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초능력자] - 권력이라는 초능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경고

쭈니-1 2010. 11. 11. 14:16

 

 

감독 : 김민석

주연 : 고수, 강동원, 변희봉, 정은채

개봉 : 2010년 11월 10일

관람 : 2010년 11월 10일

등급 : 15세 이상

 

 

한국형 히어로 영화?

 

예고편에서부터 구피의 눈을 반짝 반짝 빛나게 했던 바로 그 영화 [초능력자]를 보고 왔습니다. 평일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면 피곤하다며 투덜거리는 것이 우선이었던 구피가 아무런 잔소리 없이 '그래'라며 단번에 승낙하더군요. 역시 고수와 강동원이라는 꽃미남의 힘을 느껴다고나 할까요. 그런 구피의 반응이 조금 시샘이 나긴 했지만 남자인 제가 봐도 고수와 강동원은 잘 생긴 것을...

여하튼... [초능력자]를 보러 가면서 저는 한국형 히어로 영화의 계보를 잇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강동원은 [전우치]를 통해 한국형 히어로 영화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 배우이기에 더욱더 그러한 기대감은 증폭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초능력자]는 평범한 히어로 영화라고 하기엔 이상한 점이 있긴 했습니다. 대부분 히어로 영화의 경우 주인공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영화는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이고, 악당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범상치 않은 설정을 신인감독인 김민석은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본 [초능력자]는 한국형 히어로 영화의 외형을 지닌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였습니다. 함께 영화를 본 구피가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정치적이었다는 거야?'라고 물을 정도로 다른 분들은 전혀 공감을 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어쩌면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이 영화의 정치적인 이야기를 펼쳐 보겠습니다. 

 

 

 

 

평범한 남자 VS 초능력을 가진 남자

 

우선 제가 느낀 [초능력자]의 정치적인 부분을 이해하시려면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규남(고수)와 초인(강동원)의 대결 구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겠군요. 규남은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인 남자입니다. 아니 어쩌면 평범한 사람보다 좀 덜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해야할 것 같군요. 폐차장에서 일을 하는 그는 그 잘난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학벌도 좋아 보이지 않으며, 돈도 빽도 없는 소위 말하는 하층민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초인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남자입니다. 그는 눈빛 하나만으로 사람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그 능력으로 인하여 어렸을 적에 부모로 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럭셔리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이 둘이 만났습니다.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남의 돈을 쉽게 빼돌리던 초인은 자신에게 조종되지 않는 규남으로 인하여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둘의 대결은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규남은 초인에게 조종이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하여 규남은 초인에게 조종당하는 수 많은 사람들과 대결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하여 가까운 친구들을 잃는 슬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초능력자]는 이렇게 평범한 남자와 초능력을 가진 남자의 대결을 그림으로써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물론 가끔 규남의 공격으로 초인이 잠시 궁지에 몰리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게임은 규남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임일 뿐이었습니다.

 

 

  

 

초능력이라는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초인이 가진 능력입니다. 눈빛 만으로 사람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여 남의 돈을 빼앗습니다. 피땀흘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한끼 밥 값을 버는 사람들의 돈을 빼앗는 것, 그것이 초인이 이 세상에 기생하는 방식이었죠.

사람들은 그러한 초인의 행태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초인의 눈빛 하나에 조종당하며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그들은 불쌍하게도 초인의 능력 앞에 저항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러한 초인의 모습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거대한 권력을 이용하여 사회를 조종하고 자신의 이익을 착복하는 이들의 추악한 모습이 초인의 모습에서 비춰진 것입니다. 특히 규남에 의해 경찰에게 넘겨졌지만 경찰을 조종하여 빠져나가는 초인의 모습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 앞에서도 우월한 지휘를 이용하여 사법권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권력이라는 초능력을 가진 그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김민석 감독이 의도했던 것인지, 아니면 제가 오바하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권이 국민들을 자기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분명 [초능력자]의 초인을 보며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맞서는 평범한 남자의 희생

 

모두들 초인에게 조종당할 때 조종당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초능력자]의 히어로인 규남입니다. 스스로 '임대리'(대리라는 직책은 직장인에겐 가장 평범한 직책입니다.)라고 칭하는 그는 평범한 소시민,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그가 초인의 부도덕한 행태에 맞섭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그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초인에게 대항한 벌로 그는 직장을 잃고, 가까운 친구들을 잃으며, 초인이 조종하는 사람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깁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길 수 없는 게임임을 알면서도 그는 초인이 저지르는 부당함에 참 고집스럽게 맞서 싸웁니다.

초인은 말합니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었다고, 그냥 너만 모른척 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규남이 모른 척만 했다면 초인은 돈만 갖고 갔을 것이며, 그러면 그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그냥 예전처럼 자신의 돈이 없어진 것도 모른채 그렇게 일상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참 어이없죠? 부당한 짓을 저지르고 그것을 덮기 위해서 잔인한 짓을 자행하는 것은 초인인데, 그는 오히려 규남의 탓을 합니다. 그러한 초인의 말은 마치 권력에 반항한 사람들을 향한 권력자의 비겁한 외침 같이 들렸습니다. 자신의 부정비리가 권력이라는 초능력을 가진 자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이들. 그렇기에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부정비리를 파헤치는 규남같은 일반인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고 원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은 조종당하는 사람인가? 맞서는 사람인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당연하겠지만 초능력 따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과연 초인에게 조종당하는 일반인일까요? 아니면 초인과 맞서는 규남일까요? 아마 대부분 초인에게 조종당하는 일반인이 아닐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 초인에게 조종당하고 희생당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보며 섬찟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좀비같은 모습이 불의를 보고도 내가 해코지 당할까봐 슬슬 피하기만 했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김민석 감독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불의를 보고 그러한 불의를 고치기 위해 나서는 규남과 같은 일반인이라고 역설합니다. 차에 치이고, 칼에 찔리고, 지하철에 부딪히고, 고층 건물에서 떨어져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규남의 모습처럼, 권력자의 부정비리를 보고 권력에 겁먹지 않고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의 고난이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은 김민석 감독의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로 보였습니다. 권력에 맞서는 우리의 영웅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 어떤 고난에도 꿋꿋이 옳은 것을 향해 달릴 것이라고... 저는 비록 조종당하는 사람이지만, 아직 겁이 많아 맞서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런 김민석 감독의 메세지는 충분히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의 규남을 위해서...

 

다시 이 글의 초반에 언급되었던 구피의 물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구피는 제게 '도대체 어떤 부분이 정치적이었다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당시 제대로된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초인의 모습에서 권력자의 모습을, 조종당하는 일반인의 모습에서 제 모습을 보긴 했지만, 제가 한 편의 오락 영화에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제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불현듯 떠올랐던 우리 사회를 풍자한 듯이 보였던 그 수많은 정치적인 부분들이 막상 글을 쓰려니 잘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합니다.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잡초같은 규남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부정한 권력자들이 공공연하게 맘 놓고 부정비리를 저지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리고 규남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면 어쩌면 권력자들의 초능력을 이길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겁 많은 저는 조종당하는 일반인에 불과하지만 이 세상의 규남을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박수치며 응원을 해볼 생각입니다.

 

 

권력이라는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여!

국민들을 무서워 하라.

우린 언제든지 규남이 될수도 있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