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녹색방의 모험

1.

얼마나 떨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웅이와 구피는 끝없는 밑으로 떨어졌다. 결국 웅이와 구피가 멈춰선 곳은 울창한 숲 속이었다.

 

“아이구, 엉덩이야.”

 

웅이는 엉덩이를 감싸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우린 분명히 2층 방 안에 있었는데...”

“거봐, 내가 숲 속 향기가 난다고 했잖아. 우리 엄마가 내 코는 개코라고 하셨단 말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도대체 여긴 어디야?”

“쉿! 누군가 오고 있어!”

 

하지만 구피가 경고를 주기엔 이미 늦어 버렸다. 아주 작은 사람들이 긴 창을 들고 웅이와 구피 주위를 둘러쌓기 때문이다.

 

“누... 누구세요.”

 

웅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작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너흰 누구냐? 누군데 감히 우리의 영역에 함부로 침입하였느냐?”

“네? 침입이라뇨. 저희는 단지 2층 방에 들어갔을 뿐인데...”

“2층 방이라... 그렇다면 너희는 영감탱이가 보낸 사람들이겠군.”

 

작은 사람들은 웅이와 구피를 둘러싸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아주 숲 속 깊숙이 웅이와 구피는 작은 사람들에게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작은 사람들은 숲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동굴로 웅이와 구피를 끌고 갔다. 그 동굴 안에는 커다란 돌도끼를 들고 있는 작은 사람들 중에서 조금은 큰 사람이 앉아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작은 사람들 중에서 조금 큰 사람은 우렁찬 목소리로 웅이와 구피에게 물었다.

 

“왕이시여. 이들은 저 하늘 위의 영감탱이가 보낸 자들입니다.”

“오호... 그래? 쭈니 영감이 보낸 사람들이란 말이지. 그 영감은 난쟁이의 돌을 우리에게 가져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았지. 너희가 만약 그 영감탱이가 보낸 이들이라면 분명 난쟁이의 돌을 가지고 왔겠군. 안 그런가?”

“네? 난쟁이의 돌이요? 그게 뭔데요?”

“난쟁이의 돌을 모른다... 그렇다면 너희는 그 영감이 보낸 것이 아닌 우리 나라를 침입한 침입자들이군. 여보아라. 이 아이들을 당장 죽이도록 하거라.”

“아니, 아닙니다. 쭈니는 제 할아버지입니다.”

“뭐라고? 네가 쭈니의 손자라고? 그러고 보니 얼굴이 조금 닮은 것 같긴 하군.”

“저희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실종되셨어요. 아... 아마도 난쟁이의 돌을 찾으시다가 실종되신 것 같아요.”

“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거 난감하구나. 난쟁이의 돌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이 저주받은 별장의 소유자인 쭈니 영감뿐인데... 하긴 넌 쭈니 영감의 후손이니 어쩌면 너도 난쟁이의 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2.

웅이와 구피는 난쟁이 왕으로부터 맛난 음식과 음료를 제공받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웅이와 구피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난쟁이 왕은 아주 친절하게 웅이와 구피를 대해주었다.

 

“그런데 난쟁이의 돌이 뭐죠?”

“그래, 너희들은 난쟁이의 돌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난쟁이의 돌은 우리들을 저주에서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란다. 우린 저주에 걸려 이 곳에 갇히게 되었단다. 왜 저주에 걸렸는지, 이 곳이 어디인지 우린 알지도 모른 채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지. 바로 난쟁이의 돌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란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숨겨져 있다고 전해져 내려온단다. 하지만 아무도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단다.”

“태양은 낮에 뜨고 달빛은 밤에만 비출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태양이 있는 곳에 달빛이 있을 수가 없죠.”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구피가 아는 채 나섰다.

 

“흥.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웅이는 아는 채 하는 것을 구피에게 빼앗긴 억울함에 심통이 나고 말았다.

 

“너희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난쟁이의 돌을 찾아주기로 약속을 했단다. 너희 할아버지가 실종되었다면 그 난쟁이의 돌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니, 난쟁이의 돌을 찾는다면 너희 할아버지도 찾을 수가 있겠군.”

“좋아요. 제가 난쟁이의 돌을 찾겠어요.”

 

이번엔 웅이가 먼저 나섰다. 2층에 먼저 올라간 것도, 2층 방에 들어간 것도, 구피가 먼저였고, 웅이는 두려움에 떨며 그 뒤를 쫓아가기만 했었다. 하지만 웅이는 이번이야 말로 구피에게 자신이 얼마나 용감하고 지혜로운지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허허허. 과연 쭈니 영감의 손자답군. 자, 그럼 이제 길을 떠나거라. 난쟁이의 돌을 찾지 못한다면 쭈니 영감이 우리에게 약속했던 대로 너희는 죽게 될 것이니라.”

“네, 죽는다고요?”

“그래, 쭈니 영감은 난쟁이의 돌을 찾아오지 못하면 목숨을 바치겠다고 약속했었지. 이제 그 약속을 너희가 지켜야 할 것이니라.”

3.

“흥. 정말 잘 한 짓이다.”

 

구피는 웅이를 보며 핀잔을 줬다. 하긴 자칫 잘못하면 죽을 처지이니 구피가 웅이에게 핀잔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낸들 우리 할아버지가 난쟁이 왕에게 그런 약속을 한줄 알고 있었겠어? 까짓거 난쟁이의 돌을 찾으면 되는 것 아냐.”

“네가 난쟁이의 돌을 찾는다고? 어떻게 찾아?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곳이 어딘 줄 너 알아?”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난쟁이의 돌이 숨겨져 있다고 했잖아. 뭐 일단 여기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보자. 그러면 누가 알아?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곳이 나타날지.”

“뭐라고? 너 정말 단순하구나? 암튼 남자아이들이란...”

 

구피는 겉으론 투덜거렸지만 지금 당장은 웅이의 말대로 하는 편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가장 높은 곳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웅이와 구피는 숲 속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어느덧 날은 밝아 햇빛이 따갑게 느껴졌지만 웅이와 구피는 그늘에서 쉴 여유조차 없었다.

 

“태양은 저기 있으니 이제 달빛이 있는 곳만 찾으면 되겠군.” 

“어련하시겠어.”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끝에 웅이와 구피는 결국 숲의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엔 울창한 나무들과 풀, 꽃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쩌지? 네 말대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왔어. 그런데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것이 도대체 어디야?”

“그건 나도 모르지.”

 

처음엔 자신만만하던 웅이도 막상 가장 높은 곳에 올라도 아무 것도 없자 맥이 풀리고 말았다.

 

“어휴 힘들어. 난 이제 좀 쉴래.”

 

웅이는 그만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저기 봐... 뭔가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어.”

“어디? 어디?”

 

구피가 뭔가를 발견했고, 자리에서 주저앉았던 웅이도 한 가닥 희망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저건 토끼잖아.”

“우리 저 토끼를 쫓아가 보자.”

“지금 한가하게 토끼 사냥할 때가 아니거든.”

 

하지만 구피는 이미 토끼를 쫓아가 가고 있었다.

 

“암튼 자기 맘대로 라니까.”

 

웅이도 어쩔 수 없이 토끼를 뒤를 쫓았다.

4.

토끼는 정말 빨랐다. 웅이와 구피는 어느새 난쟁이의 돌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토끼를 쫓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저기 있다. 아냐, 저기로 가잖아.”

 

어느 사이 웅이와 구피도 신이 나서 토끼를 궁지에 몰고 넣고 있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토끼는 웅이와 구피를 쳐다보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저를 놓아주세요.” 

“뭐야. 토끼가 말을 하잖아.”

“당신들은 혹시 난쟁이들인가요?”

“아니, 우린 난쟁이가 아냐.”

“그렇다면 사람인가요? 혹시 쭈니님을 아시나요?”

“어! 너도 우리 할아버지를 알고 있어?”

“당신은 쭈니님의 후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라니 무슨 소리야?”

“전 문라이트 래빗이라고 합니다.”

“문라이트 래빗? 그럼 달빛 토끼?”

 

이번에도 구피가 먼저 아는 채를 했다.

 

“치!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암튼 여자아이들은 아는 채 하는데 선수라니까.”

“달빛 토끼라면... 혹시 너 난쟁이의 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니? 난쟁이들의 전설에 의하면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하던데. 네 이름이 달빛 토끼이니 넌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 구피가 먼저 아는 채 했다. 웅이는 자꾸 아는 채 하는 구피가 짜증나 한마디 하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웅이가 한마디 하기 전에 문라이트 래빗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제가 바로 난쟁이의 돌입니다.”

“뭐라고 네가 난쟁이의 돌이라고? 넌 토끼잖아.”

 

구피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던 웅이는 문라이트 래빗의 한마디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 두 눈은 난쟁이의 돌로 만들어 졌답니다. 전 태양이 나오는 낮에 산꼭대기에서만 살 수 있답니다. 제가 바로 태양과 달빛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난쟁이의 돌이랍니다.  쭈니님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죠.”

“그럼 문제는 해결되었군. 널 난쟁이의 왕에게 데려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거잖아.”

“하지만 난쟁이의 왕은 난쟁이의 돌을 찾는 것은 원치 않아요. 그래서 쭈니님이 절 찾았을 때에도 쭈니님을 잡아 가둬 버리셨죠.”

“뭐? 난쟁이 왕이 우리 할아버지를 가두었다고?”

“네, 사실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위험해요. 난쟁이 왕이 벌써 군사를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어서 도망쳐야 해요.”

 

하지만 웅이도, 구피도, 이미 늦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미 난쟁이 병사들이 그들을 둘러쌓기 때문이다.

5.

“정말 너무하잖아요. 우린 약속대로 난쟁이의 돌을 가져왔을 뿐이라고요?”

“난쟁이의 돌이라고? 그게 어디 있는데? 우리가 속을 줄 알고. 저건 그냥 토끼뿐이잖아. 지난번 쭈니 영감도 그딴 헛소리를 하더니, 누가 그 후예 아니랄까봐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웅이와 구피가 아무리 발버둥을 쳤지만 난쟁이 왕은 음흉한 웃음만을 지을 뿐이었다.

 

“제 두 눈을 뽑으세요.”

 

그때 문라이트 래빗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10년 전에는 제 두 눈을 뽑는 것이 두려워 제가 난쟁이 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했어요. 그것 때문에 쭈니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갇힌 것입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 쭈니님을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쭈니님은 절 원망하지 않으셨어요. 제게 괜찮다고... 나라도 두 눈이 뽑히는 것은 무서웠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절 위로하셨습니다. 전 두려움에 떨고 죄책감을 느끼며 난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이제 제가 그때 하지 못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제 두 눈을 뽑으세요. 제 눈이 바로 난쟁이의 돌이랍니다.”

“하지만 어떻게...”

 

구피는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웅이 역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흥.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여보아라. 어서 저 아이들과 거짓말하는 토끼의 목을 당장 베어 버려라.”

 

난쟁이 왕의 얼굴엔 여유는 온데간데없고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왕이시여. 저 아이들과 토끼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습니까? 토끼의 눈을 뽑아 그것이 난쟁이의 돌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한 다음에 난쟁이의 돌이 아니라면 아이들과 토끼를 죽여도 늦지 않습니다.”

 

난쟁이 신하들의 말에 난쟁이 왕은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이미 난쟁이 신하들은 문라이트 래빗의 두 눈을 뽑기 시작했다. 너무 끔찍한 광경에 웅이와 구피는 두 눈을 감고 말았다. 결국 문라이트 래빗의 두 눈은 뽑히고 말았다. 문라이트 래빗의 두 눈을 뽑아 든 난쟁이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봐봐... 이건 정말 난쟁이의 돌이야. 10년 전 쭈니 영감이 한 말이 맞았어.”

 

두 눈이 뽑힌 채 버려진 문라이트 래빗을 보며 웅이는 분노를 느꼈다. 웅이는 난쟁이 왕을 보며 소리쳤다.

 

“당신은 신하들을 속이고 있었어. 난쟁이의 돌이 문라이트 래빗의 두 눈이라는 사실을 당신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그 동안 모두를 속였던 거야.”

 

웅이의 말에 난쟁이들은 웅성거렸다.

 

“그래, 사실이다. 우리들의 나라는 인간들의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지고 있지. 굳이 그런 집에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여긴 평화롭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 안 그런가?”

 

난쟁이 왕의 말에 모든 난쟁이들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지만 아주 조용하게 누군가 이야기했다.

 

“그래도 집에 가고 싶어요.”

 

그러자 모든 난쟁이들도 외쳤다.

 

“그래도 우린 집에 가겠습니다.”

 

난쟁이 병사들은 그동안 자신을 속인 난쟁이 왕을 포위했다. 난쟁이 왕 역시 더 이상의 반항 없이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억울하게 당신에게 속아 갇힌 우리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죠?”

“쭈니 영감은... 물의 나라에 가두었다. 크크크...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군.”

 

난쟁이 왕의 한마디와 함께 웅이와 구피는 두 몸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녹색 방이었다.

 

“이건... 꿈이 아니겠지?”

 

웅이가 물었다.

 

“저길 봐.”

 

구피는 방 한 구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엔 두 눈이 없는 초라한 토끼 인형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문라이트 래빗이야. 불쌍하게도 두 눈이 뽑혔어.”

“고마워. 문라이트 래빗. 너의 용기 덕분에 우린 살아남을 수 있었어. 이제 난 할아버지를 찾을 거야. 난쟁이 왕이 할아버지는 물의 나라에 가두었다고 했어. 그 물의 나라 역시 2층의 수많은 방 중 하나일거야.”

 

녹색 방의 모험으로 웅이는 더 이상 겁쟁이 소년이 아닌 용감한 소년이 되어 있었다.

 

 

 

 

 

[예고] 판타지 동화 '웅이의 대모험 : 마법의 방'을 연재하겠습니다.

제1장 괴물할아버지의 비밀

제3장 오션 프린스의 전쟁 

제4장 샤이어의 눈물

제5장 티라노의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