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 - 그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며...

쭈니-1 2010. 12. 16. 16:59

 

 

감독 : 데이빗 예이츠

주연 : 다니엘 래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랄프 파인즈

개봉 : 2010년 12월 15일

관람 : 2010년 12월 15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원작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영화가 걱정되긴 처음이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처음 국내에 개봉한 것이 2001년 겨울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저는 판타지 영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특히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아동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족 영화 쯤으로 치부했습니다.

게다가 2001년 겨울은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가 개봉했던 해이기도 합니다.(정확히는 2001년 12월 31일에 개봉했습니다.) 거대한 스케일의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에 압도당한 제 눈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들어올리 만무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이 개봉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 눈을 사로 잡은 것은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이었습니다. 저는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은 극장에서 보고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은 비디오로 넘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저는 구피와 막 연애를 시작한 무렵이었는데, 구피는 '해리 포터'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무조건 극장에서 챙겨보고, 원작도 전부 사서 읽기 시작한 것은 구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구피가 좋아하는 것은 같이 좋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저는 스스로 '해리 포터'의 팬이 되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저 역시도 점점 '해리 포터'의 진짜 팬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구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해리 포터'의 이야기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원작자인 조앤 K. 롤링의 소설이 있었습니다. 이모네 집에서 엊혀 사는 천덕꾸러기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점차 세상을 구할 마법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읽으며 저는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동심의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읽다보니 아무래도 영화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영화화된 '해리 포터 시리즈' 중 만족하면서 본 것은 유일하게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뿐이었으니까요. 이 모든 것이 원작 소설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라는 기대감을 잔뜩 안고 읽기 시작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달랐습니다. 원작 소설 자체가 너무 어두웠고, 답답했으며,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영화화될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걱정이 되었습니다.

 

 

2시간 30분이 흘렀건만 절반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하다.

 

지금까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으며 원작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러한 원작을 영화가 망칠까봐 걱정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원작 자체가 실망스러워서 오히려 영화는 더 실망스러울까봐 걱정하긴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감독은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를 통해 제 개인적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 중 최악의 감독으로 손꼽고 있는 데이빗 예이츠였으니 제 걱정은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데이빗 예이츠 감독을 싫어하는 이유는 원작을 영화화하며 무리한 생략으로 스토리 자체를 반토막 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는 해리의 불안한 내면과 초 쳉과의 사춘기적 사랑을 생략하고 해리와 볼드모트의 대결에 모든 촛점을 맞추어 버리더니,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에선 가장 중요한 볼드모트의 과거를 몽땅 생략하고 덤블도어의 죽음에 촛점을 맞추어 버렸습니다. 그는 중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에만 집착하여 원작의 재미를 스스로 잃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처음부터 두 편으로 나눠어 제작되었습니다. 데이빗 예이츠 감독이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에서 보여줬던 극단적인 원작의 생략이 이번 영화에선 어느정도 완화되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 일으킬만 했습니다.

 

그렇게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서 영화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제 기대대로 흘러 갔습니다. 원작 소설을 읽은지 벌써 8개월이 흘렀지만 데이빗 예이츠 감독이 이번만큼은 원작에 충실했다는 평을 받아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원작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영화 속에  촘촘히 자리 잡아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편의 영화 러닝 타임이 무려 2시간 30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아직 많은 이야기를 남긴채 끝이 나버립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단순하게 원작에만 충실한 영화는 아닙니다. 아무리 러닝타임을 길게 가져간다 할지라도 원작의 모든 것을 담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적당히 원작의 내용을 생략할 것은 생략를 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데이빗 에이츠 감독은 적절한 원작의 생략이 아닌 가장 중요한 것을 생략하며 영화를 반토막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에서는 아닙니다. 그는 원작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이었던 덤블도어의 과거 부분을 통째로 드러내 버렸고, 덕분에 원작이 가지고 있던 혼란과 답답함이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습니다.

최소한 이번만큼은 그의 특기인 원작의 생략이 제겐 긍정적으로 보여졌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원작 자체가 이전 작품보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략 혹은 압축의 미학.

 

일단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은 제가 시리즈 중 최악이라고 평가했던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에 비한다면 훨씬 나아진 영화적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작에 대한 실망감에서 나온 것일지 몰라도 최소한 내년에 개봉하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원작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답답했던 덤블도어의 과거 부분을 생략하고 그 대신 나머지 부분들은 간략하게나마 충실히 스크린 속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책을 읽으며 혼자 상상해야 했던 여러 명의 해리 포터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장면들과 해리와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론(루퍼트 그린트)이 마법부에 위장하여 잠입하는 장면, '이러쿵 저러쿵'의 편집자인 러브굿의 이상한 집의 풍경 등이 아기자기한 재미와 꽤 매력적인 세트 속에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옛날 옛적에 세 명의 형제가 죽음의 성물을 손에 넣는 일화를 다룬 부분에서는 그림자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표현되어 영화와는 별도로 독특한 한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괜찮은 연출력을 지녔으면서 왜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는 그 정도밖에 못 만들 었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하더군요.

 

물론 덤블도어의 과거 부분이 생략되면서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원작에서 꽤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그린델왈드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에서 덤블도어의 과거 부분이 복원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린델왈드는 그대로 생략될 처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린델왈드가 생략되어진 아쉬움보다 원작의 답답함이 영화에선 덜해졌다는 부분이 오히려 저는 더 안심이 되었습니다.

덤블도어의 과거 장면도 그러하고, 볼드모트(랄프 파인즈)를 무찌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호크룩스를 어떻게 찾아 없앨지 그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해리, 론, 헤르미온느가 서로 싸우는 장면은 책을 읽으며 너무 많은 부분이 그 부분에 할애되어 있었고, 스토리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답답하고 지루했는데 영화에선 적절한 압축으로 순식간에 그들의 갈등을 후다닥 표현하고 넘어갑니다. 

결국 그러한 원작의 생략과 압축은 '해리 포터 시리즈' 원작의 열렬한 팬에겐 아쉬움을,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전부 보지 못한 이들에겐 스토리의 난해함을 줄 수 있었지만, 그 반대로 원작의 지루함에 실망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를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꼬박 꼬박 원작도 읽고 영화도 봤던 제겐 참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을 바라봐야 하는 미묘한 심정

 

저녁 10시 30분에 시작한 영화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끝을 맺었습니다. 회사에서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쉬지도 못하고 극장으로 향했던 저와 구피는 이제 몇 시간의 선 잠만 자고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피곤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절 피곤하게 만든(?)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을 원망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동안 왠지 모를 흐뭇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화의 재미와는 별도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해리 포터 시리즈' 중 최악으로 평가하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를 볼 때도 그러한 흐뭇함을 저는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영화와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볼 때만 해도 조그만 꼬마에 불과했던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점차 소년에서 청년으로,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들의 성장에 흐뭇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그란 안경을 썼던 왜소한 소년은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곱슬머리의 얄미운 모범생이었던 소녀는 이제 아름다운 숙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영화의 중간에 펼쳐지는 해리와 지니의 키스씬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론과 헤르미온느의 러브 라인 역시 그들의 성장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즐거웠습니다.(그래도 헤르미온느가 아깝습니다. 흑~)

과연 그 어떤 영화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가 있을까요?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저는 당시 사귀었던 구피와 결혼을 했고, 웅이를 낳았고, 이제 웅이가 학교에 들어가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변하는 동안 그들 역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그렇게 10년 동안 저와 함께 성장을 해온 것입니다. 

이제 내년이면 그들을 떠나 보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의 해리, 론, 헤르미온느를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만난다고 할지라도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해리 포터, 엠마 왓슨의 헤르미온느, 루퍼트 그린트의 론은 분명 내년에 개봉할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마지막이 될테죠.

어린 시절부터 봐 온 귀여운 아이들이 성년이 되어 영영 머나먼 곳으로 떠나 더이상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잘 커준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 흐뭇함이라는 감정이 이 영화를 보며 자꾸만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은 제게 그 어떤 영화도 가져다 주지 못한 특별한 감정을 안겨준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내년에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를 보면 그러한 감정이 더욱 강해 지겠죠. 어쩌면 그땐 나도 모르게 한 줄기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그 날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정말 잘 커줬다.

난 이제 내년에 찾아올 너희들과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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