않은 액션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해바라기]에서 액션과 순수한 감성을 모두 어필하며 어찌보면 신파에 가까운 이 영화를 잘 이끌었습니다.
사실 영화의 내용만 놓고본다면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이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김래원의 연기와 1시간 40분 동안 결코 서두르지 않고 마지막 20분을 위해 차근차근 답답함을 쌓아갔던 강석범 감독의 인내력이 [해바라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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