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브라이언 싱어
주연 : 휴 잭맨, 할리 베리, 이안 맥컬린, 패트릭 스튜어트, 팜케 젠센
개봉 : 2003년 4월 30일
결혼을 하고 거의 2주일만에 처음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사실 그동안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서 이제나 저제나 영화 볼 여유시간만 기다렸건만 좀처럼 시간이나지 않더군요. 신혼여행 다녀와서 인사드릴 분들도 많고, 정리해야 할 짐들도 많고, 회사일도 많고, 퇴근하고 거의 매일 녹초가 되도록 신혼방을 꾸미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이제 곧 집들이 일정까지 빽빽하게 짜여져 있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다 할지라도 올 썸머시즌 블럭버스터의 시작을 알리는 [엑스맨 2]만은 놓칠 수 없었습니다. 전편인 [엑스맨]은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방안에 쭈그리고 앉아 비디오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겐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바꾼 정말로 획기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렇기에 전 [엑스맨 2]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헐리우드의 블럭버스터라면 나보다도 더욱 열렬한 팬인 나의 아내 역시 바쁜 와중에도 [엑스맨 2]만은 보기를 강렬하게 소망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엑스맨 2]의 전세계 동시 개봉날인 4월 30일에 어떻게해서든지 이 영화를 보기로 다짐했습니다.
6월 결산인 회사에 다니는 탓에 5, 6, 7월이 가장 바쁜 저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의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과연 오늘은 정시에 퇴근해서 영화를 볼 수 있을런지... 다행히 팀장님은 오늘은 일찍 퇴근하자고 선언하셨고 저는 오후 6시 20분 영화표를 과감하게 예매했습니다. 퇴근 시간인 5시 30분에 정시 퇴근하기위해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제발 오늘 오후엔 일거리를 넘기지 말라고 부탁하며 7천원어치를 투자해서 과자와 음료수로 뇌물을 먹여 겨우 한고비를 넘겼으며, 잔소리왕인 전무님께 올려야 할 결재 서류는 목숨을 걸고 전무님의 책상위에 집어던지듯이 내팽겨치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렇게해서 결국 5시 30분에 정시 퇴근했건만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약속시간을 지켜준다고 선전했던 지하철이 갑자기 연착이 되어 10여분 동안 움직이지 않은 겁니다. 지하철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시계만 열심히 쳐다보며 얼마나 애가 타던지... 결국 6시 20분이 넘어서야 지하철에서 내린 저는 있는 힘을 다해 극장으로 뛰었고, 숨을 헐떡거리며 극장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 10분이나 늦었지만 다행히 제가 극장에 막 들어선 그 순간 영화가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낯선 여자를 다른 곳으로 내쫓고 숨을 헐떡거리며 자리에 앉은 저는 한동안 숨을 고르며 눈은 열심히 스크린으로 향했습니다. 암튼 이렇게 결혼하고나서 나의 첫 영화 관람기는 어렵게 이루어졌답니다.
이렇게 어렵게 본 [엑스맨 2]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엑스맨 2]에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완벽하게 채워주었습니다.
1. 반영웅들의 영웅담에 대한 기대감.
제가 [엑스맨 2]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는 헐리우드적인 화려한 특수효과를 내세운 영웅담이면서도 전혀 영웅답지않은 반영웅들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엄청난 초능력을 가진 엑스맨들은 영화속의 평범한 인간들의 인식으로는 두려워해야하며 배척해야 하는 돌연변이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영웅의 존재가 불완전하다보니 이 영화엔 절대적인 선이 없으며, 따라서 절대적인 악도 없습니다. 울버린(휴 잭맨)을 비롯한 사비에 박사(패트릭 스튜어트)의 편에 서있는 엑스맨들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의 돌연변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두려움 속에서 일반인들과의 화합을 통해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위해 발버둥치는 가엾은 존재에 불과하며, 사비에 박사와 반대편에 서있는 매그니토(이안 맥컬린) 역시 사비에 박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뿐 절대적인 악은 아닙니다. 돌연변이를 몰살시키려는 스트라이커 장군 역시 절대악이라기 보다는 돌연변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를 가슴속에 내포하고 있는 가엾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는 이 영화는 그렇기에 화려한 특수효과를 동원하여 눈부신 영웅담을 펼쳐놓아도 그러한 영웅담이 전혀 영웅담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헐리우드의 여타 다른 영웅담의 경우 평범한 사람들을 위기에 빠뜨리는 악이 있었으며, 그 악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그러한 것들이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영웅이라 불리우는 엑스맨들은 단지 일반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돌연변이에 불과하고, 악이라고 할 수 있는 매그니토와 스트라이커는 불쌍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 영화에서 일반인들을 죽음의 위기속에 몰아넣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선의 우두머리인 사비에 박사의 능력이며, 엑스맨들의 활약으로 일반인들은 목숨을 구했어도 그들은 엑스맨의 활약에 열광하기는 커녕 그들을 더욱 무서워 할것이며, 배척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스토리 진행 방식은 흑백논리만을 내세운 멍청한 영웅담을 담은 헐리우드의 블럭버스터와는 다르게 영화는 보는내내 각각의 캐릭터에게 동등한 애정을 갖게 만들며,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과 두려움이야말로 진정한 절대악이라는 메세지도 효과적으로 전달해줍니다. (만약 내앞에 엄청난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가 나타난다면 난 과연 그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두려워하며 그들이 죽기를 바랄 것인가?)
2. 화려한 특수효과에 대한 기대감.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한 특수효과로 제 시선을 끌어당겼습니다. 백악관에서 펼쳐지는 나이트롤러의 대통령 암살 시도씬... 극장에 앉아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펼쳐진 이 매력적인 오프닝씬은 [엑스맨 2]에서 펼쳐질 특수효과의 향연이 얼마나 달콤할 것인지에 대한 예고에 불과했습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펼쳐지는 특수효과씬들은 '이 영화가 여느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흑백논리만을 내세운 멍청한 영웅담이라고 할지라도 이 화려한 특수효과 때문에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마저 안겨주었습니다.
이 영화의 특수효과는 엑스맨들의 각자의 특이한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울버린의 강력한 금속갈퀴, 스톰(할리 베리)의 기상현상을 맘대로 조정하는 능력,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미스틱의 놀라운 변신술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가 펼치는 특수효과들은 헐리우드의 능력을 맘껏 뽐내며 제 기대감을 팍팍 채워주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속편이라는 영화의 특성상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함으로써 전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특수효과의 향연을 맘껏 펼쳐보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씬을 멋지게 장식한 나이트룰러의 공간이동씬에서부터 아이스맨의 급속냉각 능력, 그리고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파이로의 능력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가 펼쳐내는 새로운 특수효과들은 기존의 엑스맨 멤버들의 능력과 더불어 한층 강화된 [엑스맨 2]의 위용을 자랑합니다.
저는 이러한 특수효과씬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데쓰스트라이커와 울버린의 대결씬이 가장 맘에 듭니다. 서로 비슷한 금속갈퀴를 가지고 있는 울버린과 데쓰스트라이커의 대결은 제게는 이 영화의 최고 하이라이트였으며, 이 영화에서 가장 잊기어려운 씬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편안한 표정으로 금속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데쓰스트라이커의 최후는 정말 인상적이더군요. (솔직히 영화를 보는내내 데쓰스트라이커라는 캐릭터를 맡은 여배우의 그 무표정하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좋아서 그녀를 주시했었답니다. 알고보니 [스콜피온 킹]에서 섹시한 마법사로 나왔던 켈리 후더군요. [스콜피온 킹]에서는 아슬아슬한 의상으로 절 현혹시키더니, 이 영화에선 왠지 위험해보이는 눈빛만으로 절 매료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여배우 목록에 한명이 추가된 듯한... ^^;)
3. 전편에서부터 이어지는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
선과 악의 구별을 없앤 독특한 캐릭터들과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드는 화려한 특수효과... 거기에 [엑스맨 2]에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스토리 라인을 쫓아가는 즐거움입니다.
다른 블럭버스터 영화엔 특별한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지 영웅이 누구이고, 악당이 누구인지만 안다면 그 영화를 보는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울버린은 잊혀진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야하고, 사비에와 매그니토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두려움은 언제 본격적으로 터질지 모를 일이며, 선과 악이 없는 상태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전혀 모를 일입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며, 어쩌면 가장 큰 단점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전편인 [엑스맨]에 열광하는 저와 같은 관객들에겐 [엑스맨 2]의 복잡한 스토리 라인은 장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엑스맨]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수수께끼가 [엑스맨 2]에선 상당 부분 풀렸으며,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은 이제 앞으로 개봉될 [엑스맨 3]에서 최종적으로 풀어 질겁니다.
영화의 흥행 여부에 따라 즉흥적으로 속편이 제작되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애초의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엑스맨]은 그렇기에 짜임새있게 영화의 스토리를 차근차근 풀어나갑니다. 이건 마치 3부작이 동시에 제작된 [반지의 제왕]과 같은 방식입니다. 물론 [엑스맨]은 3부작이 동시에 제작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엑스맨 3]의 연출을 브라이언 싱어가 맡을지도 아직 미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3부작으로 기획되어 스토리를 풀어나가다 보니 한편의 영화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도저도 아닌 복잡한 영화가 되어버리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으며, 그와 반대로 너무 많은 생략속에 원작과는 달리 너무나도 단순한 영화가 되어버리 실수 역시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짜임새있는 스토리라인은 화려한 특수효과와 독특한 캐릭터와 더불어 그 힘을 강력하게 발휘합니다.
하지만 [엑스맨]을 보지 못했거나 봤어도 그리 기억에 담아두지 못한 관객들에겐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최대의 단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는 [엑스맨]이라는 하나의 영화에서 중간부분에 해당하는 영화이기때문에 전편과 스토리를 잇지 못한다면 전혀 그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 경우도 전편에서 울버린과 진 그레이(팜케 얀센)의 관계를 기억하지 못하는 바람에 사이클롭과의 삼각관계가 어리둥절했습니다. 만약 울버린과 진 그레이의 사랑을 기억해냈다면 [엑스맨 2]에서 멜로적인 요소라는 새로운 발견을 했을지도 몰랐을텐데...
4. [엑스맨 3]에 대한 기대감.
[엑스맨 2]를 보면서 제가 가장 걱정한 부분은 이 영화가 [엑스맨]에서 느꼈던 재미를 채워주지 못함으로써 제게 실망감만 안겨주면 어쩌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엑스맨 2]에 대한 실망감은 [엑스맨 3]에 대한 기대감마저 앗아갈 것이며, 결국 저는 [엑스맨]이라는 매혹적인 영화 전체를 실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엑스맨 2]를 보는 순간 그러한 걱정은 말끔히 없어졌습니다. 저는 이제 [엑스맨 3]를 기대하며 개봉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울버린의 기억은 완벽하게 돌아올 것인지... 그의 기억이 돌연변이들의 운명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돌연변이들의 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사비에와 매그니토는 결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것인지... 인간들은 돌연변이에게 또 어떠한 공격을 할 것이며, 돌연변이들은 그러한 일반인들의 배타적인 인식속에서 삶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지... 더욱 업그레이드 될 것이 분명한 [엑스맨 3]는 이 모든 의문에 답을 해줄 것입니다.
단지 제가 한가지 바라는 것은 브라이언 싱어라는 걸출한 감독이 마지막까지 [엑스맨]을 책임지어 주는 것 뿐입니다. [배트맨]이나 [데어데블]에서 확인했듯이 아무리 뛰어난 원작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할지라도 감독의 능력에 따라 단순한 헐리우드식 블럭버스터가 될 것인지... 아니면 기억에 오래 남을 걸작이 될 것인지... 판가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장담하건데 브라이언 싱어보다 반영웅들의 영웅담을 이렇게 매혹적으로 만들 감독은 없을 겁니다. 제발... 제발...
IP Address : 218.50.1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