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2%부족해야 진정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소?

쭈니-1 2011. 1. 28. 13:45

 

 

감독 : 김석윤

주연 : 김명민, 오달수, 한지민, 이재용

개봉 : 2011년 1월 27일

관람 : 2011년 1월 27일

등급 : 12세 이상

 

 

2% 부족한 나의 영화 사랑

 

1월 16일 웅이와 [메가 마인드]를 봤던 것이 최근의 극장 나들이였으니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보러 가기 전까지 전 무려 10일동안이나 극장 나들이를 가지 못한 셈입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기대작인 [글로브]가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었고, 이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후보에 오른 [윈터스 본]도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영화 보고 싶어.'를 외치기만 했을 뿐 정작 극장에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뜬금없지만 구피의 야근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1월 17일 새벽, 매서운 추위로 인하여 구피의 회사 사무실 수도가 동파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새벽같이 회사로 출동한 구피. 그리고 구피는 그날 이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맞벌이하는 탓에 웅이는 집 근처 처가댁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근하면 항상 처가댁에 들러 저녁 9시까지 웅이와 놀아줍니다. 만약 구피가 야근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은 영화보러 갈테니 웅이와 재미있게 놀아줘.'라고 구피에게 웅이를 떠맡기고 영화를 보러갈 수 있었지만, 구피마저 매일 야근으로 늦게 들어오니 웅이와 놀아주는 것은 제 차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웅이와 놀아주고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는 시간은 저녁 9시 30분에서부터 10시 사이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러닝타임이 길어서인지 [글로브]의 상영 시간은 저녁 8시 대에 있었고, 그 다음 타임은 저녁 11시 정도였습니다. [원터스 본]은 아예 집근처 극장에선 상영조차 하지 않았고요. 저녁 11시에 영화를 보고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 다음날 출근한다는 것은 아침잠이 많은 저로써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제가 10일 동안이나 영화를 보지 못한 것은 영화에 대한 제 간절함이 2%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까짓거 웅이에게 '오늘은 엄마 아빠, 못 가니 혼자 놀아.'라고 전화하고 극장으로 갈 수도 있었고, 저녁 11시 영화를 보고 아침에 충혈된 눈으로 회사에서 꾸벅꾸벅 졸수도 있었지만 결국 저는 영화 보다는 웅이를, 잠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영화들이 대거 개봉하는 1월 27일은 제게 구세주와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시간대가 맞지 않았던 [글로브]와는 달리 제가 웅이와 놀아주고 극장으로 달려가도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오랜만에 극장 앞에 선 저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린 호넷],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 [걸리버 여행기] 등을 골라 볼 수 있었고, 저는 [그린 호넷]은 구피와 함께 본다는 계획아래 일단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봤습니다.

 

 

2% 부족한 조선 시대의 명탐정의 활약

 

정말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였기에  저는 왠만하면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좋아하기로 마음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김명민의 능글스러운 연기에 참 많이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즐기기에는 영화 자체가 조금 부족했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는 기본적으로 스릴러입니다. 배경은 조선 시대이지만 김민(김명민)이 정조의 밀명으로 탐정으로 임명되어 공납비리를 파헤친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스토리 전개는 공납비리에 얽힌 비밀과 그것을 밝혀내는 김민, 서필(오달수)의 모험으로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 라인의 기본이 되는 공납비리 사건에 얽힌 치밀함입니다. 공납비리 사건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을수록 그것을 파헤치는 김민과 서필의 모험도 치밀해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러한 치밀함은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를 갖출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그러한 치밀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납비리 사건의 배후는 너무 뻔히 눈에 보이고,(너무 뻔히 보여 저는 오히려 마지막 반전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사도세자의 아들이며, 노론과 정치적 대립을 하고 있던 정조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만 알고 있다면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노론의 총수인 임판서(이재용)은 '내가 악역이요!'라며 아예 대놓고 들이대고, 그가 악역임을 자처한 그 순간부터 임판서 조카 며느리의 자결에 의한 열녀 사건 역시 쉽게 그 진상을 추론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허술하게 공납비리 사건과 열녀 사건이 꾸며진 탓에 그것을 파헤치는 김민의 모험 역시 전혀 치밀하지 못합니다. 물론 가끔 김민의 탐정적인 기질이 발휘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러한 장면은 2009년 연말에 개봉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 수준에 그칠 뿐입니다. 

 

 

2% 부족한 매력적인 캐릭터들

 

이렇게 스릴러의 근간이 되어야할 사건 자체가 허술하다보니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캐릭터에 기대려 합니다. 

솔직히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많이 웃었던 이유 역시 김명민의 코믹 연기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민이라는 캐릭터의 매력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천재적인 두뇌와 추리력, 그리고 양반의 근엄함과 정의감을 갖고 있지만 위기의 순간에 발휘되는 뻔뻔스러움과 촐삭거림은 김민이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특히 반듯한 이미지를 지닌 김명민이 이 코믹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그를 뒷받침해줄 캐릭터의 매력은 2% 부족했습니다. 특히 가장 아쉬웠던 것이 한객주(한지민)라는 캐릭터였는데, 김명민과 마찬가지로 청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한지민을 섹시한 요부 캐릭터로 만듬으로써 김민과 더불어 영화의 중후반까지 색다른 재미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나 부실한 공납비리 사건과 열녀 사건의 치밀하지 못함을 감추기 위한 후반부의 무리한 반전으로 인하여 섹시한 한객주는 갑자기 사라지고 맙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며 '섹시한 한객주를 돌려줘~'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한객주라는 캐릭터는 초반에 비해 후반의 설정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기는 서필이라는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코믹 연기에 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오달수가 연기했기에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보며 가장 많이 기대했던 것은 서필이라는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사연인지 오달수의 코믹 연기는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고, 그 결과 서필 역시 김민의 매력에 가로 막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오달수라면 좀 더 서필의 매력을 끌어내어 김민을 뛰어 넘는 코믹 캐릭터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 영화의 추세가 강력한 조연 캐릭터에 의한 재미임을 감안한다면 서필의 코믹함이 김민을 넘어선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필은 철저하게 김민의 보조 역할에만 만족합니다. 김명민의 코믹 연기에 웃으면서도 여기에 오달수의 코믹 연기가 더해진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아쉬운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확실히 캐릭터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만큼 이 영화는 주인공인 김민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절반을 넘는 성공은 이미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뒷받침할 조연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설정하지 못함으로써 2%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2%가 부족하기에 더욱 사랑스러운...

 

제가 이 영화의 아쉬운 점만으로 제 영화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이 영화는 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물론 그 재미라는 것이 김명민의 의외의 코믹 연기에 의한 것이라 아쉽지만 캐릭터가 부족한 우리 영화의 현실에서 조선 시대의 명탐정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성한 이 영화의 재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 탓에 제 마음이 너무 너그러워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건 저는 이 영화를 보러 들어가며 왠만하면 재미있게 영화를 즐기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겼던데에는 그 이유 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2% 부족한 이 영화의 느슨함 덕분입니다. 

잘 짜여진 스릴러 영화를 보면 영화와의 한바탕 두뇌 싸움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면 기진맥진해지기 일쑤였습니다. 하긴 그것이 스릴러 영화의 재미이긴 하지만... 그러나 [조선명탐정 : 각시꽃투구의 비밀]은 그런 치밀함이 부족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참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영화이니만큼 그런 편안함이 오히려 저를 만족시킨 것 같습니다.

 

캐릭터들도 그러한 편안함에 한 몫을 해냈는데, 김명민의 연기는 '부담같지말고 그냥 가볍게 즐기시오.'라고 관객들에게 살살 눈웃음치는 것 같았고, 섹시함으로 다소 부담스러웠던(하지만 멋졌던) 한지만은 후반부에서 다시 예전의 이미지로 돌아오며 '제 변신이 즐거우셨나요?'라며 수줍은 웃음을 짓는 것 같았습니다.

가장 맘에 안 드는 이 영화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마지막 장면은 양반과 상놈의 신분 격차가 확실했던 조선시대에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천주교 신도들의 휴머니즘이라고 애써 이해한다면 될 것 같습니다. 분명 이 영화는 부족한 여백이 여실히 보이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족한 여백은 2편에서는 충분히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가 10일동안이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한 것은 영화을 보고 싶다는 제 간절함 이 2%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과연 웅이도, 회사 일도 포기하며 영화에 매달린다면 전 행복할 수 있을까요? 가족들에겐 나쁜 아빠, 나쁜 남편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고, 회사에선 근무가 태만한 직원이라며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완벽한 것보다 약간 부족한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2% 부족함이 여실히 보이는 이 영화에 실망하기 보다는 앞으로 좀 더 잘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응원할 생각입니다.

 

나의 너그러움은 여기까지이다.

2% 부족한 여분은 2편에서 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