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이층의 악당] -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편식하다.

쭈니-1 2010. 11. 25. 13:53

 

 

감독 : 손재곤

주연 : 한석규, 김혜수

개봉 : 2010년 11월 24일

관람 : 2010년 11월 24일

등급 : 15세 이상

 

 

3일 연속 극장 나들이

 

한때는 제 소원이 하루 종일 극장에서 영화보기였습니다. 학창시절엔 돈이 없었고, 직장인이 되어선 시간이 없어서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몸이 안따라줘서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

한번 시도했던 적도 있긴 했습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조조타임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결국 세 편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영화 세 편을 연속 봤더니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스껍더군요.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죠. 그렇게 하루에 제가 극장에서 최대한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영화는 세 편이 한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영화를 몰아서 보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고,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기록에 도전(?)중입니다. 하루에 한 편씩 하루도 걸르지 않고 극장가기. 이 기록은 월요일에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서 시작하여 [렛미인]을 거쳐 [이층의 악당]에까지 도달했습니다. 현재 3일 연속 극장 나들이 기록중입니다.

하지만 이 기록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네요. 회사에서 퇴근 후 웅이와 놀아주고 저녁 9시부터는 집에서 쉬면서 원기를 회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원기회복의 시간에 영화를 보며 긴장하고, 흥분했더니 슬슬 체력적인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중입니다. 

 

 

연속 극장가기 기록에 계속 도전했다간 언젠가 내 몰골이 이렇게 될지도...

 

 

한석규와 김혜수의 황금콤비는 변하지 않았다.

 

제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체력적인 한계 탓에) 3일 연속 극장 나들이로 정한 영화는 [이층의 악당]입니다. [이층의 악당]은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로맨스와 스릴러, 코미디를 접목시켜 호평을 받았던 손재곤 감독의 신작입니다.

하지만 제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한석규와 김혜수의 15년 만의 재회입니다. 15년 전 이광훈 감독의 [닥터 봉]으로 1995년 한국 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그들이 [이층의 악당]으로 다시 뭉친 것입니다.

15년 전에는 신인 티가 팍팍 나던 그들이 이젠 충무로의 중견 배우가 되어 다시 만난 그들은 [이층의 악당]에서 예상대로 [닥터 봉]에서 보여줬던 황금 컴비를 여전히 과시합니다. 능글맞은 한석규의 연기와 신경쇠약 직전의 김혜수의 연기는 [이층의 악당]의 영화적 재미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의 코믹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영화 관람비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어도 그들의 콤비는 언제나 '짱'이다.

 

 

최고의 명장면은 지하 창고 감금장면.

 

한석규와 김혜수의 황금 콤비가 돋보이는 장면을 하나 고르라면 전 단연코 창인(한석규)의 지하 창고 감금 장면을 꼽고 싶습니다.

집 안에 숨겨진 중국의 고가 골동품을 찾기 위해 연주(김혜수)의 집에 세들어온 창인은 지하 창고를 뒤지던 중 그만 그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창인의 며칠 간의 사투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초췌한 그의 모습과 함께 영화를 보는 관객의 웃음보를 터트립니다.

특히 여기에 마지막 카운트 펀치를 날리는 것은 역시 연주인데...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창인의 거의 폐인이 된 모습을 보고 자신과의 이별로 인해 그리 된 것으로 착각한 그녀는 창인을 위로해주는데... 그 장면은 올해 개봉된 그 어떤 코미디 영화보다도 가장 웃겼던 장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도 선보였던 손재곤 감독의 맛깔스러운 대사가 한석규와 김혜수의 입으로 옮겨지며 영화를 보는 내내 '킥킥'거리며 즐겁게 영화를 감상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는 지금 지옥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석규와 김혜수를 이 영화에서 지워버린다면?

 

그러나 [이층의 악당]에게 코미디 영화로써의 최고 점수를 주기엔 뭔가가 부족합니다. 일단 손재곤 감독의 전작인 [달콤, 살벌한 연인]의 재미를 뛰어 넘지도 못했을 뿐더러, 영화 자체가 너무 한석규와 김혜수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할 정도로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일단 한석규와 김혜수의 뒤를 받칠 조연진 구성은 꽤 탁월했습니다. 오프닝에서 연주의 남편으로 잠시 등장하여 사건 발단의 빌미를 제공했던 박원상을 비롯하여, 아이돌그룹 유키스의 동호, 어리버리한 재벌 2세 역의 엄기준, 옆집 할머니(?)역의 이용녀 등은 조연이면서도 그 존재감은 확실했었습니다.

하지만 조연 배우들의 존재감은 빛났지만 캐릭터는 빛을 잃었습니다. 특히 뭔가 대단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옆집 할머니와 연주를 남몰래 짝사랑하던 꽃미남 경찰 오순경의 마지막 대단한 반전을 위한 역할을 기대했지만 너무 창인과 연주에 올인한 영화의 분위기 탓에 그들의 캐릭터는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줬던 그들의 미친 듯한 존재감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손재곤 감독의 선택이 아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난 정말 이 할머니가 뭔가 해낼줄 알았다. 하지만...   

   

 

주연 캐릭터에 너무 기댄 것이 이 영화의 패착이다.

 

[이층의 악당]이 창인과 연주 캐릭터에 올인하며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은 비단 조연 캐릭터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 2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골동품(이름은 까먹었습니다. ^^;) 역시 후반엔 그 중요성이 흐지부지 사라졌습니다.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의 발단은 그 골동품의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당연히 골동품이 숨겨진 장소의 반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저 나름대로 열심히 골동품이 숨겨진 장소를 추리하기도 했습니다. '연주가 창인에게 차를 대잡할 때 쓰는 찻잔이 그 골동품일 것이다.'에서부터 '옆집 할머니가 언급한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 묻혀 있을 것이다.' 등등.

하지만 결국 그 골동품의 존재도, 숨겨진 장소도 손재곤 감독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보다도 그 골동품을 매개체로 묘하게 엮어지는 창인과 연주의 관계에만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모든 역량이 거기에 쏟아 부은 것입니다.

뭐 그런 손재곤 감독의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근사한 밥상을 차려 놓고 한가지 반찬만 골라먹는 어린 아이를 보는 것만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 든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편식하면 예쁘던 애들도 이렇게 변할 수 있단 말이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영화를 보고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김혜수의 신경쇠약 직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고 싶었던 것도, 되고 싶었던 것도 많은 꽃다운 나이에 덜컥 임신을 하여 어쩔수 없이 결혼을 해야 했던 연주는 남편의 죽음과 사춘기 딸의 반항, 그리고 생활고로 신경쇠약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연주의 신경쇠약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연주의 신경쇠약이 할 일이 없어서 그렇다며 비난했던 창인이 신경쇠약에 걸려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엇이 그들을 신경쇠약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요?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항상 원하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다면 그것은 강박증이 되고 신경쇠약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젊은 시절의 꿈과 풍요로운 삶을 원했던 연주가 신경쇠약에 걸렸던 것처럼, 중국의 골동품을 끊임없이 원했던 창인이 신경쇠약에 걸린 것처럼...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신경쇠약을 부르는 것은 아닐까요?

흠... 저도 체력이 안 따라주는 무리한 극장 나들이에 집착하다간 그들처럼 신경쇠약에 걸리는 것은 아닐지... 오늘은 연속 극장 나들이 기록 갱신에 매달리지 않고 집에서 원기 회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져 있더라도 가장 맛있는 반찬에 손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말이다. 그러한 유혹을 이겨내고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층의 악당]은 가장 맛있는 반찬만 섭취하느라 진수성찬을 스스로 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