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트론 : 새로운 시작] - 천재 아버지에게 몸짱 아들이 태어나다.

쭈니-1 2011. 1. 6. 14:39

 

 

감독 : 조셉 코신스키

주연 : 개러트 헤들런드, 제프 브리지스, 올리비아 와일드

개봉 : 2010년 12월 29일

관람 : 2011년 1월 5일

등급 : 12세 이상

 

 

왜 재미없다는 영화를 일부러 보려고해?

 

요즘 대부분의 영화들은 수요일에 개봉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개봉한 영화의 흥행 여부는 그 주의 주말이 되면 판가름납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선 그 영화의 평이 오르내리고, '재미있다, 재미없다'라는 입소문 역시 주말즈음이면 확정됩니다.

제가 왠만하면 영화를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보려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네티즌들의 영화 리뷰를 피해도 요즘과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저는 어쩔수 없이 보려는 영화의 정보에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며 그럼과 동시에 아직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트론 : 새로운 시작]이 그러했습니다. 일찌감치 기대작으로 뽑아 놓았지만 2010년의 마지막 영화는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에게 양보하고 결국 2011년의 첫 영화로 선정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개봉 첫 주 국내 흥행은 놀랍게도 12월 15일에 개봉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성적으로 5위에 멈췄으며, 네티즌의 영화 리뷰 역시 혹평 일색이었습니다.

 

저만큼이나 SF영화를 좋아하는 구피는 이미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버렸더군요. 회사 동료들한테 '재미없다'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는 구피는 제게 '왜 굳이 재미없다는 영화를 보려고 해?'라며 묻습니다.

하긴 그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영화 관람료가 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피와 제가 시간이 많아 이 영화, 저 영화 마구잡이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재미있는 영화만 골라봐도 시간과 돈이 부족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난 다른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평가를 믿지 않아. 영화를 보는 눈은 각자 다르거든. 그들이 재미없다고해서 나까지 재미없으란 법은 없어. 난 내가 기대한 영화는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겠어.'라고...  그러나 저 역시 불안했던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겨울 방학 시즌에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개봉 첫 주 국내 박스오피스 5위에 그쳤다는 것은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트론 : 새로운 시작]은 실패작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심장이 뛴다]라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실패작 선고를 받은 영화를 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그럼에도 제가 [트론 : 새로운 시작]을 본 것은 불필요한 고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소재의 [컴퓨터 전사 트론], 그렇다면 속편은?

 

[트론 : 새로운 시작]은 1982년에 발표된 스티븐 리스버그 감독의 [컴퓨터 전사 트론]의 속편입니다. [컴퓨터 전사 트론]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플린(제프 브리지스)이 우연히 자신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에 의해 컴퓨터 회로 속에 갇혀 모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지금 보면 너무 흔한 이야기같지만 이 영화가 1982년 영화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1982년이라면 우리나라에선 프로야구가 처음으로 시작했던 해입니다. 컴퓨터라는 단어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생소했으며, 갤러그라는 아주 단순한 전자오락만으로도 획기적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상현실, 네트워크에 의한 정보 홍수 등 당시엔 획기적인 소재로 호평을 받은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가 [컴퓨터 전사 트론]보다 무려 13년 이후인 1995년에 제작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컴퓨터 전사 트론]은 분명 단순한 할리우드 오락 영화가 아닌 시대를 훨씬 앞서간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컴퓨터 전사 트론]은 흥행에 참패하고 맙니다. 당시로써는 일반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였을 [컴퓨터 전사 트론]은 그렇게 30여년 동안 깊은 잠에 빠져든 것입니다.

 

그런데 디즈니가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이 30년 전 영화를 다시 꺼내든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1억7천만 달러가 투입된 거대한 블록버스터 [트론 : 새로운 시작]이 탄생합니다.

이미 [컴퓨터 전사 트론]의 흥행 참패를 경험한 디즈니의 전략은 단순해 보입니다. 획기적인 소재로 시대를 앞서갔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트론 : 새로운 시작]은 소재를 단순화하고 대신 특수효과 부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오락적인 요소를 강조하자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해서 [트론 : 새로운 시작]은 아주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태어납니다. 가상현실을 장악한 프로그램 클루(제프 브리지스)가 가상현실을 넘어 인간세계까지 넘보고, 가상현실의 창시자인 케빈 플린(제프 브리지스)과 그의 아들 샘(개러트 헤들런드)이 그러한 클루의 음모를 막는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단순화된 스토리 라인 위에는 3D에 최적화된 듯이 보이는 영상과 가상현실을 이루어낸 화려한 특수효과, 그리고 스피드가 덧입혀져 있습니다.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로 즐기기엔 안성맞춤인 셈입니다. 

 

 

천재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둔재 아들.(스포 있음)

 

그런 면에서 [트론 : 새로운 시작]은 분명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스토리 라인은 30년 전의 전작인 [컴퓨터 전사 트론]을 넘어서지도 못할 뿐더러, 넘어서고 싶은 의욕조차 안보입니다.

20년전 실종된 가상현실을 창조한 천재 아버지를 찾아 나선 샘의 모험은 그러한 [트론 : 새로운 시작]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데, 다짜고짜 가상현실 속에서 원반 던지기 게임을 하더니 어디선가 훅 하고 나타난 쿠오라(올리비아 와일드)에게 구출되고, 그러더니 난데없이 아버지를 만나고, 갑자기 영웅 행세를 하며 인류를 구합니다.

샘이 누구의 호출로 가상현실에 오게 되었는지(영화에선 클루가 끌어들인 것이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다면 앞뒤가 안맞는...), 그리고 쿠오라는 어떻게 알고 샘을 구한 것인지(이 의문의 유일한 정답은 샘을 가상현실로 호출한 것이 쿠오라라는 것인데... 증거는 없습니다. ^^;) 등에 대한 부연 설명 자체가 없고, 그저 인류를 위협하는 악당 처부수기에 몰두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트론의 존재인데, [컴퓨터 전사 트론]에서 플린을 도와 가상현실에서의 음모를 막았던 영웅 트론.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제목이 [트론 : 새로운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트론의 존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반전이라며 클루의 부하인 린즐러가 사실은 트론이라고 밝힙니다. 이 부분에서 클루를 도와 플린 부자를 쫓던 린즐러가 케빈의 '트론, 자네가 어쩌다가...'이 한마디에 갑자기 각성해서 클루를 공격하는 장면은 정말 어이가 상실되었던 최악의 장면입니다.

이렇듯 이 영화는 앞뒤 부연 설명 따위는 아예 없습니다. 트론이 어쩌다가 린즐러가 되었는지, 그런데 무슨 이유로 다시 각성했는지 조금만 시간을 내줬더라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을텐데, 애초부터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이 영화는 '그런건 알아서 뭐하게?'라며 관객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컴퓨터 전사 트론]의 흥행 실패로 인한 디즈니의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향한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인데, [트론 : 새로운 시작]이 국내에서 흥행에 죽을 쑤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단순한 스토리 라인 때문임을 생각한다면 참 묘한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그 둔재는 몸짱이었다.

 

하지만 전 나름 [트론 : 새로운 시작]이 재미있었습니다. 구피는 영화를 보는 도중 두번이나 깜박 졸았다고 실토했지만 저는 영화 중반, 다분히 디즈니스러운 케빈의 부성애 장면의 따분함을 제외하고는 꽤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비록 3D로 관람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형광 액션씬은 나름 참신했습니다. 원반 던지기, 바이크 추격, 전투기 추격 등 같은 형광 액션이라도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각각의 차별화를 준 것도 좋았는데 영화를 보며 마치 제가 재미있는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며 애초부터 스토리 라인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 타입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향한 네티즌들의 혹평이 제 기대도를 엄청 낮춰 놓았던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알게 모르게 내 머리 속에는 '[트론]은 재미없다.'라는 인식이 남아 있었을테니까요.

 

분명 [트론 : 새로운 시작]은 '잘 만든 영화다.'라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는 영화입니다. 전작인 [컴퓨터 전사 트론]이 천재였다면 30년이라는 진통 끝에 나온 그 아들인 [트론 : 새로운 시작]은 분명 아버지의 명예에 먹칠을 할 둔재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둔재라고 해서 우리 사회에 전혀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듯이 [트론 : 새로운 시작]은 비록 전작과 전혀 다른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특수효과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로써의 재미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천재 아버지와는 달리 둔재였지만 아버지는 가지지 못한 멋진 몸짱 몸매를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영화가 아닌 철저하게 관객과 호흡을 할 수 있는 오락영화를 만들겠다는 디즈니의 야심이 어느정도 제게 먹혀 들은 셈입니다. 

기왕이면 머리가 텅빈 몸짱보다 그래도 지식을 갖춘 몸짱이 매력있듯이 디즈니가 오락적 재미를 갖춘 블록버스터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면 스토리 라인을 조금 더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 놓았다면 더욱 괜찮은 오락 영화가 될 뻔했습니다. 그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천재에 몸짱까지 갖추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수 없다면 몸짱을 갖춘 것만으로 만족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