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무적자] - 끝이 나쁘니 모든 것이 나쁘다.

쭈니-1 2010. 10. 14. 16:15

 

 

감독 : 송해성

주연 : 주진모, 송승헌, 김강우, 조한선

개봉 : 2010년 9월 16일

관람 : 2010년 10월 11일

등급 : 15세 이상

 

 

3,40대 남성의 로망을 리메이크하다.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아마도 한번쯤은 주윤발의 바바리 코트를 동경했을 것이며,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다닌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는데, 비록 당시 제가 중학생이었던지라 바바리 코트는 입지 못했지만 성냥개비, 혹은 이쑤시개를 질근질근 씹으며 거리를 활보했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영웅본색]이라는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암흑가의 두목인 형과 형사인 동생의 갈등을 그렸던 홍콩느와르의 전설과도 같은 이 영화는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시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주윤발 신드룸을 양성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송해성 감독이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무적자]를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80년대 감성을 어떻게 그려냈을지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주윤발이 연기했던 소마를 송승헌이 연기했다는 것에도 불안했습니다. 사실 송승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아직은 연기력과 카리스마가 부족한 배우임에는 분명했으니까요.

 

예상대로 [무적자]는 추석 대목 시즌에 개봉하여 개봉 첫 주에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 성공의 길을 걷는 듯 했지만 개봉 2주차에는 [시라노 : 연애조작단]에 밀려 2위로 내려 앉았고, 3주차에는 4위, 4주차에는 7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입소문 덕분에 개봉 2주차부터 1위 자리를 고수했던 [시라노 : 연애조작단]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인데, 그만큼 관객의 입소문이 흥행에 중요한 영향을 끼침을 증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무적자]의 입소문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일단 [영웅본색]의 열렬한 팬인 3, 40대 관객을 잡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며, 요즘의 젊은 관객들에겐 [영웅본색]의 80년대 감수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무적자]가 촌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전 어땠냐고요? 솔직히 개봉한지 거의 한달만에 영화를 봤기에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미리 알고 있었고, 때문에 기대를 별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봤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가 되면 될수록 확 깨버리더군요. 지난 월요일에 봤던 세 편의 영화([시라노 : 연애조작단],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 [무적자])중에서 [무적자]가 가장 재미없었던 이유는 바로 확 깨버린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탈북자가 되어 버린 그들

 

일단 제가 요즘 신세대 관객이 아닌 80년대 [영웅본색]에 열광하던 구세대 관객임을 밝힙니다. 그래서 제가 [무적자]를 감상한 포인트는 '80년대 영화인 [영웅본색]을 얼마나 현대적 감성에 맞게 리메이크했는가?'가 아닌, '얼마나 [영웅본색]을 훼손하지 않고 잘 리메이크했나?'입니다. 

일단 김혁(주진모)와 김철(김강우) 형제를 탈북자로 설정한 것은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웅본색]이라는 홍콩영화에 한국적 색체를 입히는 작업이었으니까요?

특히 탈북자 설정의 장점은 김혁과 김철 형제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영웅본색]에서 자호(적룡)와 아걸(장국영)의 갈등이 단지 자호는 암흑가 두목이고 아걸은 형사이기 때문이라고 표현됩니다. 하지만 [무적자]에서는 탈북 과정에서 김혁이 어머니와 김철을 버리고 혼자 탈북을 했고, 그로인해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김철이 형을 그토록 미워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아걸의 형에 대한 증오보다 김철의 형에 대한 증오가 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김철의 증오가 크면 클수록 동생을 향한 김혁의 헌신도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무적자]에서 동생을 향한 김혁의 죄책감은 조금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광적인데, 그렇기에 영화의 후반부 극단적인 선택이 오히려 이해가 될수 있었습니다.

탈북자라는 설정은 김혁의 동료인 이영춘(송승헌)에게도 적용되는데 김혁과 이영춘의 그 끈끈한 우정이 생과 사를 함께 한 탈북자 동료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설명과 이영춘이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그의 무모한 용기와 카리스마를 별다른 장치없이 표현해냅니다.

이렇듯 탈북자라는 설정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꽤 많습니다. 원작의 훼손없이 차별화에 성공했으며, 캐릭터간의 갈등과 관계를 긴 설명없이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원작에 비해 오히려 그 갈등의 폭을 넓힘으로써 [영웅본색]이라는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장미를 증폭시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난 송승헌, 조한선의 연기가 맘에 들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송승헌의 연기는 어땠을까요? 전 완벽하지는 않지만 꽤 잘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송승헌으로써는 이영춘이라는 배역을 맡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습니다. [영웅본색]의 소마(주윤발)는 [영웅본색]에서 진정한 주인공이었고, 지금의 주윤발을 있게 해준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만큼 [영웅본색]에 대한 뭇남성들의 로망은 소마에 대한 로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송승헌은 바로 그러한 소마에 고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그렇기에 송승헌을 향한 혹평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아마 송승헌이 아닌 그 누구라도 이영춘을 연기했다면 대부분의 관객에게 욕을 먹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승헌은 꽤 잘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윤발이 보여줬던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송승헌 나름대로 이영춘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해 냈습니다. 능글거리면서도 의리가 있고, 허영심으로 가득차 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칼을 숨기고 기다릴 줄도 아는 그런 송승헌만의 소마를 완성해 낸 것입니다.

 

조한선의 연기도 뜻밖이었습니다. [영웅본색]을 볼 때도 전 이자웅이 연기한 아성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웠습니다. '어쩜 저렇게 야비하고 얄미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야비하고 얄미운 캐릭터를 조한선이 연기했습니다.  

이영춘을 연기한 송승헌은 어쩔수없이 관객들에게 욕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면 정태민을 연기한 조한선은 관객들에게 욕을 먹어야 성공했다고 자평을 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가진 셈입니다.

그리고 조한선은 성공했습니다. 그는 잘생긴 배우였고, [무적자] 이전만 하더라도 잘생긴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던 배우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악역을 맡았습니다. 조한선으로써는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생긴 스타의 길을 포기하고 연기하는 배우의 길을 선택한 셈이죠. 그 결과 정태민은 정말 징그럽도록 얄미운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옆에 있으면 한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이자웅과 맞먹을 정도로 얄미운 그의 연기는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무적자]가 용서가 안된다.(스포有)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무적자]가 못마땅합니다. 탈북자라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고, 논란이 되었던 송승헌, 조한선의 연기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 영화의 결말이 죽도록 싫습니다. 끝이 좋다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던데... [무적자]는 결정적으로 끝이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영웅본색]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소마뿐이었습니다. 물론 [영웅본색 2]에서는 장국영이 공중전화박스에서 공중전화로 아기를 출산한 아내에게 아이를 이름을 지어주며 죽는 불후의 명장면을 만들어 냈지만 어찌되었건 1편에서는 소마만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송해성 감독은 2편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적자]에 [영웅본색] 1, 2편의 장렬한 비장함을 모두 담아내야 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이영춘 뿐만 아니라 김혁도, 김철도 모두 장렬하게 죽여 버립니다. 하지만 송해성 감독이 착각한 것은 모조리 죽인다고 비장미가 더욱 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저는 김철의 죽음이 너무 마음에 안들었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영웅본색 2]에서 아걸의 죽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로 명장면이었습니다.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던 그의 마지막 모습은 [영웅본색]이 주윤발의 영화라면 [영웅본색 2]는 장국영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무적자]에서 김철은 정말 찌질합니다. 형에 대한 원망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있는 후반부에 가서는 덜덜 떠는 것 외에 할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민폐 캐릭터가 되어 버린 것이죠. 게다가 무책임한 자살이라니요. 아걸의 책임감있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무책임한 자살을 선택하는 김철의 마지막 모습은 그래도 [무적자]를 괜찮게 봤던 절 확 깨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비장한가요? 웃기지 말라고 그러십시오.

그 마지막 장면 하나만으로도 저는 [무적자]가 용서가 안됩니다. 그리고 송해성 감독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파이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같은 잘만든 영화도 만들었지만 [카라]와 같은 어이없는 영화도 만들었고, [무적자]에서는 마지막 단 한 장면으로 [영웅본색]의 팬인 저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그의 정체가 정말 궁금합니다.

 

끝이 나쁘면 모든 것이 나쁘다.

[무적자]는 그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