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소셜 네트워크] - 변한건 '너'가 아닌 '나'잖아.

쭈니-1 2010. 11. 23. 10:55

 

 

감독 : 데이빗 핀처

주연 : 제시 아이젠버그, 앤드류 가필드, 저스틴 팀버레이크

개봉 : 2010년 11월 18일

관람 : 2010년 11월 22일

등급 : 15세 이상

 

 

급변하는 세상에서 지금 나는 어디 있는가?

 

여러분들은 혹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 저는 가끔 내가 따라 잡기엔 벅찰 정도로 너무 빨리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일주일에 1시간 정도 좁은 컴퓨터실에 모여 앉아 2인당 1대의 컴퓨터가 주어졌고 우린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베이직, 코오볼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수업의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남역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다녔습니다. 나름대로 변화하는 세상에 빠르게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선택이었죠. 저는 부모님을 졸라 286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고 열심히 알아듣지도 못할 베이직, 코오볼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윈도우가 출시되었고, 굳이 어려운 컴퓨터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편하게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고 말았습니다. 제 286 컴퓨터는 산지 몇 개월만에 깡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후로도 저는 몇 대의 컴퓨터를 더 구입했고, 컴퓨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연스럽게 컴맹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컴맹에서 탈출한 것은 개인 홈페이지 열풍이 불어 닥쳤던 1998년이었습니다. 그땐 너나 할 것 없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었고, 저 역시 개인 홈페이지 열풍에 가담하여 '나모'를 열심히 배우고 허접하지만 제가 원하던 개인 홈페이지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홈페이지 열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러들고 미니홈피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 제가 어렵게 만든 개인 홈페이지를 버릴 수가 없어서 미니홈피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니홈피 열풍은 블로그 열풍으로 옮겼고, 개인 홈페이지를 고집한 저는 그렇게 또다시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블로그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트위터', 네이버의 '미투데이', 다음의 '요즘'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고 솔직히 할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또 다시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제가 [소셜 네트워크]라는 영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따라잡기에 벅찬 이 세상.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 신화, 그리고 그들의 좌절을 저는 제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를 통해 느끼고 싶었습니다.

 

 

컴퓨터 천재... 그는 어떻게 성공했고, 어떻게 좌절을 겪었는가?

  

[소셜 네트워크]는 쉴새없는 마크(제시 아이젠버그)의 수다에서 시작됩니다. 천재는 미국이 아닌 중국에 많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자랑을 거쳐 하버드의 엘리트 클럽에 어떻게해야 가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그의 수다는 밑도 끝도 없었고, 애인인 에리카를 지치게 만듭니다.

결국 에리카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넌 컴퓨터로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애인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하고 일어섭니다. 그녀의 그러한 말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과 맞물려 있습니다.

마크는 결국 하버드 내에서의 친구맺기 사이트인 '페이스북'을 창안해 냈고, '페이스북'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하버드는 물론 전 세계 젊은 네티즌에게 전파됩니다. 하지만 마크는 에리카의 이야기대로 컴퓨터로 성공을 거두지만 애인은 물론 진정한 친구들도 잃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외톨이가 되었던 것은 다른 이들의 탓이 아닙니다. 마크가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마크에게 '하버드 커넥션'이라는 사이트 개발을 의뢰했던 윈클보스 형제는 마크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빼앗아 '페이스북'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합당합니다. 누가 봐도 마크의 '페이스북'은 윈클보스 형제의 '하버드 커넥션'에 기본을 두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니까요.

마크와 함께 '페이스북'을 창시했던 왈도(앤드류 가필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마크가 '페이스북'을 만들기 위한 자금을 대주었고, '페이스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물론 '페이스북'의 운영에 대해서 마크와 생각이 달랐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페이스북'에서 쫓겨나야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왈도의 소송 역시 제가 보기엔 정당했습니다.

이 영화의 광고 카피에는 '5억 명의 친구가 생긴 순간 진짜 친구들은 적이 되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적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바로 마크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주인공의 편이 아닌 독특한 성공담

 

[소셜 네트워크]의 독특한 점은 바로 이러한 점에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제가 예상한 스토리 라인은 '페이스북'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그 성공을 샘낸 윈클보스 형제와 엄청난 부에 눈이 먼 왈도가 말도 안되는 소송을 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철저하게 마크의 편에 서서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제 마음은 마크에게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마크에게 버림받고 '난 너의 유일한 친구였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왈도의 모습을 보며 그에게 동정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분명 마크는 천재였고, 그는 '페이스북'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작은 이익을 위해 지금 당장 광고를 사이트에 붙이는 것보다 '쿨'함을 유지하며 사용자를 늘이는 것이 미래 가치를 위해 더 좋다는 그의 판단은 정확했고, 광고를 붙여 당장 수익을 내야한다는 왈도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틀렸습니다.

그런 면에서 왈도는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왈도라면 저 역시 광고를 유치하여 당장 수익을 낼 방법을 강구했을테니까요. 아마 그래서 더욱 왈도가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는 변화하는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왜 마크의 편이 아닐까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기 영화는 철저하게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영화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데이빗 핀처 감독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했고, 급기야 관객인 제게 마크의 편이 아닌 왈도의 편이 되도록 유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한 이 영화의 객관적인 시선이 있었기에 [소셜 네트워크]는 '쿨'함을 유지합니다. 성공한 위인을 통해 교훈을 안겨주는 '지루함'보다 젊은 천재의 성공담을 통한 '쿨'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한 '쿨'함은 분명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위인의 틀에 박힌 성공과 그에 따른 감동보다 '페이스북'의 신화를 연 마크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는 가공되지 않은 생생한 현장감을 안겨 주었고, 그러한 현장감은 영화의 긴장감과 함께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데 기여합니다. [소셜 네트워크]가 평론가들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요소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다움을 지켜라.

 

[소셜 네트워크]는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게 조용히 속삭입니다. 세상에 적응하려 억지로 노력하기 보다는 '나'다움을 지키며 자연스럽게 세상에 녹아들라고...

세상을 급변시키는 주체였던 마크는 '마크'다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성공은 했지만 결국 외톨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진정한 친구였던 왈도을 잃은 그의 표정은 천재의 당당함보다는 혼자라는 외로움이 가득 묻어 났습니다.

그러한 마크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어쩌면 급변하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결국 이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 세상에 적응하는 것보다 중요할테니까요.

 

따지고 보면 저 역시 급변하는 세상에 재빠르게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다움은 어느정도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그 영화에 대해서 친구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개인 홈페이지를 거쳐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그러한 '나'다움을 실현하고 있으니까요. 굳이 '트위터'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세상의 유행에 뒤떨어지고 있더라도 여전히 제 블로그엔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친구들이 함께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디에서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저는 트위터를 하지 않는 시대의 유행에 뒤떨어진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저는 영화를 즐길 것이며,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진정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면 아무리 세상이 급변한다고 할지라도 '나'다움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 마크의 쓸쓸한 마지막 모습을 보며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쭈니의 자기 위로였습니다. ^^ 

 

 

 세상은 변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다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