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황색 방에서 웅이는 한동안 힘없이 죽어있는 샤이어를 안고 있었다.
“뭐해? 빨리 공룡의 나라로 가야해.”
구피는 웅이에게 재촉했지만 웅이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더 겪어야 하지?”
웅이는 갑자기 이 저주받은 방을 만든 쭈니 할아버지가 미워졌다. 왜 할아버지는 이런 저주받은 곳을 만들어서 문라이트 래빗을, 그리고 샤이어를 희생시켜야만 했던 것일까?
“너무 가슴 아파 하지마. 문라이트 래빗은 애초부터 생명이 없는 인형에 불과했어. 쭈니님의 마법 덕분에 한동안 진짜 토끼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거야. 샤이어도 마찬가지야. 쭈니님의 마법 덕분에 생명을 좀 더 연장할 수 있었던 것뿐이야. 그들은 희생된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야.”
“하지만 너무 불쌍하잖아.”
“빨리 쭈니님을 찾아 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리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어. 빨리 서둘러야해. 괴물 할아버지가 쭈니님을 찾아 다시 숨기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야해.”
“그래. 알았어.”
웅이는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그리고 죽어 있는 샤이어를 잡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할아버지가 잡혀 있는 공룡의 나라를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2.
웅이와 구피가 도착한 곳은 역시 울창한 숲이었다.
“여긴 난쟁이 나라와 곤충의 나라와 똑같잖아.”
“아냐, 틀려. 이 숲은 쥐라기 시대에 번성했던 식물들로 이루어져 있어. 공룡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환경도 공룡시대와 똑같이 재현해 놓은 거야.”
“여기에선 또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지? 만약 공룡들이 우리 편이 아니라면 우린 그 커다란 공룡들을 상대로 싸울 수도 없잖아.”
“맞아. 그게 문제야. 공룡은 이미 멸종했어. 공룡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그들을 죽이러 보내는 것과 똑같아. 어쩌면 공룡들은 그걸 원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러니 여긴 아주 위험해. 어쩌면 마법을 풀려는 우리를 적대시할 수 도 있으니까.”
구피의 설명에 웅이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웅이가 책이나 영화에서 본 공룡들은 몸짓도 크고 힘도 센 아주 무시무시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을 공격한다면 난쟁이들이나, 바다 생물, 그리고 곤충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위협적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겁만 먹고 있을 수는 없잖아. 공룡 나라의 왕을 만나 단판을 지어야겠어. 공룡 나라의 왕이라면 할아버지가 어디에 계신지 알고 있을거야.”
웅이는 용기를 냈다. 웅이는 이미 문라이트 래빗과 샤이어의 희생을 보며 꼭 할아버지를 찾아내서 이 저주받은 마법을 풀겠다고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공룡 나라의 왕을 만날 수 있을거지?”
웅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 멀리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저길 봐.”
구피가 웅이에게 말했다. 구피가 말한 곳에는 여러 마리의 공룡들이 웅이와 구피에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너희가 인간의 아이들인가?”
여러 마리의 공룡 무리 중 한 마리의 초식 공룡이 웅이에게 말을 붙였다. 바로 파라사우룰루푸스였다.
“네, 제가 바로 인간의 아이입니다.”
“우리들은 아주 오랫동안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따라 오거라.”
웅이와 구피는 공룡들을 따라 걸었다. 그들은 굉장히 커다란 웅장한 궁전으로 웅이와 구피를 안내했다.
“우리 공룡들의 왕이신 티라노 왕께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3.
웅이와 구피가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엔 거대한 몸짓을 가졌으나 이젠 늙은 한 마리의 티라노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서 오거라. 난 너희들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단다.”
“티라노 왕이시여! 저희는 이 곳을 만든 제 할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곳 어딘가에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부디 저희가 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전에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야 할 것이다.”
“저희가 아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웅이와 구피는 티라노가 무엇을 물어 볼지 걱정이 되었다. 만약 그들이 모르는 것을 묻거나 대답하기 곤란한 것을 묻는다면 공룡들의 태도가 갑자기 위협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웅이와 구피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우리 공룡의 세계는 어찌되었는가 이다. 난 여기가 진짜 공룡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곳은 우리들이 살던 세계보다 훨씬 먼 미래라는 곳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세계는 어찌 되었는가? 인간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인가?”
웅이와 구피가 우려하던 질문이었다. 어떻게 공룡의 세계가 아주 오래 전에 멸망하였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사실대로 말한다면 공룡들이 어떻게 변할지 웅이와 구피는 알지 못했다.
“저... 그게...”
“거짓말할 생각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을 하거라.”
웅이가 뜸을 들이자 티라노는 웅이가 거짓말을 할 궁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만약 거짓말을 할 경우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라.”
“저... 그게... 사실은 공룡의 세계는 아주 오래 전에 멸망하였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왜 공룡이 멸망했는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급작스럽게 기온이 떨어져서 공룡이 멸망했다는 설도 있고...”
“흠... 역시 그랬군. 사실 아주 오래 전에 오션 프린스라는 자와 난쟁이 왕이라는 자가 나를 찾아 왔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을 알려줬지. 여긴 쭈니라는 영감이 만든 가짜 세계이며, 우리 공룡들은 이미 오래 전에 멸종했다는 사실 말이다.”
웅이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공룡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결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악한 오션 프린스와 난쟁이 왕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쭈니를 공룡의 나라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공룡만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없을 테니, 그들은 결코 웅이와 구피에게 쭈니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우린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중신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 공룡들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안 지금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멸망을 기다리는 꼴이 될 터이니 말이다. 사실 그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이 곳에 머물러 있다면 비록 가짜 세계이지만 우린 영원히 살 수 있겠지.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우린 멸망하고 말거야.”
티라노의 말에 웅이는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결국 쭈니를 찾는 것은 물거품이 된 것이다. 웅이는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었다.
4.
“아직 포기하긴 일러.”
구피가 웅이를 달래 주었다.
“하지만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저 거대한 공룡들을 상대로 싸워 이길 자신이 있어? 게다가 우린 할아버지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렇긴 하지만...”
웅이와 구피가 서로 속삭이며 말을 하자 티라노는 버럭 화를 냈다.
“아직 내 말이 안 끝났다.”
티라노의 거대한 울부짖음에 웅이와 구피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써는 그들에게 아무런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단지 티라노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하지만 난 결정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물론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가짜 세계에 머물러 있는 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난 잘 알고 있다. 비록 우린 멸망에 처할 운명이지만 그럴지라도 진짜 세계에서 그 멸망을 기다릴 것이니라.”
의외의 결정이었다. 티라노의 선언을 듣는 다른 공룡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는지 웅이와 구피는 잘 알 수가 있었다.
“오션 프린스와 난쟁이 왕은 만약 인간이 찾아온다면 그들을 죽이라고 내게 충고했지만 난 너희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쭈니 영감은 이 곳의 지하 감옥에 있다. 그리고 우리들을 고향으로 돌려 보낼 공룡의 알 역시 지하 감옥에 숨겨 놓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쭈니 영감이 공룡의 알을 가지고 이곳으로 올 것이니라.”
티라노의 이야기에 웅이는 놀랐다. 드디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할아버지를 만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5.
몇 분간 긴 침묵이 흘렀다. 멸망의 길을 선택한 공룡들에게 웅이도 구피도 그 어떤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문을 열고 초라한 누더기 옷을 입은 한 노인이 커다란 알을 들고 들어섰다.
“할아버지...”
사실 웅이는 할아버지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찾아 모험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그래, 네가 웅이구나. 내가 난쟁이 왕의 꾐에 속아 갇힐 때 넌 아주 갓난아기였지. 정말 훌륭하게 컸구나.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난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었겠지.”
쭈니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때 티라노가 그들의 재회를 막아섰다.
“어서 우릴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거라. 너희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고향으로 간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정말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십니까? 그곳에 가게 된다면 당신들은 곧 멸망하게 될 텐데요.”
쭈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티라노에게 물었다. 하지만 티라노의 표정은 단호했다. 결국 쭈니는 공룡의 알을 온 힘을 다해 깨뜨렸다. 그리고 웅이와 구피, 그리고 쭈니는 어느 사이 노란 방에 도착해 있었다.
6.
모든 것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공룡의 나라는 사라지고 노란 방에는 산산조각이 난 알 조각만 나뒹굴고 있었다.
“할아버지...”
웅이는 눈물을 흘렸다. 처음엔 호기심을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고, 나중엔 이 저주 받은 방을 만든 할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웅이는 할아버지가 너무 반가웠다.
“그래, 미안하다. 웅이야. 이 모든 것이 내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도대체 이 마법에 걸린 방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래, 그것이 궁금하겠지. 사실 난 어릴 때부터 친구도 하나 없는 외톨이였단다. 고집불통에 괴팍한 나하고 아무도 놀려고 하지 않았지. 그래서 난 항상 혼자 상상을 하며 놀았단다. 커서도 그랬지. 그래서 난 아버지가 물러준 재산으로 거대한 저택을 짓고 그곳에 내 상상의 나라를 건설하기로 결심했단다. 그때 그 남자를 만났단다.”
“그 남자라뇨? 혹시 괴물 할아버지 말씀인가요?”
“그래, 그 남자는 나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줬단다. 그리고 내게 말했지. 자신의 마법으로 내 상상의 나라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처음엔 믿지 않았단다. 그래서 장난삼아 그러라고 했지. 그런데...”
쭈니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요? 그럼 이 저택은 괴물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건가요?”
“아니... 그는 혼자 마법의 방을 만들 수가 없었어. 나의 외로움과 열망이 필요했던 거지. 변명은 하지 않겠다. 난 너무 외로웠고, 정말 내 상상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난 깨달았단다. 좁은 방에 갇힌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단지 내 욕심 때문에 난 자유로운 그들을 가둔 것이란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단다.”
“이미 난쟁이의 나라와 바다의 나라, 곤충의 나라와 공룡의 나라는 원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요정의 나라 차례입니다. 요정의 나라의 왕이신 저희 아버지께서 쭈니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신만이 우릴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구피는 쭈니에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이제 장난끼가 가득한 소녀의 눈에서 위엄스러운 요정의 나라 공주의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요정의 나라와 괴물의 나라뿐이구나. 내가 저지른 일이니 당연히 내가 해결을 해야 겠지. 웅이야. 넌 이제 이 위험한 곳에 오지 않아도 된단다. 네가 알고 있는 괴물 할아버지는 바로 괴물 나라의 왕이란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넌 여기에 있거라. 그것이 안전하단다.”
“아뇨, 전 문라이트 래빗과 샤이어에게 약속했어요. 할아버지를 도와 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릴 것입니다.”
웅이의 표정은 단호했다. 쭈니도 구피도 그러한 웅이를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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