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검우강호] - 클래식한 무협영화의 진수에 빠지다.

쭈니-1 2010. 10. 20. 14:27

 

 

감독 : 오우삼, 차오빈 수

주연 : 정우성, 양자경, 왕학기, 서희원

개봉 : 2010년 10월 14일

관람 : 2010년 10월 18일

등급 : 15세 이상

 

 

영화보러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지난 9월 친구 부부들과 강원도 정선으로 놀러 가던 길에 고속도로에서 주유를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주유 영수증에 영화 예매권 당첨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입니다. 혹시나해서 알아보니 정말로 영화 예매권이 당첨된 것이더군요.

하지만 정선에서 얼음팩이 구피의 발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구피의 발가락에 금이 갔고, 그로인해 한동안 영화를 보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매권 사용 기한이 10월 19일까지였으니 저로써는 이대로 아까운 예매권을 날릴 위기에 빠진 셈입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최소 한달 이상은 해야할 줄 알았던 구피의 깁스가 지난 10월 16일 풀렸습니다. 오랫동안 깁스를 했기 때문에 발목이 아파 아직은 절룩거리며 걷지만 그래도 우려했던 발가락 금이 붙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던 셈입니다. 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우강호]를 예매했습니다. 발가락 붙은 기념이라는 핑계로 예매권 사용 만기인 10월 19일을 하루 앞둔 날 기여코 예매권을 써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야근으로 인하여 회사에서 곧장 극장으로 출발한 구피와는 달리 집에서 차를 끌고 극장으로 출발해야 했던 저는 오랜만에 구피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들뜬 마음 때문인지 평소엔 하지도 않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바로 주차장 기둥에 차를 긁어버린 것입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주차하는 집 주차장이었기에 너무 방심을 했나봅니다. 제 차의 운전석 뒷 문에 큼지막하게 긁힌 자국을 보며 얼마나 속이 쓰리던지...

정말 영화고 뭐고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집어 치우고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속이 쓰렸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버지 장례를 치루고나서 일주일동안 벌써 세 번째 접촉사고입니다. 며칠 전에 차에 긁힌 자국들을 싹 수리한터라 그날의 실수는 더욱 뼈 아팠습니다.

그래도 [검우강호]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긁힌 자국이 선명한 차를 끌고 극장에 간 저는 '또 긁혔어?'라고 핀잔을 주는 구피에게 기가 팍팍 죽은 상태로 영화를 봤습니다. 다행히 영화가 재미있어서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속 쓰림이 좀 나아졌지만, 그날 밤 구피는 악몽을 꾸는 등 후유증은 꽤 깊었습니다.

 

 

클래식한 무협영화의 진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 [검우강호]가 재미있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클래식한 무협영화의 재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즘 중국의 무협영화들은 광활한 스케일과 진일보한 특수효과를 내세운 현대적 감각의 무협영화가 대세입니다. 최근 재미있게 봤던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도 그런 형식이었는데, 120m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의 스케일과 SF영화를 방불케하는 과장법으로 영화적인 재미를 완성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협영화가 그렇게 과장법이 심했던 영화들은 아니었습니다. 초창기 이소룡, 성룡으로 대표되는 (사실 그 이전은 잘 모릅니다.) 무협영화들은 날 것 그대로 온 몸을 부딪히는 액션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검우강호]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무협영화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초창기 무협영화들처럼 날것 그대로의 액션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무협영화 특유의 스케일과 특수효과를 최대한 자제하며 액션 그 자체의 쾌감을 관객에게 선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스토리 라인도 클래식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암살자들에 의해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복수, 자신의 정체를 감추며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무술 고수들의 결전 등 예전에 제가 한참 읽었던 무협만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평범한 스토리 라인을 지니고 있습니다.

[검우강호]를 보며 저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중국 무협영화의 진수를 맛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오우삼 감독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색다른 경험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오늘 알고 보니 오우삼 감독은 장철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더군요. 장철 감독이라면 60년대와 70년대 호금전 감독과 양대산맥을 이루며 홍콩 무협영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전설적인 감독입니다. 비록 그의 영화들을 저는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외팔이 검객 시리즈]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오우삼 감독은 그런 장철 감독의 밑에서 연출을 배우며 폭력미학을 완성해 냈고, [검우강호]를 통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맘껏 발휘한 것입니다.

 

 

영화 사이트가 스포일러였다.

 

하지만 영화를 즐기는 동안 [검우강호]에 대해서 한가지 의문점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앙(정우성)과 정징(양자경)의 정체입니다.

각종 영화 사이트 및 포털 사이트에 공개된 [검우강호]의 스토리 라인은 황실의 명으로 달마 유해의 반쪽을 보관하던 지앙의 아버지가 달마의 유해를 노리는 암살단에 의해 살해당하게 되고,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던 지앙은 얼굴도 바꾼 채 소박한 우편배달부의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마을에서 비단 장사를 하는 정징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되지만, 정징이 정체 모를 검객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서 그녀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진다는 내용입니다.

명백히 지앙의 정체는 스토리 라인에서 이미 밝혀졌지만 정징의 정체만은 마지막 반전으로 숨겨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눈치 빠른 분이라면 이러한 스토리 라인만 보더라도 정징의 정체를 쉽게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어찌되었건 정징의 정체는 각 영화 사이트의 스토리 라인만 놓고본다면 마지막 반전임에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막상 영화를 보니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정징의 정체는 처음부터 친절하게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지앙의 정체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숨겨 놓더군요.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영화의 초반부터 카메라는 냉혹한 암살자였으나 어떠한 일을 계기로(그 계기는 직접 영화로 확인하시길...) 얼굴을 바꾼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길 소망하는 정징을 쫓아갑니다. 그녀가 평범한 일상을 소망하다가 우연히 만난 것이 지앙이고, 자신의 과거 때문에 지앙과의 이 행복한 사랑을 받아들여도 괜찮은지 고민하는 정징의 모습까지 나옵니다. 한마디로 영화 사이트의 스토리 라인과는 정 반대인 셈입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영화만 놓고본다면 지앙의 정체는 마지막 반전이 되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물론 눈치 빠른 분들에겐 역시 간파 당할테지만 그래도 영화의 후반부에 지앙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은 꽤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영화 사이트의 스토리 라인이 망쳐놓았습니다. 영화 사이트의 스토리 라인은 대부분 영화의 홍보사가 배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홍보사는 일부러 정우성을 중심으로 스토리 라인을 배포했고, 그 결과 영화의 재미를 망치는 스포일러가 스스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참 황당한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우성의 준비된 중국 진출

 

[검우강호]에서 유일하게 짜증이 났던 부분은 바로 위에서 밝힌 영화 사이트의 스포일러 부분이었습니다. 뭐 대단한 반전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엉터리 스토리 라인으로 스스로 반전을 밝히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는 영화를 보면서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그리고 정우성에 비해 양자경이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도 약간 아쉽더군요. 얼굴을 바뀌준다는 그 의원은 얼굴만 바꾸지, 왜 나이까지 바꿔버리는 것인지... 한참 연상의 여인과 멜로 연기를 해야하는 정우성이 조금 안쓰러워 보였습니다.(물론 양자경의 액션은 명불허전)

[검우강호]는 영화 사이트의 어처구니없는 스포일러 행위와 정우성과 멜로 연기를 해야하는 양자경의 주름을 제외하고는 제게 대만족감을 안겨줬습니다. 특히 오우삼 감독의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정우성의 모습은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뿌듯함마저 느껴집니다.

 

사실 정우성의 중국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1996년 [상해탄]에서 유덕화, 장국영과 함께 연기를 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 정우성의 비중은 우정 출연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출연 분량이긴 했습니다.

2001년 김성수 감독의 [무사]는 한국영화였지만 중국 올로케와 이젠 세계적 톱스타가 된 중국 배우 장쯔이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전지현, 이성재와 주연을 맡았던 [데이지]는 [무간도 시리즈]의 유위강 감독이 연출을 맡았었고, 최근에는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에서 중국 올로케와 함께 중국의 신예 스타인 고원원과 커플 연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국내 배우중 정우성 만큼 중국 진출을 위해 준비된 배우도 없을 것이라 생각을 들정도로 중국과 정우성의 인연은 깊은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검우강호]에서의 정우성의 연기는 중국어 대사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자연스러웠습니다.

그 외에도 갸녀린 외모와는 달리 표독스러움과 마지막의 인상적인 최후로 구피에게 영화를 보던 날 밤의  악몽을 꾸게끔 했던 암살자 옥 역의 서희원, 그리고 잠시 이순재를 연상시켰던 흑석파의 우두머리 왕륜 역의 왕학기 등 중국 무협영화의 클래식한 재미외에도 배우들의 앙상블도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에 이어 [검우강호]까지... 같은 듯 서로 다른 중국 영화의 매력을 연달아 감상을 하다니 올해 10월은 중국 영화로 제게 기억이 될 것 같네요.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과 [검우강호]는

같은 무협영화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가진 진정한 장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