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영탁
주연 : 차태현, 강예원, 이문수, 고창석, 장영남, 천보근
개봉 : 2010년 12월 22일
관람 : 2010년 12월 27일
등급 : 12세 이상
구피의 생일 선물도 어김없이 영화보기이다.
12월 27일은 구피의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 바쁜 구피와 저는 생일을 챙길 여력이 없었죠. 애초의 계획대로였다면 웅이는 장모님께 맡겨두고 구피와 근사한 외식을 할 계획이었지만 '나 오늘 야근해.'라는 구피의 시큰둥한 한마디 덕분에 외식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생일날 아침을 그냥 출근시킬 수가 없어서 저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장모님이 전날 끓여주신 미역국을 냄비에 넣고 보글보글 끓여 출근 준비에 여념이 없는 구피에게 후루룩 마시라고 강요했답니다. '나 늦었어.'라며 짜증을 내면서도 제가 끓여준 미역국을 남긴 없이 마시는 구피. 그렇게 직딩의 서글픈 생일날 아침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퇴근길 걱정을 하는 동안 저는 어쩌면 구피도 회사 창밖을 바라보며 하늘이 주신 선물인 새하얀 눈을 소녀적 감수성에 취해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퇴근 후 저는 제 차에 달린 고드름을 제거하느라 늦게 웅이에게 갔고, 구피 역시 야근때문에 늦게 웅이에게 갔습니다. 자기 생일은 칼같이 챙겨먹으면서 엄마, 아빠 생일은 은근슬쩍 넘어가는 웅이의 능구렁이같은 미소를 보며 또 그렇게 구피의 생일날 저녁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웅이와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구피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졸랐습니다. 구피는 '피곤해. 쉬고 싶어.'라고 투덜거렸지만 아침에 지각을 무릅쓰고 미역국을 마셨던 것처럼 구피는 피곤함에 투덜거리면서도 역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내 생일 선물은 영화 보기야.'라고 벌써 몇 년째부터 저는 우기고 있었지만 사실 영화 보기는 제가 구피에게 주는 선물이 아닌 자신의 생일을 맞이한 구피가 제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구피는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 저를 더 많이 생각하고 배려해줬으니까요.
구피와 함께 [헬로우 고스트]를 보고 새벽 12시 30분에 집으로 가는 길, 하늘에선 또 다시 눈이 휘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스노우 체인 하나 없는 초보 운전인 저는 거북이 걸음으로 차를 몰아야 했지만, 차 창밖으로 보이는 새하얀 눈은 올해도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구피의 생일을 축복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차태현... 연기 변신에 성공하다.
구피의 생일날 선택한 [헬로우 고스트]는 지난 11월 30일 [헬로우 고스트] 쇼케이스에 참가하면서 저와 인연을 맺은 영화입니다. 쇼케이스에서 본 [헬로우 고스트]는 차태현의 원맨쇼가 돋보이는 코미디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헬로우 고스트]를 그다지 기대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헬로우 고스트]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웃고 즐기는 평범한 코미디 영화에 불과했거든요.
게다가 차태현의 코미디라니... 이제 식상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차태현은 [엽기적인 그녀]로 인기를 얻은 이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복면달호], [과속 스캔들] 등 코미디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배우입니다. 물론 그도 연기 변신을 시도하긴 했습니다. [연애소설], [파랑주의보], [새드무비] 등을 통해 멜로 연기를 선보였지만 아직까지 차태현에겐 코미디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헬로우 고스트]를 별로 기대안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차태현이 가장 잘 하는 것은 코미디 연기이지만 전 그의 코미디 연기에 조금 질려 있었고, 굳이 비싼 극장비를 내고 그의 코미디 연기를 극장에서 봐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헬로우 고스트] 쇼케이스에서 받은 [헬로우 고스트] 전용 예매권과 12월 한달동안 부지런히 극장을 오고간 덕분에 저희 동네 멀티플렉스에서 제가 안 본 영화가 [헬로우 고스트] 단 한 편뿐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헬로우 고스트]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제가 예상햇던 것과는 다른 의외의 전개를 보이더군요. 일단 이 영화는 전혀 웃기지 않았습니다. 특히 혼자 1인 5역을 해야 하는 차태현의 원맨쇼는 작은 웃음을 터트리긴 했지만 이전의 코미디 영화에서 보여줬던 큰 웃음은 없었습니다.
영화의 후반까지 저는 '왜?'라는 의문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상황은 분명 웃긴 상황인데, 그래서 차태현의 코믹 연기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일부러 안웃기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차태현의 코믹 연기도 너무 오버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 나가더군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이 영화의 미스터리한 썰렁함이 오히려 차태현의 연기변신을 성공시키고 있었습니다. '아! 저 배우에게 저런 외롭고 슬픈 감수성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저는 [헬로우 고스트]를 보며 처음 느꼈던 것입니다. 각기 개성이 다른 귀신들과 빙의되면서도 외로움이 묻어나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결국 세월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차태현의 연기변신을 이끌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웃기지 않는 코미디
분명 [헬로우 고스트]는 차태현의 배우 인생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 반면 스타급 배우라고는 차태현 밖에 없는 이 영화에는 악영향을 끼쳤는데... 코미디라는 장르를 가진 이 영화가 별로 웃기지 않다는 치명적 약점을 노출시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헬로우 고스트]는 웃기지 않습니다. 차태현이 주연을 맡은 코미디 영화 중에서 아마도 [투 가이즈]다음으로 웃기지 않는 영화가 바로 [헬로우 고스트]일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상황은 웃깁니다. 외로움에 지쳐 자살을 결심한 상만(차태현)이 자살 실패 후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붙은 네 명의 귀신들을 떼어내기 위해 그들의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는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잘 만 꾸민다면 재미있는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해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귀신들의 소원은 밋밋합니다. 굉장히 웃기고 기가 막힌 소원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카메라 되찾아 주기, 만화영화 보기, 택시 드라이브 하기, 음식 하기 등에 멈춰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뭐야, 저게 전부야?' 라는 투덜거림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고, 그들의 소원이 밋밋한 만큼 이 영화를 보는 저 역시 전혀 웃지 못했습니다.
[헬로우 고스트]가 웃기지 않는 데에는 귀신들의 소원이 밋밋한 이유가 가장 큽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지목하자면 이 영화의 기본적인 감성이 슬픔에 기대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인 상만은 외로움에 사무친 캐릭터입니다. 고아인 탓에 아무도 자신을 찾는 이가 없었고,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소원은 번번히 좌절됩니다. 결국 그는 외로움을 못 이겨 자살을 결심합니다.
상만 이외에도 상만과 짝을 이루는 연수(강예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그때 자신의 곁에 있어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 사무친 연수는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해야 하는 중환자 병실의 간호원입니다.
가족이 없는 것에 대한 외로움에 자살을 선택한 남자와 ,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우울함을 간직한 여자의 로맨스라니, 이 영화가 이러한 캐릭터를 가지고 웃기기에는 아무래도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헬로우 고스트]느 코미디 영화와는 어울리지않는 캐릭터와 장소, 상황들의 연속입니다. 차태현의 코믹 연기를 기대하고 연말에 부담없이 웃고 즐길 영화로 [헬로우 고스트]를 선택했다면 아마 십중팔구 실망했을 것입니다.
웃음을 압도하는 눈물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 자체에 실망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가 웃기지 못한다면 실패작 판정을 받지만 [헬로우 고스트]는 실패작 판정을 내리기엔 이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눈물 코드가 매력적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네 명의 귀신들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상만의 곁에 머문다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코미디 영화다운 설정이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귀신들의 소원도 코믹하지 못하니 코미디 영화로써는 낙제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미디 영화에는 낙제점인 이 영화는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게 만드는 멜로 영화로써는 꽤 성공적입니다. 소문이 자자한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역시 소문대로 영화 내내 웃기지 않은 코미디로 짜증이 났던 제 마음을 샤르르 녹여주더군요. 사실 구피와 저는 영화의 중반 부분에 그 반전을 눈치챘는데(하도 반전, 반전해서 초반부터 추리에 들어갔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피는 훌쩍 훌쩍 눈물을 흘렸고, 저 역시 오랫만에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귀신들의 소원이 밋밋했던 이유도 이 마지막 반전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캐릭터들이 우울했던 이유도 마지막 반전을 위해서였습니다.
신인 감독인 김영탁은 코미디와 멜로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그는 멜로에 더 큰 비중을 두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신인 감독들이 한 편의 영화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많은 것을 담겠다는 욕심을 부립니다. 그 결과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김영탁 감독은 그러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한가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김영탁 감독이 각본을 썼던 [간 큰 가족]도 코미디 장르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그가 각색했던 [바보] 역시 웹툰을 바탕으로 슬픈 감성을 고스란히 가져왔던 영화였고요.
그는 비록 코미디라는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자신이 서투른 코미디보다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멜로에 촛점을 맞추었고, 그 때문에 웃기지 않는 코미디 영화 [헬로우 고스트]를 완성했지만 그 덕분에 후반의 강력한 눈물을 선사했습니다. 김영탁 감독이 차기작에서 코미디라는 굴레를 벗고 자신이 잘하는 것에 더욱 매진한다면 더 강력한 눈물을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슴이 펑 뚫리는 시원한 웃음보다, 진심을 담은 눈물 한 줄기가 더욱 값질지도 모른다.
김영탁 감독은 눈물에 진심을 담을 줄 아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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