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시즌 오브 더 위치:마녀호송단]-마녀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의 광기이거늘.

쭈니-1 2011. 1. 14. 13:15

 

 

감독 : 도미니크 세나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론 펄먼

개봉 : 2011년 1월 13일

관람 : 2011년 1월 13일

등급 : 15세 이상

 

 

쭈니의 38번째 생일 선물은 이 영화다!

 

어제가 제 38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생일 축하해!!!"(자축중!!! ^^;) 제가 어느덧 꼬박 38년 동안 살아왔네요. 작년까지만해도 '난 30대 중반이야.'라고 우겼는데 이젠 30대 후반임을 부인할 수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씁쓸합니다.

제 생일을 맞이하여 구피는 전날 미역국을 열심히 끓이더니 새벽같이 일어나 미역국 먹고 가라고 단잠에 빠진 저를 깨웠습니다. 오랫동안 아침밥을 먹지 않는 습관이 들어버린 저는 미역국을 포기하고 10분이라도 더 자고 싶었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한 구피의 정성 때문에 미역국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평소에 안먹던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어서일까요? 그날은 이상하게 힘이 불끈 쏫는 느낌이었습니다. 점심 때에는 부서 직원들이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고, 전날 둘째를 순산한 직원이 점심을 쏘겠다고 하더니, 상무님께서도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시고(제 생일인지는 모르시고)... 점심 약속이 무려 3건이나 잡혀, 암튼 다른 날과는 좀 다른 일상을 보냈었습니다.

 

퇴근 후 구피와 만나 파파이스에서 간단히 햄버거 하나씩 먹고, 이번 주 개봉작중 가장 기대가 컸던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를 봤습니다.

영화를 본 후 홈플러스에서 구피의 부츠(내 생일인데 왜 구피가 부츠를 사는 걸까요?)도 하나 사주고(그래도 새 부츠 신고 아이처럼 방방 뛰는 구피를 보니 기분은 좋더군요.), 마감세일로 엄청 싼 초밥 세트를 무려 3개나 사와 늦은 밤 초밥에 맥주 파티까지 벌였습니다. 

작년 생일 때에는 혼자 [나인]과 [용서는 없다]를 연달아 보느라 쫄쫄 굶은 상태에서 야심한 밤에 구피가 끓여진 국수를 먹고 잤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해 생일은 작년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낸 셈입니다.

암튼 제 생일을 맞이하여 특별히(?) 선택되어진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은 평가하기가 참 애매한 영화였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판타지 영화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재미없었다고 하기엔 영화를 보는 내내 제 긴장감을 유지시켰으니까요. 

 

 

십자군 전쟁과 마녀 사냥으로 얼룩진 광기의 시대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의 시대적 배경은 14세기 중엽 유럽입니다.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한 종교 전쟁인 십자군 전쟁과 중 세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다는 흑사병, 그리고 마녀사냥으로 얼룩진 광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위키 백과사전에 의하면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에 일어났으며,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했던 시기는 14세기 중엽, 마녀사냥은 15세기 초에 산발적으로 일어났다가 16세기 말과 17세기에 걸쳐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결국 십자군 전쟁, 흑사병, 마녀사냥은 각기 다른 시기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은 유럽의 어두운 역사를 이 영화 속에 한꺼번에 우겨 넣은 것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이상 그러한 사실 관계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중요한 것은 왜 중세 유럽의 가장 어두웠던 사건을 한 편의 영화 속에 모두 넣어야만 했을까? 라는 의문입니다.

 

제가 이 영화의 느슨한 스토리 라인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을 해야 했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중세 유럽이 가지고 있는 광기의 역사 때문입니다.

영화의 초반, 이슬람교가 점령한 성지를 찾겠다는 이유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 장면은 중세 유럽의 광기를 잘 설명하는데 종교적 명분은 온데간데 없고 의미없는 살인만 반복되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도미니크 세나 감독은 다른 부연 설명 없이 쉴새없는 반복되는 전쟁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이 과연 신의 뜻인가?'라는  베이먼(니콜라스 케이지)의 의문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이러한 대규모 살상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와 종교가 다르니 모두 죽여야 한다는 어이없는 광기는 인류 역사에서 수 많은 상처를 냈으며, 지금도 그 상처는 곪아 터져 수 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어 넣고 있습니다.

마녀사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7세기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을 소재로한 [크루서블]은 광신도적인 광기가 어떻게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가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을 긴장하며 봐야 했던 이유는 그러한 인간의 광기가 그 어떤 무엇보다 가장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기의 역사가 오락영화가 되기 까지...

 

분명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의 소재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이 영화가 선택한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흑사병은 비록 발생한 시점이 서로 틀리지만 도미니크 세나 감독은 이것들을 하나로 조합해서 한편의 영화에 넣음으로써 인간의 광기에 대한 섬뜩한 판타지 영화를 만들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종교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시작한 대량 살상을 경험한 베이먼과 펠슨(론 펄먼)은 탈영 후 한 마을도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또 다른 인간의 광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흑사병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그러한 공포를 이겨낼 희생양을 원하게 되었을 것이며 가녀린 소녀를 마녀로 몰아 넣음으로써 그러한 희생양은 완성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섬뜩한 상황입니까?

도미니크 세나 감독은 십자군 전쟁으로 주인공의 캐릭터를 완성하고, 마녀사냥을 통해 흑사병의 공포로 인한 14세기 중엽 유럽인들의 광기를 효과적으로 묘사합니다. 이제 이 영화는 이대로 인간의 광기에 대한 섬뜩한 이야기를 마녀를(혹은 마녀로 오인받은 가녀린 소녀를) 수도원으로 호송하는 6명의 호송단의 모험으로 완성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한가지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 영화이고, 도미니크 세나 감독에겐 인간의 광기에 대한 섬뜩함을 그릴 의지가 전혀 없다라는 점입니다.

분명 인간의 광기를 표현할 완벽한 무대가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자꾸만 이상한 곳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러한 이상 기류는 영화의 중반부터 일찌감치 감지됩니다. 과연 그들이 호송해야할 이 소녀는 정말 흑사병을 온 유럽에 퍼트린 마녀인가? 아니면 흑사병에 대한 공포가 만든 인간 광기의 또 다른 희생양인가? 라는 물음에 매달려야 할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러한 물음에는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중반이후 마녀호송단의 모험은 단순한 볼거리에 치중합니다. 낭떠러지를 잇는 썩은 나무로 되어 있는 아슬아슬한 다리 건너기,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거대한 무덤에서의 공포, 늑대의 습격 등 오락 영화로써의 볼거리가 계속해서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마녀로 몰린 소녀에 대한 정체가 드러나며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해야할 클라이맥스는 점점 맥이 빠져 버리는 것이죠.

 

 

결국 영웅의 이야기로 귀결된다.(스포 있음)

 

어쩌면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오락 영화에서 인간의 광기에 대한 섬뜩한 이야기를 원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 자체가 워낙에 좋았기에 잠시 기대를 걸었었습니다.

암튼 중반 이후부터 오락 영화의 재미에 치중되던 이 영화는 결국 엑소시즘 영화로 귀결됩니다. 중반부터 소녀의 정체가 마녀인가? 아니면 희생양인가?라는 물음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이 영화는 우습게도 '사실 소녀의 정체는 마녀가 아닌 악마야!' 라며 '어때? 깜짝 놀랬지?'라고 말합니다. 

마녀와 악마. 그것이 얼마나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녀의 정체가 악마로 밝혀짐으로써 오히려 이 영화의 부실한 스토리 전개가 드러나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과연 이 악마는 혼자 수도원에 올 능력도 없었단 말입니까?(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진 그의 능력은 거의 전지전능 수준이던데...)  도대체 왜 낭떠러지에서 카이를 구해줬을까요?(덕분에 악마는 마지막에 카이에게 뒷통수를 맞습니다.)  

 

이렇게 스토리 전개의 부실함을 드러내는 마지막 반전을 보며 자꾸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저렇게 특수효과 덩어리인 악마가 아닌 자신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다른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려는 인간의 광기인데... 

결국 영화는 베이먼 일행이 악마로 부터 인류를 구한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 나레이션에서 사람들은 흑사병이 그저 스쳐 지나간 전염병으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영웅의 희생이 있었기에 인류가 흑사병을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잠시 피식 헛웃음이 나더군요.

이 영화가 판타지 영화를 표방한 이상 [반지의 제왕]의 공식처럼 절대악이 있어야 했고, 절대악을 물리칠 영웅이 존재해야 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악을 꼭 악마라는 존재로 확정시킬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두려움에 빠진 평범한 사람들도 바로 절대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은 제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판타지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볼 때는 재미있었지만 보고나서는 너무 평범해서 금방 잊어버릴 그런 판타지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광기에 대한 판을 잘 짜놓고, 엉뚱한 엑소시즘으로 클라이맥스를 낭비한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쉬울 따름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마녀도 악마도 아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공포로 인해 마녀와 악마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광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