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토드 윌리암스
주연 : 케이티 페더스톤
개봉 : 2010년 10월 21일
관람 : 2010년 10월 21일
등급 : 12세 이상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 구피의 한마디
"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2]보고 싶어." 어느날 갑자기 구피가 제게 뜸금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농담인줄 알았습니다. 저도 공포영화를 싫어하지만 구피는 저보다 공포영화를 몇 배는 더 싫어하거든요. [검우강호]에서 영화의 후반부 산 채로 매장당한 여자 암살자가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려고 하는 장면만 보고도 그날밤 악몽을 꾼 구피였기에 [파라노말 액티비티 2]를 보고 싶다는 구피의 말은 그저 절 한번 떠보려고 하는 말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파라노말 액티비티 2]가 개봉한 바로 어제... 구피는 대뜸 "영화보러 가자."라고 하더군요. 전 당연히 이번 주의 기대작인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를 볼 생각이었습니다. 아니면 이번 주의 다크호스인 [된장]이던가... 그런데 구피가 점 찍은 영화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2]였습니다. 전 편도 보지 않은 상태였기에 더더욱 의외였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공포영화를 본 것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안납니다. 그래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2007년 10월에 본 [궁녀]가 제겐 마지막 공포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궁녀]는 스릴러 영화인줄 속아서 본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갑자기 '전설의 고향'으로 바뀌었을 때 상당히 당혹스러웠었습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구피가 마지막으로 본 공포영화는 2007년 4월에 본 [극락도 살인사건]이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본 영화였는데, 구피한테 결혼기념일에 귀신 영화보여줬다고 엄청 혼난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극락도 살인사건]역시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귀신이 튀어나올줄 전혀 몰랐고, 또 굳이 이 영화의 장르를 정한다면 공포보다는 스릴러가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저와 구피가 우리의 의지로 본 마지막 공포영화는? 두두둥!!! 바로 2005년 6월에 본 [분홍신]이었습니다. 자! 이 정도면 제가 왜 구피가 [파라노말 액티비티 2]를 보고 싶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랬는지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말해 [파라노말 액티비티 2]는 구피와 제가 우리의 의지로 본 5년 4개월 만의 공포영화인 셈입니다.
1편을 봤어야 하는건가?
2009년 9월에 미국에서 개봉된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단 1만5천 달러의 제작비로 미국에서만 1억 8백만 달러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올렸으니 천정부지로 상승하는 제작비로 인하여 골머리를 썩고 있던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에겐 그저 기적과도 같은 영화인 셈입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지난 1월 국내에 개봉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개봉 첫주 5위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공포영화 매니아 사이에선 획기적인 공포영화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편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1편과 비교해서는 등장인물은 물론 카메라의 개수까지 대폭 늘어났다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2]는 늘어난 제작비와 등장인물, 그리고 카메라 대수만큼이나 영화의 재미까지 늘어났는지 많은 공포영화 매니아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예기치 못하게 [파라노말 액티비티 2]를 보러 가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1편과의 연결 문제였습니다. 얼핏 듣기엔 1편의 주인공이었던 케이티(케이티 페더스톤)이 2편에서도 엄청난 역할을 한다고 들었기에 제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분명 1편과 2편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지만 2편을 먼저 보고 1편을 봐도 무방하겠더군요. 왜냐하면 2편의 내용은 1편의 사건이 벌어지기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1편에서 케이티와 미카 부부에게 어쩌다가 악령이 들었는지, 그리고 1편의 여러 개의 엔딩씬 중에서 케이티가 사라진 엔딩을 차용하여, 그녀가 어디로 무엇 때문에 사라졌는지 2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편을 보고 2편을 봐도, 2편을 보고 1편을 봐도 큰 상관이 없는 셈이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2편을 보고나니 1편을 보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만큼 [파라노말 액티비티 2]는 제게 지루했습니다. 공포영화를 무서워하는 겁 많은 제가 무서워서 재미가 없었던 것이 아닌 지루해서 재미가 없었을 정도이니 그 지루함의 강도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초반, 너무 뻔한 것만 일어나는 후반
그래도 이 영화가 왜 제게 지루했는지 설명은 해야 겠죠? 일단 공포의 강도가 너무 약합니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공포가 무엇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악령의 공포를 아주 서서히 영화속에 표현함으로써 관객의 공포 역시 아주 서서히 증폭시키려 했던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너무 서서히 증폭시켰다는 것에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 다니엘 가족은 집에 도둑이 들자 집안 구석구석에 CCTV를 설치합니다. 처음엔 CCTV의 그 파란 화면만 봐도 뭔가가 불쑥 튀어 나올 것 같아 긴장이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CCTV를 설치한지 몇 일이 지나도 별 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수영장 밖으로 나와 있는 수영장 청소기, 갑자기 뚝 하고 떨어지는 그릇, 그리고 아무도 없는데 닫히는 문 등등 CCTV에 나타나는 기현상들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그 강도를 높여 가지만 그릇 떨어지는 소리에, 혹은 구피가 깜짝 놀라는 몸짓에 저도 잠시 놀랬을뿐입니다. 이 영화의 초반의 공포는 그야말로 공포라고 할 것도 없는 시시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후반에 다니엘 가족이 키우는 개가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부터 이 영화의 본격적인 공포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족과도 같은 개를 치료하기 위해 동물 병원으로 향하는 다니엘과 그의 딸 알리. 결국 집에는 크리스티와 갖난 아들만이 남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의 고요는 솔직히 긴장되었습니다. 뭔가가 튀어나올 분위기인데 몇 분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오히려 불안하더군요.
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자 모든 것이 시시해 졌습니다. 아이를 지켜려는 엄마와 아이를 데려가려는 악령의 싸움은 [파라노말 액티비티 2]에서는 가장 무서운 장면이긴 한데 다른 공포영화와 비교해서는 역시 시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너무 뻔한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튀어 나와 무섭고 싶어도 무서울 수가 없는 지경으로 절 몰고 가더군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케이티가 나오는 장면은 1편을 봤다면 섬뜩할 수도 있었겠지만 1편을 보지 못한 저로써는 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으니 제겐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가 왜 공포영화인지 의문인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영화를 보고나서 오랜만에 구피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 영화 분명 네가 보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는 영화를 제가 고르기 때문에 영화가 재미없으면 항상 구피에게 한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는 보자고 하다니..." 뭐 이런...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다음 날을 위해 취침을 들려는 찰라 밖에서 "불이야!"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보니 건너편 아파트에서 불이 났더군요. 소방차가 출동해서 30분 만에 불은 꺼졌지만 아파트의 베란다를 통해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 [파라노말 액티비티 2]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늘 아침에 출근하여 뉴스를 검색하다가 어제의 불이 부부싸움을 한 4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하네요.
또 며칠 전에는 13살 남자아이가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며 때린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부모는 물론 할머니와 여동생까지 죽이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성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다면 그런 일을 벌일 수가 있을까요?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묵숨을 끊은 40대 남성도, 자신의 일가족을 죽이고 태연하게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했던 10대 남자아이도, 순간적으로 악령에 홀리지 않았다면 저런 어처구니없는 무시무시한 짓을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니 [파라노말 액티비티 2]보다 지금 나의 일상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저런 무시무시한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그 40대 남성이 저희 옆 집 아저씨일수도 있었고,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집에 불을 지른 10대 남자아이가 저희 아랫집 아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암튼 우린 공포영화보다 더욱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난 우리가 코미디영화보다 웃음이 많고, 멜로영화보다 사랑이 넘쳐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은 공포영화보다 무섭고, 스릴러영화보다 긴장해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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