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잭 스나이더
더빙 : 짐 스터져스, 휴고 위빙, 샘 닐, 제프리 러쉬. 헬렌 미렌
개봉 : 2010년 10월 28일
관람 : 2010년 11월 2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아버지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지우던 날.
아버지께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지 어느덧 한달이 되어 가고 있네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던 저희 가족은 그 동안 많이 당황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아버지께서 남겨 놓은 흔적을 지울 여유도 생겨났습니다.
주민등록을 정리하고, 아버지께서 타시던 연금과 아버지 이름으로 붓던 보험도 정리했습니다. 아버지와 공동 소유로 되어 있던 제 자동차도 상속 절차를 거쳐 제 단독 소유로 돌렸습니다. 회사에 하루 간의 연차 휴가를 내고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서류들을 떼어 보니 이제 서류 상에서도 아버지의 흔적은 사라지고, 그저 아버지의 성함 밑에 '사망'이라는 차가운 단어만이 덩그러니 새겨져 있더군요.
그렇게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고 나니 뭔가 허전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셔서 일평생 동안 동생들과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시던 아버지. 이제 남은 일생을 집에서 편히 쉬시며 보내실 수 있었을텐데... 은퇴와 더불어 덜컥 파킨슨 병에 걸리셔서 편안하게 쉬시지도 못하시고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남겨진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제가 봤던 영화는 [가디언의 전설]과 [심야의 FM]이었습니다. [가디언의 전설]은 화려한 그래픽으로, [심야의 FM]은 잘 다듬어진 긴장감으로 제 마음의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달래 주었습니다.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의 이단아?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디언의 전설]의 최대 장점은 화려한 그래픽이었습니다. 올빼미 왕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실사 같은 정교함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점점 실사화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01년 개봉되었던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는 실사보다 더욱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신선한 충격을 주었었습니다. 비록 빈약한 스토리 탓에 흥행에서는 쓴 잔을 마셔야 했었지만 [파이널 판타지]는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디지털 배우의 출연 등 수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은 그 이후에도 꾸준히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는데, 특히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은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 2007년 [베오울프], 2009년 [크리스마스 캐롤]로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가디언의 전설] 역시 그러한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인데 재미있는 것은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이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반에, [가디언의 전설]은 올빼미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입니다.
동물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은 성인 관객보다는 어린 관객에게 먹히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어린 관객들은 실사같은 애니메이션보다 단순한 만화같은 애니메이션에 더욱 열광하는 편입니다. 그들은 애니메이션의 기술력보다 원색의 화려함을 더욱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디언의 전설]은 동물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결국 잭 스나이더 감독은 상당한 모험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올빼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어린 관객을 사로 잡고,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으로 어른 관객을 사로잡을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일단 그러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계획은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입이 쩌억 벌어지는 기술력과 초딩스러운 스토리
우선 [가디언의 전설]에서 좋았던 점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영화의 기술력은 '최고'였습니다. 진짜 올빼미보다 더 진짜같은 영화 속의 올빼미들은 털의 부드러운 감촉이 영화를 보는 제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각기 개성을 살린 올빼미들의 모습과 표정은 물론이고, 판타스틱한 영화의 배경 역시도 도저히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제 경우는 이 영화를 일반 영화로 봤는데, 3D로 봤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푹풍우 속에서의 비행 장면과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펼쳐지는 불타는 숲에서의 결투 장면들은 2D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마 3D로 봤다면 그 입체감은 더욱 굉장했을 듯.
하지만 이 영화에 무조건적으로 박수를 보내기엔 스토리 라인의 문제점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올빼미 형제인 소렌(짐 스터져스)과 클러드가 순수혈통을 지향하는 메탈 비크 일당에게 납치되고, 동생인 소렌은 메탈 비크와 맞서 싸우기 위해 전설의 가디언을 찾아 나서지만 형인 클러드는 메탈 비크의 부하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후의 스토리 라인은 제 예상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아주 단순하게 흘러가는데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동안 15권으로 이루어진 원작 소설중 앞의 3권의 책을 원작으로 하다보니 모든 것이 그저 대충 대충 흘러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소렌이 자신과 함께 해줄 친구들을 만나는 과정이라던가, 가디언이 살고 있다는 가훌의 나무를 찾는 여정, 그리고 메탈 비크와의 마지막 대결까지. 이 모든 것을 담기엔 1시간 30분은 너무 짧았고, 결국 스토리는 이야기의 큰 줄기만을 쭈욱 나열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마리 토끼 중 하나는 포기했어야 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가디언의 전설]은 어린 관객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면서 어른 관객이 좋아하는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린 관객과 성인 관객을 동시에 잡으려한 이 영화는 결국 어린 관객을 위한 단순한 캐릭터 및 스토리와 짧은 러닝타임, 어른 관객을 위한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것들은 서로의 장점이 아닌 오히려 단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CGV에서 [가디언의 전설]은 더빙이 아닌 자막 버전으로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CGV는 [가디언의 전설]을 성인용 애니미에션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CGV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예매사이트인 맥스무비에서 검색해보니 [가디언의 전설]을 더빙 버전으로 상영하는 극장이 나오질 않네요. 실사같은 애니메이션을 표방하고 있는 [가디언의 전설]이 어린 관객에겐 적당하지 않다는 배급업체와 극장의 판단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기술력만으로 눈이 높아진 성인 관객을 잡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10년 전 [파이널 판타지]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도 빈약한 스토리 라인으로 인한 결과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디언의 전설]의 성인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좀 더 짜임새 있는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스토리는 단선적입니다. 9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은 집중력이 약한 어린 관객에게 어울립니다. 성인 관객을 위해서라면 러닝타임을 늘려서라도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을 좀 더 짜임새있게 정리했어야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걸작 판타지 영화라는 찬사를 받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이 각각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결국 [가디언의 전설]은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성인 관객을 위한 긴 러닝타임과 짜임새있는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를 구축했다면 좋았을 것을... 이 영화의 우수한 기술력이 아깝게 느껴질 뿐입니다.
어린 관객과 성인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저 욕심내지 말고 성인 관객에게만 집중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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