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심장이 뛴다] - 해피엔딩이야말로 이 영화의 기적이다.

쭈니-1 2011. 1. 12. 10:59

 

 

감독 : 윤재근

주연 : 김윤진, 박해일

개봉 : 2011년 1월 5일

관람 : 2011년 1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심장이 뛰고 싶었다.

 

2011년 들어서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춥다고 잔뜩 움추러든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워낙에 추위를 잘 타기도 하지만 몸에 무엇인가가 닿는 것을 싫어하는 지랄같은 체질 탓에 목도리, 모자, 장갑 등을 하지 않아 추위에 더욱 잘 노출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2011년 개봉작 중 첫 기대작인 [심장이 뛴다]가 보고 싶어도 차일피일 추위가 누그러들 때를 기다렸고, 그렇게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깟 추위 때문에 내 영화에 대한 열정이 움추러드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11년이 시작되며 올해는 꼭 일주일에 두 편씩 극장에서 영화를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는데 첫 주부터 그 계획이 추위 때문에 무산된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내린 눈 탓에 꽁꽁 얼어 붙은 제 차를 끌고 퇴근 후 무작정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해서 보게 된 [심장이 뛴다]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딸을 살려야 하는 연희(김윤진)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가 지병으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진 어머니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휘도(박해일)의 충돌을 그린 영화입니다.

일단 영화의 설정 자체가 잔인합니다. 심장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심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둘 입니다. 연희는 딸을 살리기 위해 뇌사 상태에 빠진 휘도 어머니의 심장이 필요하고, 만약 그렇게 연희의 딸에게 심장을 이식해주면 휘도는 어머니를 영영 잃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 잔인한 기본 설정에서 악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절박한 심정의 두 캐릭터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해피엔딩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예 윤재근 감독은 김윤진과 박해일을 캐스팅함으로써 완벽한 기회를 잡았고, 영화를 보는 저는 심장이 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영화를 감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완벽했던 캐릭터 설정, 더 완벽했던 두 배우의 연기.

 

위에서 '그러나...'로 글을 마무리 지었지만 이 영화의 재미있었던 점부터 쓰겠습니다.

먼저 두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아마 이 영화를 감상한 그 어떤 사람이라도 만장일치로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세븐 데이즈]에서 유괴된 딸을 구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어머니의 모성애를 그렸던 김윤진은 [심장이 뛴다]에서도 심장병에 걸린 딸을 위해 점점 악인으로 변해 가는 영어 유치원 원장 연희 역을 맡아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했습니다.

처음엔 우아한 영어 유치원 원장, 자상하고 천사 같은 어미니에서 딸을 위해 점점 악마로 변해가는 연희. 연희의 딸인 예은(박하영)과 같은 나이인 웅이를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처음엔 딸을 향한 연희의 모성애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일그러지는 그녀의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에 맞서는 휘도를 연기한 박해일 역시 김윤진 못지 않았습니다. 사실 연희가 워낙 강렬한 캐릭터여서 자칫 상대 캐릭터를 압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이 영화의 균형은 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박해일의 연기는 강렬하다못해 섬뜩한 연희에게 휘도를 팽팽하게 맞서게 합니다. 처음엔 어머니를 등쳐먹는 날라리 양아치에서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느낀 이후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휘도는 연희와는 또 다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희가 예은을 살리기 위해 점점 악마로 변해간다면 휘도는 그런 악마에게서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즉흥적으로 대응합니다. 조금은 치밀한 연희와는 달리 휘도의 대응은 어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연희와 휘도의 대결이 흥미로웠는지도 모릅니다.

윤재근 감독은 영화를 이끌어나갈 두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들 역시 완벽하게 캐스팅하였습니다. 그런 완벽한 캐릭터와 완벽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심장이 뛴다]는 중반까지 흥미진진한 전개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두 캐릭터의 대결이 극에 치닫는 바로 그 순간...

 

필연적으로 대립각을 세울 수 밖에 없는 연희와 휘도의 대결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서서히 극에 치닫습니다. 윤재근 감독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인간적인 도리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던 연희가 예은의 병세가 악화되자 점점 도를 넘어서는 것을 보며 저는 윤재근이 꽤 영리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부터 양아치 휘도보다 절절한 모성애를 간직한 연희가 관객의 공감대를 받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렇게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한 캐릭터의 경우는 아무리 극단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관객이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선을 지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윤재근 감독은 그것을 넘어서는 대담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연희와 같은 처지에 있다면 저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슬쩍 관객들을 떠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연희의 행동이 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연희를 악인 캐릭터라며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점점 악마가 되어 가는 연희를 바라보며 제 마음이 아팠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윤재근 감독의 신인 감독답지 않은 대담한 연출력은 연희와 휘도의 갈등이 극에 치닫는 그 순간 멈춰버립니다.

딸을 살리기 위한 연희의 악마성이 관객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고, 즉흥적으로 연희에 대항했던 휘도가 결국 폭발 일보직전까지 갔던 그 순간... 안타깝게도 영화의 시계추는 갑자기 멈춰 버립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후반부에서 이 두 캐릭터를 폭발시켰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여건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연희와 휘도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고, 그에 맞춰 김윤진과 박해일의 연기 역시 감정의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제 긴장감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 상황에서 연희와 휘도의 대결이 극단적으로 폭발했다면 아마 영화를 보는 저 역시 애초에 제가 원했던대로 영화를 보며 심장이 마구 요동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재근 감독에겐 그런 배짱이 없었습니다.

 

 

해피엔딩을 기대한 윤재근 감독의 휴머니즘이 안타깝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애초에 [심장이 뛴다]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연희는 딸을 살려야 하고, 휘도는 어머니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데 연희가 딸을 살릴려면 휘도의 어머니는 죽어야 하고, 휘도가 어머니를 지키려면 연희의 딸은 죽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게다가 연희과 휘도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연희는 악마가 되었고, 휘도는 그러한 악마에게서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연희의 딸을 유괴했습니다. 연희와 휘도,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법자입니다. 영화의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둘의 선택이 어쩌면 이해가 될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그 둘은 감성적인 측면의 도를 넘어서 버렸습니다.

제가 연희와 휘도의 대결이 폭발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해피엔딩도 기대할 수 없고, 감성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도를 훨씬 넘어선 만큼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파멸로 향한 폭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윤재근 감독은 해피엔딩을 꿈꾸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 영화에서 그는 해피엔딩을 구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순간 시계의 추를 멈춰 버립니다.

악마가 되었던 연희는 다시 천사같은 엄마로 돌아왔고, 악마같은 연희에 맞서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휘도 역시 갑자기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가 되어 버립니다.

어쩌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해피엔딩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 이 영화의 특성상 둘 다 행복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해피엔딩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을 편안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가끔 서로의 파멸로 끝나는 영화는 관객을 불편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럴려면 윤재근 감독은 연희와 휘도의 폭주를 어느 정도 선에서 조절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해피엔딩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영화를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두 캐릭터를 맘껏 폭주하게 해놓고 마지막에 가서 급 화해모드로 해피엔딩이 될수 있다는 윤재근 감독의 생각이야 말로 기적을 꿈꾸는 순진한 신인 감독의 환상입니다. 그러한 윤재근 감독의 순진한 환상이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해피엔딩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좋겠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그리고 나 역시 갑작스러운 해피엔딩에 미소지을만큼 너그럽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