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렛미인] - 순수해서 더욱 잔인하다.

쭈니-1 2010. 11. 24. 12:24

 

 

감독 : 매트 리브스

주연 : 클로에 모레츠, 코디 스밋 맥피, 리차드 젠킨스

개봉 : 2010년 11월 18일

관람 : 2010년 11월 23일

등급 : 15세 이상

 

 

뱀파이어 로맨스의 판타지를 무너뜨렸던 [렛 미 인]

 

2008년 겨울... 저는 스웨덴 영화인 [렛 미 인]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럽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렛 미 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트와일라잇]을 본 이후 뱀파이어 영화의 재미에 푸욱 빠져 있었기에, [렛 미 인]의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스토리 라인에 호기심이 생겨 영화를 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렛 미 인]은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물론 애초부터 [트와일라잇]의 매끈하게 잘 빠진 하이틴 로맨스를 기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어느정도는 아름답게 그려 나갈 것이라는 제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렛 미 인]은 정말 섬뜩했습니다. 뱀파이어 소녀의 그 순수한 눈빛이 무서웠고, 그녀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던 그녀의 아버지가 보여준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서웠으며, 그녀를 사랑한 소년의 미래가 무서웠습니다. [트와일라잇]을 보며 뱀파이어 로맨스에 잠시동안 판타지를 가졌던 저는 [렛 미 인]을 보며 완벽하게 그러한 판타지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렛미인]은 [렛 미 인]만큼 섬뜩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0년 겨울의 문턱에서 스웨덴의 [렛 미 인]을 고스란히 할리우드로 옮긴 [렛미인]을 관람했습니다.(편의상 스웨덴 영화는 [렛 미 인]으로, 할리우드 영화는 [렛미인]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미 2년 전 [렛 미 인]의 섬뜩함을 체험했던 구피는 [렛미인]을 강하게 거부하여 저 혼자 봐야 했습니다.

흠... 뭐랄까 첫 느낌은 '할리우드 영화답지 않다'였습니다. [렛 미 인]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며 가장 우려했던 것은 섬뜩했던 [렛 미 인]이 할리우드로 건너와서는 뜨끈뜨끈해졌을 것이라는 예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매트 리브스 감독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켰습니다.

마치 [렛 미 인]을 다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렛미인]은 원작에 지극히 충실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충분히 아름다웠고, 그 만큼 충분히 섬뜩했습니다. 그동안 할리우드가 다른 나라의 영화들을 리메이크하며 '내가 쟤네보다 잘 만들 수 있어.'라는 자만심으로 원작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었던 것과 비교한다면 [렛미인]은 오히려 원작에 충실함으로써 그 어떤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보다 독특함을 획득한 셈입니다.

 

 

 

소녀... 아름답다.

 

그렇다면 과연 [렛미인]은 원산지 변경에 만족했던 영화일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매트 리브스 감독은 [렛 미 인]을 리메이크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는 뱀파이어 소녀인 애비 역에 캐스팅된 클로에 모레츠를 보면 드러납니다.

[렛미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뱀파이어 소녀의 순수한 아름다움입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뱀파이어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괴물은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괴물에게 평범한 소년이 사랑을 느낍니다. 그러한 설정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려면 소년이 뱀파이어 소녀에게 느끼는 사랑을 관객들도 느껴야합니다. 그것이 뱀파이어 소녀의 캐스팅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클로에 모레츠의 캐스팅은 아주 절묘했습니다. [킥 애스 : 영웅의 탄생]에서 힛걸을 연기하며 나이답지 않은 당돌함을 보여줬던 그녀는 [렛미인]에서 순수한, 그래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뱀파이어 소녀를 연기했습니다. 오웬(코디 스밋 맥피)이 애비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듯이 영화를 보는 저 역시 클로에 모레츠에게 매혹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점은 오히려 [렛 미 인]보다 [렛미인]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수했기에 더욱 무서웠다.

 

[렛미인]이 가지고 있는 영화적인 재미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애비는 감싸주고 싶을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대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피에 대한 욕구 때문에 어쩔수 없이 연쇄살인마가 되어야 했던 토마스(리차드 젠킨스)의 모습이 그 대가인 셈입니다. 

사랑... 그것은 순수합니다. 영화가 끊임없이 순수한 사랑을 그려 나가는 이유는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한 순수한 사랑을 꿈꾸고, 영화를 통해서라도 간접 체험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비와 오웬의 사랑은 순수합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12살 소년, 소녀의 사랑이기에 영화의 배경과도 같은 때묻지 않은 흰 눈처럼 순수합니다. 하지만 그 흰 눈에 피가 흩뿌려지면 그 핏빛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래서 더욱 섬뜩해집니다. 애비와 오웬의 사랑이 섬뜩한 이유입니다. 너무나도 순수하기에 그 순수함에 피가 뿌려지는 순간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섬뜩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렛미인]을 보고 난 후의 후유증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을 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애비가 아름답고 순수하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뱀파이어였고, 피에 대한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면 괴물로 변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의 범주에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제게 긴장감을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은 행복한 미소를 짓지만 언젠가는 토마스가 지었던 그 지친 표정을 지을 것이 뻔해 보였던 오웬이 안타깝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와 지하 주차장에 간 저는 늦은 시간 때문에 텅빈 주차장에서 한동안 멈칫해야 했습니다. 제 차의 뒷 좌석에 검은 비밀봉지를 쓰고 누군가 누워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렛미인]을 본 후 저는 차를 타기 전에 뒷 좌석에 누가 몰래 타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순수했기에 더욱 섬뜩했던 [렛미인]의  후유증은 그렇게 꽤 오래갈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것이 인간이길 포기한 괴물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은 사랑을 위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