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투어리스트] - 숨어있는 야누스 코드 찾기

쭈니-1 2010. 12. 16. 07:00

 

 

감독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주연 : 안젤리나 졸리, 조니 뎁, 폴 베터니

개봉 : 2010년 12월 9일

관람 : 2010년 12월 14일

등급 : 15세 이상

 

 

사람들이 여행을 꿈 꾸는 이유.... 그리고 내가 낯 선 곳으로의 여행을 꺼리는 이유

 

누구나 한번 쯤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꿀 것입니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을 때, 혹은 새로움을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여행을 계획합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더욱 일탈과 새로움을 갈구하는 여행자들을 설레게 합니다. 

하지만 한 때 저는 해외 여행을 극도로 꺼려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그 어떤 위험천만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겁 많은 저를 짓눌렀던 것입니다.

이렇듯 여행은 새로운 설레임을 줄 수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낯선 곳에서의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여행의 양면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김종욱 찾기]는 그러한 양면성 중에서 이국적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이라는 여행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낯선 여행지에서의 위험이라는 여행의 부정적인 요소를 강조한 영화가 있으니 바로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투어리스트]입니다.

 

[투어리스트]는 엘리제(안젤리나 졸리)에서 부터 시작하지만 영화의 제목이 나타내듯 사실상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프랭크(조니 뎁)입니다.

보수적인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수학 선생 노릇을 하던 프랭크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이탈리아행 열차에 몸을 맡깁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엘리제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납니다.

육감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녀는 노골적으로 프랭크를 유혹하고 프랭크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에서 함께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프랭크의 입장에서는 [김종욱 찾기]처럼 낯선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사랑이라는 여행의 긍정적인 요소가 부각된 영화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엘리제를 만난 댓가는 쓰디 썼습니다. 엘리제는 범죄조직의 돈을 횡령한 혐의로 관계 당국과 범죄조직에 쫓기고 있는 연인 알렉산더를 위해 프랭크를 이용한 것이고 그로 인하여 프랭크는 영문도 모르는 채 낯선 여행지에서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프랭크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여행의 긍정적인 요소가 부정적인 요소로 탈바꿈한 셈입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엘리제의 야누스적 매력!

 

프랭크가 그렇게 위기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한 이는 바로 엘리제입니다. 만약 엘리제가 프랭크의 여행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그의 여행은 어쩌면 아주 평범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투어리스트]에서 엘리제의 매력은 절대적입니다. 엘리제는 프랭크의 여행을 가슴 설레는 낭만적인 여행으로 만들 수도 있고, 목숨을 건 모험을 해야 하는 악몽같은 여행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엘리제라는 캐릭터 자체에 매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설정입니다.

그런 면에서 [투어리스트]의 엘리제는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할만합니다. 영국의 특수요원들에게 감시를 당하면서도 여유만만하게 그들의 추격을 뿌리친 그녀는 프랭크를 이용하여 그를 위험에 빠뜨렸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범죄조직이 개입하여 프랭크가 위기에 빠지자 프랭크의 위험을 모르는 채 했던 애치슨(폴 베터니)와는 달리 그를 도와 줍니다. 그녀는 프랭크에게 여행에서 낭만적인 우연한 만남을 제공하기도 하고, 낯선 여행지에서의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고, 그러한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합니다. 상당히 양면적인 캐릭터인 셈입니다.

 

그러한 엘리제를 안젤리나 졸리에게 맡긴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선택 역시 탁월했습니다. 현존하는 여배우 중에서 저는 안젤리나 졸리의 카리스마를 넘어서는 배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에게 카리스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여배우로써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툼 레이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원티드], [솔트] 등 여전사를 내세운 액션 영화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인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양면적인 엘리제라는 캐릭터를 몸에 딱 맞는 옷 마냥 편안하게 연기를 하더군요.

사실 영화의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프랭크는 어리버리한 여행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에 엘리제 혼자 영화의 재미를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위험한 팜므파탈에서 사랑에 빠진 나약한 여인으로 종횡무진 변신하며 이 영화의 야누스적인 재미를 잘 이끌어 냈습니다.   

 

 

프랭크의 변신은 야누스의 결정판

 

영화의 중반까지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엘리제가 영화의 재미를 책임진다면 영화의 후반부터는 어리버리한 여행자로 엘리제의 카리스마에 파묻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던 프랭크가 나섭니다.

사실 중반까지 프랭크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매력이 없었습니다. 낯선 여자의 유혹에 대책없이 넘어가고 그로 인하여 위기에 처하자 어리숙한 대처로 자꾸만 스스로 위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양새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구해주고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는 엘리제에게 사랑을 느끼고 스스로 위험한 모험 속에 빠져드는 후반부터는  프랭크의 감춰진 매력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비로서 주인공으로써의 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셈이죠.

엘리제가 처음엔 위험한 팜므타팔에서 점점 사랑에 빠진 나약한 여인으로 변신하는 동안 프랭크는 오히려 어리버리한 여행자에서 위기에 빠진 엘리제를 구해주는 강인한 주인공으로 변하며 영화의 재미를 새롭게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도 캐스팅의 잘묘함이 드러나는데 사실 조니 뎁은 액션과는 거리가 먼 배우입니다. 팀 버튼 감독의 페르소나로써 명성을 쌓았으며, 그의 대표적인 액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도 정통적인 액션 영웅이 아닌 뻔질거리며 우스꽝스럽게 악당을 무찌르는 약간은 코믹한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었습니다.

[투어리스트]의 프랭크는 그러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잭 스패로우 선장을 현대로 옮긴 듯한 캐릭터였습니다. 어리버리하고 우스꽝스럽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용기를 발휘하는 잭 스패로우 선장. 프랭크 역시 잭 스패로우 선장 처럼 어리버리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여인 엘리제를 위해서 스스로 위기 속에 걸어 들어가는 용기있는 모습이 딱 닮아 있었습니다.

처음 조니 뎁의 캐스팅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어리버리한 여행자에서 우스꽝스럽지만 용감한 잭 스패로우 선장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 그래서 조니 뎁을 캐스팅했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액션은 빈약하지만 야누스 코드 찾는 재미가 솔솔하다.

 

사실 액션 영화로써 [투어리스트]를 평가한다면 낙제점에 불과합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하기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액션에 대한 기대감이 컸겠지만 [투어리스트]의 액션은 쉴새없이 터지는 요즘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비교한다면 '너무 잔잔하다'라는 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듯 보입니다.

그렇다고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도 낙제점입니다. 이 영화의 스릴러로써의 백미는 마지막 알렉산더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인데 사실 영화의 중반에 저는 눈치를 챘었고, 구피 역시도 알렉산더의 정체가 뻔히 보였다고 하니 이 영화의 반전은 실패나 다름없다고 생각됩니다.

스릴러 장르의 영화에서 마지막 반전을 대부분의 관객에게 들켰다는 것은 그 만큼 이 영화의 완성도가 높지 않음을 뜻합니다. 물론 반전을 들켰다고 완성도가 낮은 스릴러 영화로 판단할 수는 없을 테지만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를 잃은 스릴러로써의 비난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어리스트]의 장르를 액션 스릴러라고 한다면 [투어리스트]는 액션도, 스릴러도 실패한 영화적 재미가 부족한 상업 영화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전 이 영화의 재미를 다른 곳에서 찾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설명한 야누스 코드입니다. 이 영화에서 야누스 코드는 꽤 많은 곳에 숨어 있는데 여행자가 처할 수 있는 낭만과 위험이라는 양면적인 상황부터 시작하여 엘리제와 프랭크가 보여준 전혀 다른 양면적인 캐릭터 성격까지... 물론 영화의 마지막 반전 역시 야누스 코드가 깊숙히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 야누스적인 양면적 성격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기에 배우들의 연기력과 매력이 상당히 중요했는데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이라는 세기의 캐스팅이 필요했던 이유 역시 그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첫 느낌은 '뭐야... 액션도 빈약하고 반전도 뻔하잖아.'라는 불평불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지 하루가 지나고 나자 안젤리나 졸리의 '위험한 매력'과 조니 뎁의 '어리버리한 용기'가 자꾸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네요.

뭐 굳이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면 [투어리스트]를 볼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지만 만약 그들을 좋아한다면 그들의 연기력과 양면적인 매력에 만족할 수 있을만한 영화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야누스의 양면적인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며 자신이 갖고 있는 야누스 코드를 찾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