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0년 아짧평

[맨 프럼 어스] - 열린 마음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쭈니-1 2010. 9. 28. 08:47

 

 

감독 : 리처드 쉔커만

주연 : 데이빗 리 스미스, 리처드 리엘

 

 

10년 전 선교사와의 대화

 

일단 전 무신론자임을 밝힙니다. 10년 전 길거리에서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뭐 딱히 할 일도 없고해서 그 선교사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당연하겠지만 그 선교사는 제게 예수를 믿으라며 선교를 하려고 했고, 전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예수가 분명 존재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물이 그렇게 신격화되어 널리 퍼졌을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남들보다 분명 뛰어났을 예수라는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로 신격화된데에는 예수의 의지보다는 후세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지어낸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렇게 지어낸 이야기는 성경이라는 신화집에 담아졌고요. 

제 이야기를 들은 선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수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며 저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자리를 뜨더군요. 전 제 생각이 옳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예수는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을 수도 있고, 제 생각처럼 그저 뛰어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아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결코 인간의 능력으로는 풀 수가 없는 수수께끼겠죠. 재미있게도 [맨 프럼 어스]는 바로 그러한 수수께끼를 교묘하게 건드리고 있습니다.

 

14,000년을 산 남자

 

[맨 프럼 어스]는 14,000년을 살았다는 존(데이빗 리 스미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알아채기 전에 10년마다 사는 곳을 바꿔야 했는데... 그런 그를 의심한 동료 교수들이 그의 집에 모여 종신 교수직을 거부하고 서둘러 떠나는 이유는 캐물으며 영화는 시작합니다.

처음 존의 말에 동료 교수들은 단순한 소설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하며 흥미진진해합니다. 하지만 존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은 그가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그의 이야기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존의 이야기는 대부분 지루했습니다. 동료 교수들의 이야기대로 그의 말이 사실인지 밝힐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거짓인지 밝힐 수도 없는 문제이니까요. 그러나 예수에 대한 부분만큼은 10년 전 선교사와 나누었던 대화가 문뜩 생각나서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내가 예수다.

 

존은 말합니다. 우연히 인도에 갔다가 부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로마 제국의 폭력이 극에 달하던 서양에 전달하려 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자신을 신격화하고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성경이라는 책에 담아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신학교수는 신격모독이라며 발끈합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던 수 많은 기독교 인들 역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신론자인 제 입장에서 성경의 이야기나, 존의 이야기나 솔직히 말도 안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고,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사과를 먹고 그 죄로 아담과 이브가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와 한 남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하여 14,000년을 살았다는 이야기 중 오히려 신빙성이 있는 것은 14,000년을 살았다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차피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아닌만큼 그리 심각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무신론자인 제 입장에서는 존의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진진했습니다.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야기로 끝난다.

 

하지만 이 영화에 존의 이야기말고 다른 영화적인 재미를 기대한 분이 계시다면 솔직히 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맨 프럼 어스]는 철저하게 존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존의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이야기 중간 중간 존의 이야기가 영화의 화면으로 제공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영화는 결코 그러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영화에서 리차드 링클래이터가 감독하고 에단 호크, 우마 서먼이 주연을 맡았던 [테잎]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테잎]의 아짧평은 바로 여기로...  http://blog.daum.net/jjooni73/1481) 등장인물들이 작은 모텔방에 모여 나누는 대화만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대화만으로도 영화가 얼마나 흥미진진해 질 수가 있는지 알려주는 매우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맨 프럼 어스] 역시 마찬가지인데... 평소 남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에 서투른 분이라면 [맨 프럼 어스]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영화일 것이지만, 열린 마음으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능한 분이라면 [맨 프럼 어스]는 기존의 영화와는 차별되는 신선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