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괴물 할아버지의 비밀

1.

한적한 길을 달리고 있는 아빠의 차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고 있는 웅이의 마음은 울적하기만 했다. 웅이가 살던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울창한 나무들과 들풀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울적한 웅이의 마음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웅이야. 어떠냐? 공기도 좋고, 여기에선 맘껏 뛰어 놀아도 위험하지 않아. 어때, 좋지?”

“치! 좋긴 뭐가 좋아? 여긴 놀이터도 없고, 햄버거 가게도 없고, 게임방도 없고, 친구들도 없잖아!” 

“아냐, 옆집에 구피라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사니 그 얘와 친구하면 되고, 놀이터도, 게임방도 없지만 여기에선 그 보다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어.”

“여자아이라고? 도대체 여자아이와 뭘 하며 놀 수 있겠어? 소꿉장난? 인형놀이? 여자아이하고는 축구도 할 수 없고, 전쟁놀이도 할 수 없잖아.”

 

웅이의 아빠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웅이의 기분을 풀어주려 했지만 오히려 울적한 웅이의 기분을 더욱 상하게 할 뿐이었다. 웅이의 기분이 도저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웅이의 아빠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여름방학을 10년 전 실종된 웅이 할아버지의 시골 별장에서 맞이하게 된 웅이는 속이 많이 상했다. 친구들은 바다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놀이공원에서 신나는 놀이기구도 타며 보내는데, 웅이는 아빠의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 탓에 따분한 시골 별장에서 여름방학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웅이 아빠의 차가 멈춰 섰다.

 

“자! 다 왔다. 어서 내리 거라.”

 

웅이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차에서 내려 시골 별장을 쳐다보았다. 시골 별장은 제법 컸다. 웅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별장에서 실종된 할아버지 탓에 웅이네 가족들은 이 별장에 가는 것을 꺼려했지만 아무도 찾지 않은 이 별장을 10년 동안 정성껏 가꾸고 지켜온 별장지기 할아버지 덕분에 별장은 깔끔했고, 정리도 잘 되어 있었다.

 

“웅이야. 아빠는 오늘 저녁에 출장을 가야해서 지금 서울로 올라가 봐야해. 3일 후면 엄마가 여기로 올 테니 그때까지 별장지기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있어야해. 알았지?”

 

여름방학을 따분한 시골별장에서 보내야 해는 것도 억울한데 아빠, 엄마도 없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별장지기 할아버지와 며칠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하니 웅이는 너무나 화가 났다.

 

“걱정 말고 출장 잘 갔다 오게나. 웅이는 내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

“감사합니다. 아저씨. 잘 부탁드릴께요.”

 

웅이는 별장지기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별장지기 할아버지는 웅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웅이는 왠지 별장지기 할아버지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이야, 이 분은 우리 가족과도 같은 분이셔.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시고, 아빠에겐 삼촌 같은 분이니까 별장지기 할아버지의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해. 알았지?”

 

웅이는 자기를 별장에 내버려두고 떠나려는 아빠에게 화가 나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웅이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손목시계만 연신 쳐다보더니 웅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바쁘게 차를 향해 별장을 나가 버렸다.

아빠가 떠나자 별장엔 웅이와 별장지기 할아버지만 남게 되었다. 별장지기 할아버지는 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긴 침묵 끝에 말을 하였다.

 

“꼬마야. 이 별장에는 규칙이 있단다. 네가 어디에서건 자유롭게 놀아도 되지만 절대 2층에 가선 안 된다. 절대로. 그것만 잘 지켜준다면 너와 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2층 따위에는 안가요. 그딴 곳에 누가 관심이나 가질 줄 알고요. 치! 벌써부터 심심하네.”

“허허허 녀석. 잔뜩 삐쳐 있구나. 그럼 난 이제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 네 짐은 네가 챙기도록 해라. 네 방은 오른쪽 끝 방이란다.”

 

별장지기 할아버지는 부엌으로 사라졌고, 웅이는 무거운 짐을 혼자 질질 끌고 1층 오른쪽 끝 방으로 갔다. 언제나 엄마, 아빠의 보살핌을 받던 웅이는 두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2.

그날 저녁은 웅이에겐 지옥과도 같았다. 별장지기 할아버지가 해준 맛없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컴퓨터는커녕 TV조차 없는 방에 처박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 웅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치! 이게 뭐야. 여름방학에 신나게 놀려고 했는데...”

 

웅이는 친구들과 세워 뒀던 신나는 계획들을 생각하며 한숨만 쉬었다. 친구들은 지금쯤 신나게 놀고 있을 텐데 자신만 이렇게 아무 할 일도 없이 따분하게 누워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자꾸만 짜증이 났다.

그때 ‘똑똑’하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웅이는 그렇지 않아도 짜증이 나는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 짜증이 폭발하고 말았다.

 

“안녕, 창문 좀 열어줄래?”

 

아빠에게 이웃에 자신과 동갑인 구피라는 여자아이가 산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웅이는 창문을 살짝 열어줬다.

 

“반갑다. 난 저기 건너편 집에 사는 구피야.”

“알아.”

 

웅이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구피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웅이는 구피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아서 더 기분이 상했다.

 

“근데 여긴 왜 왔니?”

“왜 오긴. 괴물 할아버지 집에 남자아이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누군가 궁금해서 왔지.”

“뭐? 괴물 할아버지? 그게 누군데?”

“너희 집 별장지기 할아버지 말이야. 그 할아버지, 동네에서 괴물 할아버지라고 불러.”

“왜? 수염이 덥수룩해서?”

“어머, 너 정말 모르는 구나? 내가 괴물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 테니 창문 좀 활짝 열어줄래?”

 

웅이는 잠시 주춤했지만 여자아이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다고 해도 자신을 해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창문을 활짝 열어줬다. 그러자 구피는 창문을 훌쩍 넘어 웅이의 방으로 들어왔다.

 

“너, 정말 괴물 할아버지 이야기 몰라?”

“그런 거 몰라. 나 오늘 서울에서 왔단 말이야.”

“흠. 그러면 모를 수도 있겠네. 만약 괴물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무서워서 엉엉 울게 될 걸.”

“흥. 내가 겁쟁이인줄 알아? 난 아무 것도 무서운 것이 없어.”

“정말? 그러면 정말 네가 용기 있는 남자인지 시험해 봐야겠는걸.”

“뭐야, 뜸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사실 이 집의 2층엔 괴물이 살고 있대. 괴물 할아버지는 매일 밤에 그 괴물들한테 어린아이를 잡아다 준대. 그러면 그 괴물이 어린아이를 글쎄...”

“그만 둬.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따위는...”

“너, 겁나지? 아마, 오늘은 괴물 할아버지가 널 2층 괴물에게 데려갈지도 몰라.”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 너 그러면 2층에 올라 가 본적 있어?

“2층? 할아버지가 2층엔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거봐. 2층엔 괴물이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래서 말인데... 오늘 밤에 괴물 할아버지가 잠들면 나하고 함께 2층 방에 올라가 볼래?”

 

구피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웅이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 무섭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없는 이 낯선 곳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괴물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며칠간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모자라 괴물 할아버지가 절대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던 2층에 올라가자니...

 

“왜, 겁나니?”

 

구피는 마치 그러한 웅이의 마음을 꿰뚫어 봤는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한 구피의 미소에 웅이는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 것도 무서운 것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자기가 괴물 할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들킨 느낌이었다.

 

“좋아. 뭐 까짓 거 2층에 가지 뭐.”

3.

구피는 괴물 할아버지가 잠든 늦은 밤에 오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구피가 돌아가고 나자 웅이는 불안한 마음에 침대에 잠자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서우니 2층에 가지 않겠다고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을 웅이도 잘 알고 있었다.

 

“뭐, 어때. 그냥 2층에 올라가는 것뿐이잖아. 2층에 괴물이 살리도 없고, 괴물이 산다고 해도 2층만 잠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인데 뭐.”

 

웅이는 자신을 애써 위로하며 그렇게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되었다. 피곤함도 잊은 채 웅이는 구피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구피가 자신과 했던 약속은 까맣게 잊고 잠이 들었거나, 아니면 밤늦게 몰래 나가다가 부모님에게 들켜 혼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웅이의 바람과는 달리 웅이의 방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확인해 봤는데 괴물 할아버지의 방 불빛이 1시간 전에 꺼졌어. 아마 지금쯤 깊은 잠에 빠지셨을걸.”

“너, 정말 2층에 올라갈 거야?”

“당연하지. 왜 넌 무섭니?”

“무섭긴... 뭐가 무서워. 그래, 올라가자. 하지만 올라가봤자 거기엔 괴물도, 뭐도 아무 것도 없을걸.”

“그건 올라가보면 알겠지. 자, 가자.”

 

구피는 앞장서서 1층 복도를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갔다. 웅이도 구피를 따라 조심스럽게 1층 복도를 걸었다. 괴물 할아버지의 방을 지날 때 웅이는 너무 긴장되어서 혹시 괴물 할아버지가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에 깨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괴물 할아버지의 코고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2층 계단 앞에 선 웅이와 구피.

 

“자, 내가 먼저 올라갈 테니 넌 뒤 쫓아와.”

 

구피는 앞장을 섰다. 사실 웅이는 ‘내가 앞장 설 테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그러한 소리는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2층층계를 모두 올라선 웅이와 구피. 2층은 1층과 다를 것이 없었다. 긴 복도가 늘어서 있었고, 복도 양 옆으로 방문들만 길게 늘어서 있었다.

 

“거봐, 2층엔 아무 것도 없잖아. 빨리 내려가자.”

“무슨 소리야. 저 방에 뭐가 있는지 안 궁금해?”

“뭐 방 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지만 방문은 잠겨 있을 거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고.”

 

웅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피는 성큼성큼 오른쪽 첫 번째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겁도 없이 방문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려고 했다.

 

“너 뭐하는 짓이야.”

 

웅이는 구피의 돌발 행동에 놀랐지만 달려가 구피를 말리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방 안에서 괴물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방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휴! 거봐. 방문이 잠겨있을 거라 했잖아. 우리 이제 내려가자.”

 

하지만 구피는 주머니에서 열쇠더미를 꺼냈다.

 

“내가 방 열쇠도 없이 2층에 가보자고 한줄 알아?”

“너... 그거 어디서 난거야?”
“몇 년 전 숲 속에서 주웠어. 처음엔 이게 뭔지 몰랐지만 최근에 괴물 할아버지 집의 2층 열쇠라는 것을 알았지. 하지만 집엔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었어. 괴물 할아버지는 집안 단속을 아주 철저하게 했거든. 그래서 난 이 집에 괴물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린 거야.”

“뭐야? 너...”

 

하지만 웅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피는 방문을 열고 말았다.

 

“뭐해? 어서 들어와. 정말 네 말대로 괴물은 없어.”

 

웅이는 도저히 방에 들어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도망갈 수도 없었다. 결국 웅이는 용기를 내서 방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온통 녹색 페인트로 칠해진 네모난 텅 빈 방에 불과했다.

 

“뭐야, 정말 아무 것도 없잖아. 2층에 괴물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 그만 나가자.”

 

하지만 구피는 방 한가운데에 서서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니?”

“이상하다니, 뭐가?”

“뭐랄까... 향긋한 숲 속의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지만 웅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웅이와 구피는 갑자기 공중에 붕 떴다. 아니 사실은 공중에 붕 뜬 것이 아닌 밑으로 추락한 것이다. 아주 끝도 없이 밑으로, 밑으로...

 

 

 

[예고] 판타지 동화 '웅이의 대모험 : 마법의 방'을 연재하겠습니다.

제2장 녹색방의 모험

제3장 오션 프린스의 전쟁 

제4장 샤이어의 눈물

제5장 티라노의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