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 - 올리버 스톤은 돈에 먹히지 말기를...

쭈니-1 2010. 10. 25. 15:11

 

 

감독 : 올리버 스톤

주연 : 샤이아 라보프, 마이클 더글라스, 캐리 멀리건

개봉 : 2010년 10월 21일

관람 : 2010년 10월 24일

등급 : 12세 이상

 

 

술의 유혹을 이겨내고 영화를 취하다.

 

지난 금요일 회사 회식이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 영업부가 주최한 회식이었는데 회식장소는 특이하게도 난지캠핑장이었습니다. 영업부의 준비는 철저했는데, 메뉴는 한우등심과 대하, 소세지 숯불 바비큐였고, 술은 소주는 물론, 맥주, 와인까지 다양하게 준비했더군요.

이렇게 다양하게 차려진 술상에서 술을 거부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날 함께 제 차로 회식 자리에 갔었고, 차를 가져간 만큼 술을 마실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구피의 꼬드김도 한 몫했습니다. 회식에서 술 마시지 않고 일찍 들어오면 일요일날 영화를 함께 보겠다는 구피의 유혹은 제게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한우 등심 스테이크만 꾸역꾸역 먹으면서 달콤한(?) 소주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뿌리치기 힘들었던 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벨기에 맥주 호가든의 유혹이었는데...  호가든 맥주를 종이컵에 받아들고 정말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한 잔도 술이기에... 맨정신으로도 운전이 서투른 제가 맥주 한 잔이라도 마시면 더욱 서툴러질 것이 분명했고, 맥주 한 잔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르는 것도 돈이 아까워 정말 눈물을 머금고 참았답니다.

 

술 한 잔을 안마시고 회식 자리를 빠져나와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구피의 환대와 어쩌면 저를 위해 준비되어 있을 깜짝 술 상을 기대하며... 하지만 집엔 아무도 없더군요. 나보다도 늦게 들어온 구피. 결국 캔 맥주 하나로 떼우고 그렇게 호가든의 유혹을 뿌리친 날은 지나갔습니다.  

일요일. 구피와 약속했던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를 보러 갔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제가 치룬 그 엄청난 희생(?) 탓에 영화에 대한 제 기대감은 꽤 높았습니다.

일단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기대되었습니다. 8,90년대 이른바 베트남전 3부작으로 알려진 [플래툰], [7월 4일생], [하늘과 땅]으로 명성을 얻은 올리버 스톤 감독은 [J.F.K], [닉슨] 등의 정치 드라마와 [월 스트리트], [도어즈], [내추럴 본 킬러](국내 개봉명은 [올리버 스톤의 킬러]) 등의 영화로 명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거대한 흥행 실패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로 저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다시 화려하게 재기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신구(新舊)의 조화 : 샤이아 라보프 VS 마이클 더글라스

 

저는 개인적으로 올리버 스톤의 연출력을 기대하며 영화를 봤지만 아마도 다른 분들은 할리우드의 신성 샤이아 라보프와 [나일의 대모험], [원초적 본능]등의 영화를 통해 한때 할리우드의 섹시 스타로 군림했던 마이클 더글라스의 신구 연기대결을 기대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고보니 샤이아 라보프는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해리슨 포드와 함께 신구 연기대결을 펼치며 3편 이후 20년만에 제작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4편을 무리없게 이끌어 냈고, 너무 늙어버린 해리슨 포드를 대신하여 새로운 인디아나 존스의 탄생을 기대하게 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8년의 복역을 마치고 연방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초췌한 게코(마이클 더글라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그리고 금융계에서 한창 출세가도를 달리는 제이콥(샤이아 라보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둘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는 출세가도를 달리던 제이콥과 이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물간 게코의 거래로부터 시작합니다. 증권가에 거짓 소문을 퍼트려 자신의 멘토인 루이스의 자살을 이끈 이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 제이콥과 제이콥의 약혼녀인 자신의 딸과 화해를 하고 싶은 게코는 아무도 둘 만의 모르는 은밀한 거래를 시작합니다.

게코와의 거래를 통해 제이콥은 브레톤을 향한 복수에 착수하고, 게코는 자신을 증오하는 위니(캐리 멀리건)와의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영화는 후반에 가면 갈수록 복수의 늪에 깊게 빠지는 제이콥과 그러한 제이콥을 이용하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게코의 대결로 이어지며 대 반전을 이뤄냅니다.

이 부분에서 샤이아 라보프와 마이클 더글라스의 진정한 연기 대결이 펼쳐지는데 초반과는 달리 모든 것을 잃은 제이콥의 초라한 모습과 과거의 명성을 되찾은 게코의 화려한 모습은 이 두 배우가 왜 신구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인지 관객들 앞에 증명해 보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연기 대결은 이 영화에서 최고의 백미였던 셈입니다.  

 

 

돈에 먹힌 사람들 

 

영화의 내용도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간혹 전문용어들이 튀어 나와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충 영화의 분위기로 파악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는 각본이 잘 짜여진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특히 제이콥이 게코와의 거래를 통해 점점 타락해가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탐욕은 좋은 것이다'라고 외치는 게코와 달리 '친환경 에너지가 우리의 미래다'라고 외치는 제이콥의 모습은 초반까지만 해도 상반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이 되면 될수록 제이콥의 모습에서 게코가 오버랩되기 시작합니다. 그는 점점 돈에 매몰되어 갑니다.

스위스의 은행에서 1억불을 찾기 위해 위니를 설득하는 제이콥에게서 드러난 탐욕의 모습에서 돈에 먹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이상을 쫓던 제이콥이 점점 돈을 쫓기 시작한 것이죠. 그의 모습에서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를 발견한 위니의 안타까운 외면이 그래서 더욱 가슴 아팠습니다.

 

게코가 제이콥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돈은 절대 잠들지 않는다. 우리가 잠든 이 순간에도 돈은 두 눈을 부릅 뜨고 우릴 쳐다보고 있다.'라고... 결국 이 영화의 부제가 된 대사인데, 생각해보면 상당히 섬뜩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군가 잠들지도 않고 우릴 계속 쳐다보고 있다면...

월 스트리트... 미국의 아니, 세계의 경제를 쥐고 있는 이들의 전쟁터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명감보다는 돈에 대한 욕심에 두 눈을 번뜩거리며 돈을 찾아 헤맵니다. 브레톤이 그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는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서슴치않고 할 파렴치한 투자가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를 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돈을 쫓으며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니까요. 게코도 마찬가지이고, 제이콥도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절망의 나락에 빠졌었습니다. 과연 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잠을 자야 합니다. 하지만 잠조차 자지 않고 우릴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보는 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는 그런 무시무시한 돈에 의한 스릴러 영화입니다.

 

 

말랑말랑한 해피엔딩이 눈에 거슬리는 이유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는 전체적으로 본다면 잘 만든 스릴러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출중했고, 극을 이끌어 나가는 스토리 라인도 꽤 탄탄합니다. 성공, 타락, 몰락을 반복하는 캐릭터 묘사도 탁월한 편입니다.

단, 저는 이 영화에서 예전의 올리버 스톤 감독이 보여줬던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가 아쉬웠습니다.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어느 사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오락영화로 변질되어 가던 80년대. 올리버 스톤은 [플래툰]으로 베트남전의 본질을 관객들에게 일깨워줬었습니다. [플래툰]은 의심의 여지없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룩]과 함께 최고의 걸작 베트남전 영화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올리버 스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고집은 [알렉산더]라는 거대한 블록버스터가 되어야 마땅한 영화에조차 블록버스터와는 동떨어진 색다른 재미를 드러냈는데... 제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에 더욱 기대감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바로 [알렉산더]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흥행 실패이후 올리버 스톤 감독이 약간 변한 것 같습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그 변화가 감지되었는데 미국을 향한 최악의 테러였던 9.11 테러를 소재로한 이 영화는 9.11 테러를 통해 미국의 대테러 정책의 허점을 통렬하게 비판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관객이 좋아할 따끈따끈한 휴머니즘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갔었습니다.

이번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돈에 매몰된 제이콥의 비극으로 영화가 끝맺음을 해야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제이콥은 게코처럼 되어 있었고, 제이콥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엔 그는 너무 멀리 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랑말랑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악은 벌을 받고, 선은 성공하며, 주인공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빕니다. 미국 경제의 허점과 그를 이용한 월 스트리트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그렸던 이 영화는 현실에선 불가능해 보이는 착한 결말을 선보인 것입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제작비는 7천만 달러입니다. 그리고 결국 올리버 스톤 감독은 예전의 그 날카로운 사회 비판적인 시선 대신 관객이 좋아하는 해피엔딩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흥행에서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개봉 5주간 벌어들인 흥행 수입이 고작 5천만 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제이콥이 느꼈어야할 좌절을 지금 올리버 스톤 감독이 느끼고 있을지도... 그가 부디 돈에게 먹히지 않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희망해봅니다.   

 

돈에 의한 타락은 한 순간이고 그 유혹은 너무 달콤해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에 그들의 느닷없는 변화가 너무 착한 결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