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황해] - 끝까지 독하지는 못했다.

쭈니-1 2010. 12. 24. 12:58

 

 

감독 : 나홍진

주연 : 하정우, 김윤석, 조성하

개봉 : 2010년 12월 22일

관람 : 2010년 12월 23일

등급 : 18세 이상

 

 

새로운 타입의 극장 부적응자를 만나다.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닌 아주 평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극장을 찾아서일까요? 요즘들어서 부쩍 극장 부적응자들이 제 눈에 띕니다.

가장 흔한 극장 부적응자는 핸드폰 중독자입니다. 영화가 시작되었어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열심히 문자 확인하고, 심지어 통화까지 하시는 분들. 그 작은 핸드폰 불빛이 다른 관객들의 영화 관람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텐데... 핸드폰이 잠시라도 꺼지면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아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 관객들 중에 그런 핸드폰 중독 현상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 다음에 많은 극장 부적응자는 앞좌석의 등받이를 발로 차는 분들입니다. 요즘 극장들은 예전같지 않아서 좌석간의 간격이 꽤 넓은 편입니다. 물론 아무리 좌석간의 간격이 넓어도 좌석에 거의 눕다시피 앉고 다리를 쭈욱 편다면 뒷좌석의 등받이에 발이 닿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극장 부적응자들은 집중력 또한 약해서 수시로 자세를 바꾸며 뒷좌석 등받이를 건드립니다. 대부분 그러한 극장 부적응자는 남성 관객이 많습니다.

 

[황해]를 혼자 보던 날, 저는 새로운 타입의 극장 부적응자를 만났습니다. 제 바로 옆자리에 애인인듯 싶은 여성과 함께 앉은 남성 관객이었는데 아마 그 분은 제가 만난 그 수 많은 극장 부적응자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분일 것입니다.

일단 영화가 시작한지 10분 후에 입장하시더군요. 하지만 그건 애교로 봐줄 수 있습니다. 평일이고, 퇴근 후 바로 극장으로 오기엔 너무 이른 오후 7시 영화였으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그 분은 피 튀기는 장면을 보며 눈을 가리고 '속이 메스꺼워. 난 못 보겠어.'라며 난리법석을 떨더군요. 대부분 그런 내숭은 여성이 하는데 그날은 남성이 그러고 있으니 처음엔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다는 생각은 곧 짜증으로 바뀌었습니다. 영화가 잔인해서 못 보겠으면 혼자 조용히 눈을 가리던가, 아이면 그냥 극장 밖으로 나가면 될 것을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계속 중얼거리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게다가 영화 내용은 궁금했는지 '쟨 누구야? 왜 저래?'라며 끊임없이 옆의 여성 분에게 질문을 해대더군요. 그래도 여성 분이 개념은 있으셔서 '나중에 설명해줄께.'라며 시끄러운 남성 분을 조용히 시켜준 덕분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극장 부적응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극장에서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해준다면 극장 부적응자는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부디 극장 부적응자들이여! 내 돈내고 주위 사람들한테 욕 먹으며 영화볼 필요 없잖아요. 제발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하며 영화를 봤으면 좋겠네요.

 

 

더욱 독한 영화로 돌아오다.

 

영화 이야기의 시작부터 극장 부적응자의 이야기를 했더니 글을 쓰는 지금도 짜증이 밀려옵니다. 정말 영화 끝나고 청순한 척 하는 그 남성 분에게 '제발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극장에 오지 마세요.'라는 한 마디를 쏘아주고 싶었지만 제가 싸움을 잘하지 못하는 관계로... -_-;

암튼 극장 부적응자 때문에 정말 기대했던 [황해]의 영화 관람이 조금 망치긴 했습니다. 하지만 [황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초반부터 압도적인 '독함'으로 극장 부적응자로 인해 분산되었던 제 집중력을 잡아주더군요.

사실 [황해]를 기대했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독함'에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장편 영화 데뷔작인 [추격자]에서 독한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독했고, 스토리 라인도 독했으며,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도 독했습니다. 마지막에 미진이 죽는 장면에선 저 역시 독한 마음을 먹고 영화를 감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관객마저 독하게 만들어 버린 셈입니다.

[추격자]의 흥행은 한국 영화의 트랜드 마저 바꿔 놓았습니다. 갑자기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붐이 일더니 그들 영화들이 모두 [추격자]의 '독함'을 따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영화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저는 아직 [추격자]를 능가하는 독한 한국형 스릴러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배우도, 관객도 독하게 만들었던 나홍진 감독이 [추격자]의 독한 배우들인 하정우, 김윤석을 이끌고 [황해]로 컴백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관객에게 '독함'의 끝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합니다.

확실히 [황해]는 [추격자]보다 독해졌습니다. 편안한 극장 좌석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저조차도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라고 느껴질 만큼 하정우와 김윤석의 연기도 정말 독했고, 도끼와 식칼로 사람을 죽이고, 절단하는 장면이 반복되며 영화를 관람하는 저 역시도 독함의 끝을 맛봐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악마를 보았다]보다 독했습니다.)

[추격자]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지근한 연기로 존재감이 미약했던 서영희가 [추격자]이후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통해 독한 여배우 연기의 끝을 보여준 점을 감안한다면 나홍진 감독은 확실히 배우들을에게 독한 연기력을 이끌어내는데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 예상 외로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을 보면 그의 '독함'은 배우들의 연기력 뿐만 아니라 관객 마저도 바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홍진 감독의 '독함'은 [황해]를 감싸고 있었으며 그러한 '독함'에 중독된 저는 이 영화의 독한 장면들에 매료되어 마음 속으로 환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독함의 끝을 향해 내달린다.

 

[황해]의 내용은 [추격자]보다 복잡합니다. 연변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조선족 구남(하정우).  한국에 돈 벌러간 아내는 연락이 끊기고, 아내의 한국 밀입국을 위해 진 빚으로 인해 구남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그는 한국에 가서 사람을 죽여달라는 면가(김윤석)의 제안을 받아 들여 한국에 오게 됩니다.

그렇게 아내도 찾고 면가의 청부 살인도 완수해서 돈도 벌 작정으로 한국에 밀입국한 구남. 하지만 그가 살해해야 하는 김승현은 다른 이들에 의해 살해되고, 구남은 살인 누명만 쓰게 됩니다. 결국 구남은 경찰과 김승현을 살해한 김태원(조성하) 일당에게 쫓기기 시작하고 설상가상으로 면가마저 구남을 배신하며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처음엔 아주 단순한 스토리에서 시작한 [황해]는 러닝타임이 진행되는 동안 김승현을 살인하려고한 면가와 김태원, 그리고 면가에게 살인을 의뢰한 인물까지 뒤엉키며 복잡하게 꼬여 버립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꼬여버린 스토리 라인을 차근 차근 풀어나갈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꼬여버린 스토리 라인은 압도적인 잔인함으로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네개의 단락으로 나눠는데 첫 단락인 '택시운전수'에서 구남이 처한 상황과 그가 면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며 '독함'의 시동을 겁니다.

본격적인 '독함'은 두번째 단락인 '살인자'에서 펼쳐지는데 김승현을 살인하기 위한 구남의 계획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던 그 어떤 스릴러보다 치밀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한 치밀함을 느낄 새도 없이 김승현은 잔인하게 살해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이 '독함'이 시작되죠. 면가가 시킨대로 이미 죽은 김승현의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에선 그 생생한 효과음으로 인하여 두 눈과 귀를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구남이 경찰에 쫓기는 장면에선 제가 봤던 그 어떤 추격 장면보다 스펙타클했는데 수 십대의 차가 전복되는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도주하는 구남의 모습은 그 장면만로도 잘 만든 액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만 같은 놀라움을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독함'은 세번째 단락인 '조선족'에서 펼쳐집니다. 김태원과 손을 잡고 구남을 제거하기 위해 면가가 한국에 오는 장면에서부터는 사지절단은 아주 기본으로 펼쳐지더군요. 김윤석과 하정우는 누가 누가 더 독한가? 내기를 하는 것 마냥 서로를 향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독한 연기력을 마구 뿜어냅니다. 그들이 뿜어내는 독함만으로도 저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끝까지 독하지는 못했다.(스포 조금)

 

분명 [황해]는 [추격자]에 비해 스케일도 커졌고, 배우들의 독한 연기력도 향상되었으며, 영화 내내 뿜어져 나오는 '독함' 역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하지만 전 [황해]보다 [추격자]가 더 재미있었고, 인상깊었습니다. 그 이유는 [추격자]는 끝까지 독했지만 [황해]는 끝까지 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추격자]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어떻게 해서든 미진(서영희)이 살아남아 주기만을 바랬습니다. 어린 딸을 둔 그녀가 지영민(하정우)의 마수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그래서 엄중호(김윤석)를 열심히 응원했었습니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독하게도 그러한 제 바램을 이루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미진을 끔찍하게 죽임으로써 절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바로 그 점에 [추격자]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한번 본 것만으로도 결코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는 영화가 된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황해]는 달랐습니다. 너무 과도하게 꼬여버린 스토리 라인을 풀기 위해 네번째 단락인 '황해'에서 '독함'을 잠시 풀어 놓습니다. 아니 분명 영화의 후반부도 여전히 잔인했지만 그러한 잔인함보다 '누가? 왜? 면가에게 김승현 살인을 청부했는가?'와 구남의 아내 행방에 촛점이 맞춰졌습니다.

 

사실 네번째 단락에서 '독함'이 덜 느껴졌던 것은 그렇게 꼬여 버린 스토리 라인을 뒤늦라도 수습해야 했던 나홍진 감독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라인이 지나치게 꼬여 있다보니 러닝타임도 길어졌습니다. 아무리 독한 장면이라도 2시간 30분 동안 반복해서 보다보니 제게 어느 정도의 면역력이 생긴 셈이죠. 

게다가 너무 꼬여 버린 스토리 라인을 서둘러 정리하다보니 후반부 캐릭터간의 개연성도 확 떨어졌습니다. 특히 구남을 잡기 위해 손을 잡았던 태원과 면가가 서로를 배신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에서는 스토리를 정리하기 위해 저 두 캐릭터를 서둘러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구남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인데... [추격자]에서 '독함'의 클라이맥스가 미진의 죽음이었듯이 이 영화에서 '독함'의 클라이맥스는 구남의 최후여야 했는데 [추격자]와는 달리 구남의 최후는 임팩트가 적었습니다. 그리고 구남의 아내 행방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차라리 안 넣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넣던가... 암튼 그 장면은 제 맘에 그다지 들지 않더군요. 

[추격자]처럼 스토리 라인을 좀 더 단순화 시켰다면, 그래서 러닝타임을 조금 줄이고, '독함'에 좀 더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추격자]를 넘어서는 독한 스릴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독함'의 끝까지 치닫다가 마지막에 '독함'을 주춤했던 나홍진 감독의 주저함이 약간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독함'의 끝은 체험하지 못했지만 '독함'이 영화적인 재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

나홍진 감독은 분명 계속 주목해도 될 인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