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토니 스콧
주연 : 덴젤 워싱턴, 크리스 파인, 로자리오 도슨
개봉 : 2010년 11월 10일
관람 : 2010년 11월 16일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이 만나면...
결국 [언스토퍼블]을 보고 왔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잘 참지 못하는 못된(?) 성격 탓에 [언스토퍼블]만큼은 절대 극장에서 놓칠 수 없다고 다짐에 다짐을 한 결과 매서운 바람에 휘몰아치던 날, 추위를 헤치고 나가 결국 보고 말았습니다.
제가 [언스토퍼블]을 그렇게 기대했던 이유는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이라는 황금 콤비를 철썩같이 믿기 때문입니다.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은 1995년 [크림슨 타이드]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토니 스콧 감독은 [탑 건], [비버리 힐즈 캅 2] 등의 영화로 흥행 감독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고, 덴젤 워싱턴 역시 [말콤 X]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최우수 남자연기상)을 수상한 이후 [필라델피아], [펠리칸 브리프] 등의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 둘의 시너지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크림슨 타이드]는 존 맥티아난 감독의 [붉은 10월]과 더불어 잠수함 액션 영화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1999년 민병천 감독이 최민수와 정우성을 캐스팅하여 잠수함 액션 영화 [유령]을 만들어 냈지만 결코 [크림슨 타이드]의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의 만남은 더욱 잦아 졌는데 [맨 온 파이어], [데자뷰], [펠햄 123], [언스토퍼블]까지 무려 네 편의 영화를 함께 했습니다. 토니 스콧 감독이 2000년대 들어서 연출한 영화가 일곱 편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만하면 찰떡궁합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언스토퍼블]을 기대한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짝이 있기 마련입니다. 팀 버튼 감독과 조니 뎁의 경우처럼... 토니 스콧 감독의 경우는 그것이 바로 덴젤 워싱턴인 셈입니다.
물론 불안한 점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 [언스토퍼블] 이전의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펠햄 123]은 기대이하였던 것입니다. 도저히 토니 스콧 감독의 영화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도 현저하게 떨어졌고 덴젤 워싱턴 역시 예전의 그 날렵한 몸매는 온데간데 없이 후덕해진 몸매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펠햄 123]만 놓고 본다면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의 만남은 시너지 효과는 커녕 오히려 재앙이었습니다. 과연 토니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까요? 아니면 [펠햄 123]의 실패를 반복할까요?
착한 재난 영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분명 [펠햄 123]보다는 낫습니다. 후덕해진 덴젤 워싱턴은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보통의 평범한 기관사 연기를 하며 후덕해진 몸매에선 무리인 액션을 굳이 펼쳐 보이지 않습니다.
토니 스콧 감독 역시 자신의 주특기를 잘 살려냈는데, [탑건], [폭풍의 질주]와 같은 스피드가 주는 아찔함을 폭주 열차를 통해 재현해 냈습니다. 기관사가 없이 가연성 물질을 가득 싣고 도시를 폭주하는 열차의 굉음만으로도 이 영화는 손에 땀을 쥘 긴장감을 선사한 것입니다.
하지만 [펠햄 123]보다는 낫지만 [크림슨 타이드], [맨 온 파이어], [데자뷰]보다는 못합니다. 시종 일관 팽팽한 긴장감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라인을 선보였던 그들 영화와는 달리 [언스토퍼블]의 긴장감은 제한되어 있고, 스토리 라인도 어딘지 모르게 느슨함이 보였습니다.
토니 스콧 감독의 주특기는 잘 살려냈지만 그 주특기를 더욱 돋보이게 할만한 스토리가 부족했고, 덴젤 워싱턴의 연기는 노련미가 엿보였지만 그가 연기한 프랭크 반즈는 재난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영웅 캐릭터의 전형성에 갇혀 있더군요. 그 뒤를 받쳐줄 크리스 파인은 매력이 한잠 모자라 보였습니다.
영화가 이렇게 된데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착한 재난 영화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열차 사고를 바탕으로 한 탓인지 [언스토퍼블]은 재난 영화가 흔히 가지고 있는 재미를 획득하지 못합니다.
재난 영화는 흔히 우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끔찍한 재난들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재난 영화들은 그 재난이 얼마나 끔찍한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러한 재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러한 재난을 간접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재난 영화의 기본적인 재미입니다.
최근 개봉한 중국 재난 영화 [대지진]의 경우는 실제 재난을 토대로 함으로써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냈고, 천만 관객을 동원한 우리 영화 [해운대]의 경우는 가상 재난을 만들어 냄으로써 스펙타클한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난 영화의 공통점은 그것이 실제이건, 가상이건 간에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재난의 어마어마한 위력이고, 그러한 재난에 희생되는 사람들과 재난을 헤쳐 이겨내는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언스토퍼블]은 그러한 재난 영화의 공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대지진]처럼 감동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재난의 위력도, 재난에 희생당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야말로 '착한 재난 영화'인 셈인데... 그러한 굴레가 [언스토퍼블]이 재난 영화로써 가지고 있어야 할 영화적 재미를 방해합니다.
긴장감의 뒷힘이 부족했다.
폭주하는 열차는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긴장감 넘쳤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1시간 40분의 러닝 타임을 채우기엔 부족합니다. 폭주하는 열차가 주는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하고 위험한 재난의 위력을 선보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위험한 위력은 없었습니다. 그저 기관사없이 도시를 관통하는 기차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정이 그러다보니 폭주 열차를 세우려 노력하는 두 주인공 프랭크 반즈와 윌 콜슨(크리스 파인)의 영웅적인 행위도 조금 뜨끈미지근하게 느껴집니다. 재난의 위력이 막강해야 그에 맞서는 영웅들도 멋져 보일텐데... 이 영화는 재난 자체가 뜨끈미지근하다보니 영웅인 그들의 활약 역시 뜨끈미지근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정리 해고 직전의 프랭크 반즈에게 회사의 부회장이 '왜 회사를 위해 목숨을 걸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저 역시도 하고 싶었습니다. 프랭크 반즈의 활약은 개연성이 부족했습니다.(윌은 그저 프랭크를 따라 나서기만 합니다.) 개연성도 부족하고 화끈하지도 않은 그의 영웅담으로 1시간 40분의 러닝 타임을 채우니 당연히 긴장감의 뒷힘이 부족할 수 밖에요.
재난 영화가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재미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관객이 느낄 긴장감 정도는 분명 마련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열차 견학을 온 유치원생이 탄 열차를 향해 폭주 열차가 돌진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그 열차에 윌의 어린 아이가 타고 있다면? 아니면 프랭크의 딸이 그 열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면? 윌과 프랭크는 목숨을 걸고 열차를 멈추려 했을 것이고, 영화를 보는 저는 어린 아이들이, 그리고 아내를 먼저 잃고 힘겹게 키운 프랭크의 늘씬한 딸들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어서 그들이 열차를 멈추라고 마음 속으로 기원하며 긴장감 속에 영화를 봤을 것입니다.
굳이 폭주 열차가 다른 열차와 충돌을 해서 수 많은 가엾은 희생자를 내지 않더라도 [언스토퍼블]은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긴장감을 유지했을 것이며, 윌과 프랭크의 위험천만한 행위도 납득이 것을 것이고, 그들의 영웅담도 좀 더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 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한가지 예를 뿐입니다. 이 예처럼 너무 실제 사건에 매달리지 않고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약간의 설정만 바꿔줬더라도 [언스토퍼블]은 훨씬 긴장감 넘치는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토니 스콧 감독의 연출력을 아직은 믿고 싶다.
이러한 2% 부족한 [언스토퍼블]의 긴장감은 [펠햄 123]과 맞물려 이제 토니 스콧 감독의 연출력까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액션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토니 스콧 감독. 친형인 리들리 스콧 감독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으며 나름대로의 명성을 쌓아오던 그가 최근 주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분명 좀 더 관객의 긴장감을 이끌 수 있는 소재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한 토니 스콧 감독.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요?
하지만 아직 전 그를 믿고 싶습니다. 아직 2006년에 그가 연출한 [데자뷰]의 그 생생한 긴장감을 기억하는 저로써는 그래도 [언스토퍼블]이 [펠햄 123]보다 좋아졌다는 점에 희망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믿고 보는 액션 영화 감독중 하나이기에...
[언스토퍼블]은 분명 누군가의 말처럼 '착한 재난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착함이 재난 영화에선 긴장감의 부재로 다가오네요.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조금 덜 착했으면 더욱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쉽습니다.
현실에서 희생자가 적은 재난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희생자가 적은 재난 영화는 긴장감이 떨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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