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피아니스트의 전설] - 나는 이 전설에 찬성할 수 없다.

쭈니-1 2011. 1. 10. 11:10

 

 

감독 : 쥬세페 토르나토레

주연 : 팀 로스, 프릇 테일러 빈스

 

 

난 영화에 대해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다.

 

전 남들보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부합니다. 매주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 중에서 기대작이 꾸준히 2~3편은 되고, 앞으로 개봉 대기 중인 영화 중에서도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영화가 수두룩합니다. 문제는 그렇다보니 과거의 영화는 자연스럽게 제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제가 영화 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한 1992년 이전의 영화에 약한 이유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전 본 영화를 또 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인생의 영화가 있고, 그러한 영화는 여러번 반복해서 봅니다. 그런데 전 좋아하는 영화가 너무 많다보니 내 인생의 영화를 한 편 고로라면 일단 멈칫하게 되고, 제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경우도 고작 1~2번 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제가 영화를 보는 원칙은 국내 개봉작 위주입니다. 물론 화제의 영화일 경우 국내 미개봉작도 흥미를 가지지만, 대부분의 경우 영화에 대한 제 관심은 국내 개봉한 영화들에게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것 역시 너무 많은 기대작들을 한정시키는 저만의 오랜 방법입니다.    

 

내가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본 이유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사실 제가 관심을 가질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혹은 앞으로 개봉할 기대작도 아닙니다. 이 영화는 1998년 작으로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영화입니다. 보고 싶은 기대작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과거의 영화를 들추어 내는 것은 저와는 맞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개봉 화제작도 아닙니다. 한국말로 된 포스터가 있는 것을 보면 국내 개봉이 되기는 한 것 같은데 왠만한 국내 개봉작을 기억하는 제게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희미한 기억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국내에선 조용히 개봉했다가 비디오 시장으로 퇴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고 싶은 영화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제가 굳이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본 이유는 제 블로그 친구인 예니님이 이 영화가 인생의 영화라고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영화광이라 자부하면서도 인생의 영화가 별로 없는 저로써는 과연 어떤 영화이길래 한 사람의 인생의 영화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답니다.

 

흥미진진한 캐릭터, 그리고 멋진 음악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유럽과 미국으로 이민자를 싣는 버지니아호에서 1900년 1월 1일에 버려진 한 아이(그래서 이름도 나인틴 헌드레드입니다.)의 이야기입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육지에 가 본적이 없는 이 아이는 천부적인 피아노 실력으로 버지니아 호에서 피아노를 치며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결국 나인틴 헌드레드(팀 로스)의 피아노 실력은 나날이 명성을 더하갑니다. 하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는 결코 배에서 내리지 못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나인틴 헌드레드라는 캐릭터입니다. 천부적인 음악감각과 피아노 실력을 갖춘 그는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벌여 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죠. 팀 로스의 그 무표정한 얼굴은 그렇게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이 특별한 캐릭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음악 영화답게 이 영화의 음악 역시 정말 좋은데... 특히 나인틴 헌드레드와 재즈의 창시자가 버지니아 호에서 벌이는 피아노 대결 장면에서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그 미친듯한 피아노 실력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난 나인틴 헌드레드의 선택에 찬성할 수가 없다.(스포 포함)

 

그러나 버지니아 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나인틴 헌드레드는 여전히 버지니아 호에 남아 있는 것을 선택합니다. 물론 그러한 나인틴 헌드레드의 선택은 많은 의미를 함유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새장에 스스로 갇힌 천재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고, 살아가면서 수 많은 선택을 해야하는 현대인을 향한 위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그러한 나인틴 헌드레드의 선택에 동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 수가 없는 존재이고,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신의 선택은 자신과 관계를 맺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인틴 헌드레드가 세상에 나가길 거부하고 버지니아 호에 남을 선택을 하는 순간 그를 찾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왔던 맥스(프릇 테일러 빈스)는 상실감과 무기력증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인틴 헌드레드의 선택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최선일지 몰라도 맥스에겐 가슴에 못을 박는 최악의 선택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의 막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가끔 영화에서 자살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쩌면 멋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죽음이 멋질 것이라는 생각은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영화에 반대합니다. 분명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매력적인 부분이 많은 영화이지만 나인틴 헌드레드의 마지막 선택을 보며 그의 이기적인 모습에 한순간 정나미가 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남겨진 슬픔을 최근에 경험해 본 적이 있기에 영화를 보며 나인틴 헌드레드 보다 맥스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평생 그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테니까요.

그러한 이유로 예니님에게 이 영화는 인생의 영화이겠지만 제겐 괴팍한 천재의 이기적인 죽음을 담은 영화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합니다. 같은 영화를 두고 자신의 환경, 상황에 따라 이렇게 그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서로 다르니 말입니다. 그래도 예니님... 좋은 영화 추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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