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0년 아짧평

[허트 로커] - 대규모 전투씬이 없어서 마음에 들었던...

쭈니-1 2010. 9. 4. 14:39

 

 

감독 : 캐서린 비글로우

주연 : 제레미 레너, 안소니 마키

 

우울한 금요일 저녁

 

요즘 이상하게 저는 우울합니다. 회사에서도 창밖에 내리는 비만 우두커니 쳐다볼 때가 많고 일도 손에 잘 안잡힙니다. 무언가를 하려고해도 의욕이 없고 온 몸에 짜증만이 가득합니다. 아마도 2주 간이나 극장에 가지 못해서 금단현상(?)이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극장으로 달려갈 수도 없습니다. 극장에서 딱히 보고 싶은 영화도 없고, '이 영화 한 번 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은 3D로만 상영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싹 가시게 하니 말입니다. 다음주 [해결사], [마루 밑 아리에티]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상태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구피마저 야근으로 혼자 보내야 했던 금요일 저녁. 그냥 축 늘어진 기분으로 쇼파 위를 뒹굴거리다가 극장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영화 한 편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끼고 아껴뒀던 [허트 로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라크에 와 있는 것만 같은 생생함

 

[허트 로커]는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전 세계적으로 흥행 신기록을 세운 [아바타]를 물리치고 주요 상을 휩쓴 영화입니다. 특히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전 부인인 캐서린 비글로우가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여성 감독으로는 드물게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액션 영화를 주로 연출한 감독입니다. [블루 스틸], [폭풍 속으로], [스트레인지 데이즈], [K-19] 등이 그녀가 만든 영화들입니다.

[허트 로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 대신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려 퍼지는 긴장감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마치 영화를 보는 제가 실제 이라크 현장에 와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생생한 화면을 자랑합니다.

 

대규모 전투씬이 없어서...

 

사실 전 전쟁 영화를 싫어합니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범죄를 소재로한 전쟁 영화에서 영웅이 탄생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으로 인하여 섣부르게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도 짜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허트 로커] 역시 그러합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미군 폭발물 제거반의 시선으로 그려진 영화이기에 적군인 이라크 저항군은 자살 폭발 테러를 일삼는 테러리스트로 그려질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쪽으로 치우친 편향된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다른 전쟁 영화와는 달리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규모 전투씬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거 좋아할만한 전쟁 영화. 

 

전쟁 영화에서 대규모 전투씬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중요한 볼거리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겐 아닙니다. 전쟁 영화의 영웅은 대부분 대규모 전투씬에서 적군을 얼마나 많이 죽이느냐로 인하여 탄생하는데 같은 인간이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상대방을 무차별 죽이는 장면에 결코 환호할 수 없기에 전 대규모 전투씬이 있는 전쟁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허트 로커]는 대규모 전투씬이 없으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고 적군을 얼마나 많이 죽여 영웅이 되느냐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목숨을 걸고 폭발물을 제거해야하는 이들의 심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제게는 마음에 들었던 전쟁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