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이그잼] - 너희가 취업의 두려움을 아느냐?

쭈니-1 2011. 1. 5. 11:29

 

 

감독 : 스튜어트 헤젤딘

주연 : 나탈리 콕스, 콜린 살몬, 지미 미스트리, 루크 메이블리, 폴리아나 맥킨토시

 

 

너희가 취업의 두려움을 아느냐?

 

저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중상위권을 유지했었고, 당시 상업계 졸업생에게 꼭 필요하다는 자격증(주산 부기 각 2급)을 1학년때 일찌감치 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3학년 겨울 방학이 지날 때까지 취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보다 성적도 좋지 않고 자격증이 없던 친구들은 겨울 방학이 되기 전에 거의 취업에 성공했지만 전 취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너무 마른 몸매였습니다. 당시 제가 키 172cm에 몸무게가 50kg정도였습니다. 저희 집안 자체가 워낙 살이 안찌는 체질의 집합체라서(살찐 분이 단 한분도 안계십니다.) 제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찝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서류심사, 필기시험까지는 언제나 합격이었지만 최종 면접만 되면 면접관들이 '그런 호리호리한 몸으로 사회 생활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고, 그럴때마다 저는 제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에 대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결과는 면접 탈락이었죠.

그러한 경험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몸무게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살을 찌우기 위해 집에 라면 한 박스를 사놓고 자기 전에 꼭 라면을 끓어 먹고 잤으며(그 버릇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자기 전에 항상 배가 고픕니다.) 콜라와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덕분에 콜라 중독에 한동안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결국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살이 찌기 시작하더군요.(지금은 몸무게가 60kg조금 넘습니다.)

 

취업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물론 당시 제가 취업을 하지 못했던 이유가 단순히 몸이 말랐기 때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면접관이 제 아킬레스건을 건드렸을 때 제가 좀 더 잘 대처했다면 제 마른 몸매가 약점이 되지 않았겠지만 취업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렸던 어린 제겐 '말랐다'라는 얘기만 나와도 위축이 되어 버렸었습니다.

영국산 취업 스릴러 [이그잼]은 조금 과장되게 취업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 가두어 놓은 영화입니다. 세계 최고의 제약 회사에 취업을 해야 하는 여덟명의 사람들은 80분 안에 회사에서 원하는 문제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해답은 커녕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취업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린 사람들은 극한 선택을 하고 그들은 서로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빠집니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 실업자 신세를 꽤 오랫동안 면하지 못했던 저로써는 그들의 행동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지 못하자 나를 감싸던 울타리를 없어지고 세상 밖에 벌거벗은 채로 서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흔히 말하는 사회부적응자가 아닐지 고민하게 되고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자꾸만 조급해집니다. [이그잼]은 그러한 사람들의 심정을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 재현해 놓습니다.

 

시시한 반전, 하지만 놀라운 소재

 

물론 이 영화는 단순하게 취업이라는 소재로 이런 극한의 스릴러를 만들 수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를 등장시킵니다. 걸리면 치사율 100%인 이 미래의 바이러스의 유일한 치료제는 그들이 최종 합격 시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제약회사에서만 제조가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누구는 병에 걸린 애인을 위해, 또 누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신을 위해, 필사적으로 취업을 해야 했던 것이죠.

여기에 이 영화는 면접관이 제시한 질문이 무엇이고, 답은 무엇인가?라는 미스터리를 관객에게 던져놓습니다. 저는 솔직히 질문과 답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습니다.(회사 사장의 정체는 중반에 알아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관객에게 게임으로 제시한 질문과 답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은 조금 혼란스럽고, 거창했던 과정에 비해 시시하더군요.

그러나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에서 마지막 반전이 시시할 경우 '재미없는 스릴러'라고 판정내리는데 [이그잼]은 그럴 수 없는 것이 청년 실업이 넘쳐나는 이 시대를 관통하는 놀라운 소재 때문입니다. 정말 취업이 되지 않아 하루 하루가 공포스러웠던 경험을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 영화의 긴장감. 그것이 [이그잼]이 가진 최대 장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