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쩨쩨한 로맨스] - 성인만화는 새로움을 싣고...

쭈니-1 2010. 12. 8. 10:40

 

 

 

감독 : 김정훈

주연 : 이선균, 최강희, 류현경, 송유하

개봉 : 2010년 12월 1일

관람 : 2010년 12월 7일

등급 : 18세 이상

 

 

12월의 미션 스타트!!!

 

사람이 추워지면 게을러지는가 봅니다. 지난 11월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할인 행사를 하길래 몸 좀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 운동을 계획했었는데, 새벽의 따뜻한 이불 속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운동은 내년 봄으로 연기했었습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일찌감치 월요일이나 화요일은 [쩨쩨한 로맨스]를 보겠다고 계획을 세워 놓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12월의 매서운 추위는 절 주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책상에 수북히 쌓여 있는 사용 기한이 12월 27일 인 메가박스 영화 예매권 10장을 보며 다시한번 마음을 잡았습니다. 12월 27일까지 영화 열 편을 보려면 오늘 꼭 [쩨쩨한 로맨스]를 봐야한다는... 그렇게 겨울 옷으로 온 몸을 칭칭 감고, 남들은 연인끼리 손잡고 보는 로맨틱 코미디를 혼자 극장 한 구석에서 봐야 하는 뻘쭘함을 이겨내며 결국 [쩨쩨한 로맨스]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올해 극장에서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참 많이 웃었습니다. 이선균의 그 뻔뻔한 연기와 최강희의 귀여운 연기는 예상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팡팡' 터졌고, 여기에 성인 만화의 상상력을 이용한 다양한 볼거리들이 [쩨쩨한 로맨스]에는 가득 넘쳐 흘렀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너무 많은 호평을 봐서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최강희는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을 아직 뛰어 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고,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성에서 구해줄 성인 만화라는 색다른 소재는 예상과는 달리 그다지 강력하지는 못했습니다. 감히 점수를 매겨본다면 기대도 90점에 만족도 80점 정도. 그래도 [이층의 악당]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시라노 : 연애조작단]과 비교한다면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이 정도면 로맨틱 코미디로써는 합격점을 주고 싶네요.

 

 

이선균, 최강희의 매력은 최강!

 

일단 이 영화의 최고 재미는 역시 이선균과 최강희의 환상 호흡입니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만큼 주연 배우의 매력에 기대는 영화 장르는 드물 것입니다. 그런 만큼 [쩨쩨한 로맨스]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선균과 최강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선균은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만합니다. 물론 그는 TV 미니시리즈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 로맨틱 가이의 명성을 쌓았지만 영화에서는 [우리 동네], [밤과 낮], [파주], [옥희의 영화] 등으로 가벼운 영화보다는 주로 무거운 영화에 출연했었습니다. 간혹 [잔혹한 출근], [로맨틱 아일랜드]에 출연하였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번 [쩨쩨한 로맨스]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매력을 확실하게 풍겨냅니다. 다림(최강희)과의 포복절도할 로맨스를 펼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세 살때 어머니를 잃은 탓에 애정결핍 증상을 보이며 아버지가 그린 어머니의 자화상에 집착하는 가볍지만은 않은 정배라는 캐릭터는 이선균의 연기 덕분에 가벼움과 무거움의 적절한 선을 지켜냈습니다.

 

최강희의 연기는 이번 영화에서도 최강이었습니다. 섹스 한번 해보지 못한 섹스 칼럼리스트 다림을 연기한 그녀는 순수와 도발을 오고가며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보여줬던 매력을 이번 영화에서도 맘껏 발휘합니다.

특히 섹스를 여성 잡지에서 배운 그녀만의 섹스 테크닉은 [이층의 악당]에서 창인(한석규)의 지하 창고 탈출씬과 더불어 올해 제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웃긴 장면으로 등극할 예정입니다.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다림 역시 충분히 아픔이 있는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볍기만 했다는 점입니다. 면접본 회사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정배와의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장면에서 사회인으로써의 안정적인 길과 만화 스토리 작가로써의 모험적인 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요?

그렇게 다인이 너무 가볍게 방방 떠있었기에 그녀가 마지막에 정배에게 오열하는 장면에서 약간의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그 어떤 역경에서도 실실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그녀이기에 갑작스럽게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정배를 원망하는 장면은 조금 그녀답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성인만화가 조금 더 과감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쩨쩨한 로맨스]가 이선균과 최강희의 매력을 담보로한 로맨틱 코미디로써의 재미만을 구축했다면 결국 이 영화는 그냥 그저그런 로맨틱 코미디에만 그쳤을 것입니다. 평범함보다 색다름을 추구하는 요즘 관객의 입맛에 맞출려면 [쩨쩨한 로맨스]는 새로움을 제시했야만 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성인만화입니다.

성인만화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이라는 아이디어는 분명 색달랐습니다. 성인만화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섹스를 주 소재로 삼은 만화들을 생각할 수 있는데 섹스는 로맨틱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들이 육체적 사랑보다는 순수한 사랑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쩨쩨한 로맨스]는 그러한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깼습니다. 이 영화의 로맨틱 코드는 섹스이고, 섹스도 로맨틱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꽤 잘만든 로맨틱 코미디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기왕 성인 만화를 통해 새로움을 구축했다면 좀 더 과감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영화 속의 만화인 '킬러 본색'은 킬러라는 본연의 임무를 잊고 타깃과의 섹스를 탐닉하는 여성 킬러의 이야기입니다. 살인과 섹스라는 꽤 강도높은 소재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영화 속의 '킬러 본색'은 그 표현 수위가 낮았습니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최초의 극장용 성인 애니메이션이었던 [블루 시걸] 수준 밖에 안되 보였습니다.

영화 속의 만화인 '킬러 본색'에 좀 더 비중을 두고 그 완성도를 높였다면, 그래서 영화 속의 만화 그 자체만으로도 또 하나의 재미를 줄 수 있다면 성인 만화라는 이 영화의 독특한 소재가 더욱 새롭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쩨쩨한 로맨스]는 정배와 다인의 캐릭터와 이선균, 최강희의 코믹하고 로맨틱한 연기에 모든 것을 집중하며 '킬러 본색'은 정작 펼쳐만 놓고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새로움의 추구에 난 박수를 보낸다.

 

저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전형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남녀가 있고, 그들이 처음엔 투닥거리며 싸우다가 사랑을 키우고, 약간의 위기가 있지만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끝나는...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들은 그런 절차를 밟아왔습니다. [쩨쩨한 로맨스] 역시 그러한 절차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밟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한국 영화의 주류 장르로 등극했다가 식상함으로 인하여 관객의 외면을 받은 아픔이 있었던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그러한 과거의 아픔을 발판 삼아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살인마 여성과 순수한 남자의 사랑으로 호평을 받았고, [시라노 : 연애조작단]은 프랑스의 고전 희곡을 소재로 사용하였으며, [이층의 악당]은 악당 남자와 히스테릭한 여자를 내세워 색다른 로맨틱 스릴러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들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하며 2010년 주류 장르로 등극한 스릴러 영화의 열풍을 누르고 2011년의 새로운 주류 장르 등극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들이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충실하기만 한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뭔가 새로운 소재를 이용하여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가 점점 진화하고 있는 셈이죠.

작년 [추격자]의 흥행 성공이후 엇비슷한 스릴러 영화만 내놓다가 흥행 실패의 쓴 잔을 맛 본 한국 영화계는 그러한 점을 눈여겨 보고 새로움의 추구에 대한 관객의 열망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쩨쩨한 로맨스]는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충실하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비법을 이 영화는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쩨쩨한 로맨스]가 제 개인적인 높은 기대도에는 2% 부족했지만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발전에는 기여를 할 영화라고 봅니다. 그래서 전 [쩨쩨한 로맨스]에 오늘도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그들의 사랑 방정식은 쩨쩨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새로움에 대한 모험은 쩨쩨하지 않다.

쩨쩨함과 대담함 사이에서 균형 맞추기에 성공한 이 영화는

그렇기에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교본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

 

 

* 이 글에 언급된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