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김종욱 찾기] -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우리를 위한 영화.

쭈니-1 2010. 12. 15. 06:30

 

 

감독 : 장유정

주연 : 임수정, 공유, 천호진, 전수경, 류승수

개봉 : 2010년 12월 8일

관람 : 2010년 12월 13일

등급 : 12세 이상

 

 

우리에게도 김종욱이 있지 않았던가?

 

10년도 지난 일입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낯선 여성에게서 메일이 왔었습니다. 내용은 김동준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 혹시 저보고 자신이 찾는 그 사람이 아니냐고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여성의 사연은 해외 공항에서 우연히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는데 이름만 묻고 연락처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지금에 와서 그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고, 그래서 '아이 러브 스쿨'에 등록된 김동준이라는 이름의 사람에게 모두 메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김동준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찾는 김동준이 아니다. 하지만 꼭 당신의 김동준을 찾았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의 답장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그 여성에게 답장이 왔는데 너무 고맙다고, 수 십명의 김동준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이렇게 답장을 보낸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며 제 응원 메일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내어 그를 찾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첫사랑(혹은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나선 것은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녀는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인연을 잊지 못하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러했는데 제가 '아이 러브 스쿨'에 가입한 것은 제 첫사랑이었던 강소영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끝나갈 무렵 학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를 저는 3년 동안이나 짝사랑을 했었고, 용기가 없어서 고백 한번 하지 못하고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물론 그녀를 다시 만난다고 해서 멋진 고백을 하여 첫사랑을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녀가 어떻게 변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첫사랑, 혹은 잊혀지지 않는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 본적이 있나요? 그 사람의 미니홈피를 몰래 들여다 보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포털 사이트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쳐보기도 하지 않았나요? [김종욱 찾기]는 바로 그러한 저를 위한, 그리고 여러분을 위한 영화입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녀... 왜?

 

뮤지컬의 무대 감독을 하고 있는 서지우(임수정) 역시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도 여행에서 운명처럼 만난 김종욱. 그녀는 낯선 이국의 분위기에 취해 그와의 사랑에 깊게 빠져듭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그녀의 마음 속에 더욱 깊숙히 자리를 잡을 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녀는 김종욱을 못 찾는 것이 아닌 안 찾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운명을 운명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그 사람과의 사랑이 어떠한 결말을 가져올지 몰라 두려운 마음에 그를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그러한 궤변에 여러분들은 공감하시나요? 아마도 공감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 공감합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사실 저는 제 첫사랑이었던 강소영에게 고백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녀 역시 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친구들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녀가 직접 제게 절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습니다.(학원에서 제 뒷자리에 앉은 그녀는 발로 제 발을 톡톡 치며 1시간동안 신호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녀에게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상상만으로 이루어진 제 아름다운 첫사랑이 실제 사랑으로 연결되면서 아름다웠던 환상이 깨어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리석었습니다. 그렇게 기회를 놓치자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고, 전 제가 원하던대로(?) 3년간 짝사랑을 맘껏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짝사랑의 후유증은 꽤 깊었습니다. 제 20대의 대부분을 저는 과도하게 아름답게 포장된 가짜 기억 속의 짝사랑을 잊는대 소모했어야 했고, 그렇게 인생의 황금같은 20대를 보내고 나서야 저는 겨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저는 서지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김종욱과의 사랑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그러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평생 그 아름다운 기억을 안고 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그랬듯이 그녀 역시 그에 대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의 '김종욱 찾기' 여정은 첫사랑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닌 가슴 깊이 자리 잡은 김종욱에 대한 사랑의 기억을 떨치는 여정이 되었으며, 당연하게도 그 여정의 끝에는 첫사랑의 기억을 떨치고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서지우의 환한 모습이었습니다.

 

 

첫사랑을 찾아주는 그... 결국!

 

김종욱을 잊지 못하는 딸을 보며 안타까웠던 지우의 아버지(천호진)는 지우의 손을 이끌고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찾습니다. 그 곳에는 원리원칙에 철저한 남자 한기준(공유)이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서지우는 김종욱을 찾는 것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기억 속의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으니까요. 하지만 원리원칙에 철저한 한기준은 김종욱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고객에 대한 도리이고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영화는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서지우와 한기준이 김종욱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장유정 감독은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는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주도하는 것은 남자인 한기준이 아닌 여자인 서지우라는 점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이 여행이 서지우를 위한, 그리고 서지우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행이었으니까요.

 

그러한 면에서 장유정 감독의 캐릭터 설정은 아주 절묘했습니다. 한기준이라는 캐릭터에 너무 많은 것을 할애하지 않음으로써 영화의 주도권을 서지우에게 끝까지 유지시킵니다.

사실 한기준은 조금은 한심하다 싶을 정도로 어리버리합니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그는 착하기는 하지만 사회에 적응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캐릭터입니다.

그와 반대로 서지우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자신의 꿈을, 자신의 첫사랑을 외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꿈이,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의 상처를 알고 있기에 그녀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그렇게 사회 속에서 녹아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한기준이라는 캐릭터 하나만 놓고본다면 그다지 매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서지우 옆에 한기준을 놓아 둔다면 한기준은 너무 현실적인 서지우의 약점을 어리버리함으로 보완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됩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대부분 남녀 커플을 거의 동등한 선상에 올려놓고 그들의 사랑이 연결되는 과정을 담고 있었던 것에 반에 [김종욱 찾기]는 서지우의 첫사랑을 잊기 위한 여정과 그 여정의 끝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한 서지우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한기준은 단지 여정을 함께 해주는 동반자이며 서지우의 정신적 성장인 새로운 사랑의 상징일 뿐입니다. 탁월하면서도 색다른 구조입니다.

 

 

뮤지컬과 영화의 절묘한 만남

 

우리가 [김종욱 찾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브로드웨이의 유명 뮤지컬을 영화화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척박한 뮤지컬 환경 속에서는 그러한 작업은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유명 영화를, 혹은 성공한 드라마를 뮤지컬화 함으로써 뮤지컬에 관심이 없던 일반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종욱 찾기]가 이를 뒤집었습니다. 먼저 뮤지컬로 성공을 거둔 이후 영화로 만들어 지며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김종욱 찾기]는 그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뮤지컬의 영화화가 원작의 장점을 고스란히 물러 받은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는 것에 반에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로 제작이 된 것입니다.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음악이라는 장점을 포기하고 스토리 라인만으로 승부를 띄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종욱 찾기]에서 뮤지컬 원작의 장점이 전혀 안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연출 및 작사, 극본을 맡았던 장유정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도 드러냅니다.

경찰서에서 첫사랑에게 사기를 당한 남성들이 첫사랑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장면은 그들의 대사 하나 하나에 음율이 느껴져 내가 노래를 듣고 있는지, 대사를 듣고 있는지 헷갈리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서지우가 뮤지컬 '라스트 쇼'의 무대에 서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김종욱 찾기]에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힐만 했습니다.

이렇듯 장유정 감독은 겉으로 드러내놓지 않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원작의 장점을 영화에서 활용하는 테크닉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첫사랑에 대한 관객의 기억을 영화 속에 잘 버무린 완벽한 시나리오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갇히지 않고 캐릭터를 조화시킨 독특함, 그리고 뮤지컬 원작의 드러나지 않는 장점까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는 [김종욱 찾기]는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바로 저의, 그리고 여러분의 영화입니다.

 

내가 첫사랑에게 고백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현실에서의 사랑보다는 상상 속의 아름다운 사랑을 더욱 갈구했기 때문이다.

해보지도 않고 그녀와의 현실에서의 사랑이 상상 속의 사랑보다 아름답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 지은 나는 정말 어리석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