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러브 & 드럭스] - 내겐 너무 아픈 로맨틱 코미디

쭈니-1 2010. 12. 29. 11:46

 

 

감독 : 에드워드 즈윅

주연 : 제이크 길렌할, 앤 헤더웨이

개봉 : 2011년 1월 13일

관람 : 2010년 12월 28일

등급 : 18세 이상

 

 

시사회 진행은 아직 내게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며칠 전에 뜻밖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러브 & 드럭스]의 시사회 이벤트 진행을 해보라는 제안이었는데, 시사회 참가에만 익숙했던 제겐 시사회 이벤트 진행은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잘만하면 블로그 홍보도 할 수 있고, 이를 계기로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사회 티켓은 50장. 1인당 2장씩 계산을 하면 25명의 시사회 참가자를 당첨시키면 되었습니다. 저는 제 블로그를 통해 시사회를 신청하시는 분이 최소한 25명 이상은 넘을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제 블로그의 방문 인원이 최소 600명에서 최대 2,000명에 이르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의 기간이면 25명은 훌쩍 넘는 인원이 시사회를 신청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시사회 이벤트 공지를 처음 올렸던 12월 20일 월요일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시사회 신청이 저조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날은 더욱 심했습니다. 거의 첫째 날을 제외하고는 시사회 신청자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결국 제 주변 사람들한테 시사회에 참가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고작 20장의 시사회 티켓만을 소진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제게 시사회 이벤트를 제안했던 분에게 당첨자 메일을 보내면서 정말 죄송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제가 아닌 좀 더 능력있는 영화 블로그에서 시사회가 진행되었다면 좀 더 많은 분들이 참가하실 수 있었을텐데, 제 욕심 때문에 [러브 & 드럭스]를 보고 싶어하는 15명이 영화를 못 본 셈이니까요.

시사회 당일 회사에 연차 휴가를 내고 일찌감치 종로 거리로 나갔습니다. 시사회 티켓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죄책감은 더욱 커졌답니다. 결국 [러브 & 드럭스]라는 영화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제 블로그의 시사회 이벤트가 썰렁했던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서울 극장 한 편에 '파워 블로거 영화, 그 일상의 향기 속으로... 시사회 티켓 배부처'라고 쓰여 있는 A4용지에 프린트되어 있는 안내문을 보니 마음은 뿌듯하더군요.

암튼 이번 [러브 & 드럭스]의 시사회 이벤트로 인하여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제 블로그는 영화 블로그로써는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죠. 2010년 상, 하반기 연속으로 다음 우수 블로그에 뽑히고, 블로그 방문자가 꾸준히 1천명이 넘으며 잠시 자만했지만 이번 시사회 신청 미달 사건을 통해 그러한 자만이 산산조각났습니다. 그래서 2011년의 계획은... '좀 더 분발해서 시사회 이벤트를 하면 신청자들로 북적일 진짜 파워 블로거가 되자!'입니다.

 

 

제이크 길렌할과 앤 헤더웨이의 따끈한 로맨틱 코미디?

 

여하튼... 길게 늘어선 줄을 선 끝에 [러브 & 드럭스]의 시사회를 보고 왔습니다. 처음 저는 [러브 & 드럭스]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홍보는 철저하게 상큼한 데이트용 무비에 그 촛점이 맞춰져 있었으니까요.

시작은 제 예상과 같았습니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매력적인 외모로 여자들을 침대로 이끌어 내는 능력 하나만큼은 탁월한 제이미(제이크 길렌할). 그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화이자의 영업 사원으로 취직하면서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영업 사원으로써의 입지를 점차 굳혀 갑니다. 그러던 중 젊은 나이에 파킨슨 병에 걸린 매기(앤 헤더웨이)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문제는 자신의 병으로 인하여 전 남친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있는 매기는 좀처럼 제이미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바람둥이 제이미가 매기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점차 변해가고, 그러면서 매기의 닫혀진 마음의 문도 여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이미의 찌질이 동생으로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고, 가끔 화끈하게 벗어주는 앤 헤더웨이로 인하여 볼거리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분명 여기까지는 [러브 & 드럭스]는 즐길만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제이크 길렌할과 앤 헤더웨이의 매력은 로맨틱 코미디를 빛내주기에 더 없이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가면서 가볍게 즐길만한 데이트 무비였던 [러브 & 드럭스]는 점차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매기의 파킨슨 병 때문이죠.

파킨슨 병은 중풍과 비슷한 병입니다. 하지만 중풍과 틀린 점이 있다면 서서히 온 몸의 근육이 마비가 된다는 점이죠. 영화의 초반 매기는 그저 매력적인, 그리고 섹시하기까지한 여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로 즐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매기의 파킨슨 병 증세도 점차 악화됩니다. 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기 시작하는 것이죠.

매기의 증상이 악화되면서 영화의 밝은 분위기도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냥 매력적인 남녀의 흔한 사랑 놀음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전도유망한 남자와 불치의 병에 걸린 여자의 사랑 이야기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던 저로써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러브 & 드럭스]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에서 멈추지 않고 제게 생각할 꺼리를 남겨 주었습니다.

 

 

당신이라면 그 사랑을 지킬 수 있겠는가?(이후 스포 조금)

 

이 영화가 후반부에 던진 화두는 간단합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당신은 그 사랑을 끝까지 지킬 수 있겠는가?' 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자신만만하게 '당연하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이미가 파킨슨 병에 걸린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포기하라고... 당신이 사랑했던 그녀의 모든 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불치의 병에 걸린 매기는 분명 모든 것이 바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파킨슨 병으로 인해 일그러질 것이며, 몸 역시 점점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비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매기는 미소를 잃게 될 것이며, 그러한 매기의 불행은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줘야할 제이미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희망도 없습니다. 파킨슨 병은 아직까지 인류가 점령하지 못한 불치의 병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이미의 입장에서 가장 힘든 것은 병 간호도, 치료를 위한 돈도 아닙니다. 점점 변해가는 매기의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점점 일그러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하여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손예진)의 곁을 철수(정우성)는 끝까지 지켜줍니다. [첫 키스만 50번째]에서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루시(드류 배리모어)를 헨리(아담 샌들러) 역시 끝까지 지켜줍니다.

영화에서는 그러한 일이 다반사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영화에서 대리만족하기를 원합니다. 다시말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반증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께서는 파킨슨 병에 걸리셨었습니다. 일평생을 미싱을 잡고 옷을 만드시며 보내셨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손이 떨려 더이상 일을 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병원에서 파킨슨 병 진단을 받으셨고, 집에서 꾸준히 운동하시며 약을 복용하셨습니다.

하지만 파킨슨 병의 약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 부작용은 불면증과 우울증입니다.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인하여 점점 가족들에게 기대려 하셨고, 직장을 다녀야하는 가족들은 그로 인하여 힘들었습니다. 급기야 아버지는 약 복용을 거부하셨고 파킨슨 증세는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굳어가는 근육과 우울증을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영화는 희망적이지만 과연 현실은?

 

그러한 경험이 있기에 [러브 & 드럭스]를 보는 제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점점 굳어가는 자신의 몸을 보며 좌절하는 매기의 모습이 저희 아버지와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그러한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이미는 지키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희망적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가 현실이라고 해도 희망적일까요?

매기의 몸은 점점 굳어질 것이고, 급기야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몸을 가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불면증과 우울증은 점점 심해질 것이며, 그러면 그럴수록 제이미에게 기댈 것입니다. 제이미의 모든 생활은 매기에게 맞춰질 것이고, 남들처럼 즐길 수도, 남들처럼 성공을 향해 질주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매기를 돌봐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앤 헤더웨이의 아름다운 미소도, 제이크 길렌할의 밝은 모습도 모두 슬프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처해질 미래를 알기에 말입니다.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특히 미국의 의료 실태를 꼬집는 장면들은 섬뜩하기만 했습니다. 환자들에게 의약품 남용을 부추기는 거대 제약 회사들과 미국의 약 값이 너무 비싸 캐나다까지 건너가 약을 사러 가야하는 매기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만약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은 의료보험 제도를 실행했다면(실제로 어느 미친 대통령이 실행하려고 했었습니다.) 저희 집은 벌써 파산되었을 것입니다.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일이죠.

이 영화의 원제가 [Love and Other Drugs(사랑 그리고 또 다른 약)]인 것은 어쩌면 그러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에 약해 제가 맞게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매기를 치료하는 것은 돈에 눈이 먼 거대 제약회사의 화학덩어리 약이 아닌 제이크의 사랑일 것입니다. 세상 모든 병든 자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알량한 한 줌의 약이 아닌 보호자의 사랑과 관심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제게 [러브 & 드럭스]가 너무 아픈 영화였습니다.

 

 

난 아버지의 곁을 지키지 못했지만

제이미 넌 부디 매기의 곁을 영원히 지켜주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