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0년 아짧평

[골든 슬럼버] - 세상에서 가장 낙천적인 스릴러

쭈니-1 2010. 8. 30. 10:11

 

 

감독 : 나카무라 요시히로

주연 : 사카이 마사토, 다케우치 유코

 

 

일본 스릴러의 감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제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 중의 하나가 바로 스릴러입니다. 감독이 꼭꼭 숨겨놓은 단서들을 하나둘씩 찾아가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그 짜릿함이 전 너무나 좋습니다. 예전에는 스릴러하면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였는데 요즘은 우리나라 영화는 물론, 일본 스릴러까지 개봉하여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다양한 스릴러 영화를 즐길 수가 있어 행복합니다.

그런데 같은 스릴러 영화라고 할지라도 우리나라의 스릴러와 일본 스릴러는 그 개성이 뚜렷하게 나눠집니다. 우리나라의 스릴러 영화는 최근들어서 점점 잔혹함에 매몰되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일본 스릴러는 스릴러 영화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는 관객의 감성에 호소합니다. 제가 본 일본 스릴러인 [용의자 X의 헌신], [제로 포커스]가 대표적이며, [골든 슬럼버]는 아예 스릴러의 쾌감보다는 감동에 포커스를 맞춘 느낌입니다.

 

총리 암살자로 몰린 남자.

 

[골든 슬럼버]는 어느 평범한 남자가 총리 암살자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담은 영화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를 자주 봤다면 '뭐야, 이 흔해 빠진 설정은...'이라며 투덜거릴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 영화의 설정은 정말 흔해 빠졌습니다. 일일히 찾아보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써먹는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할리우드 스릴러의 방식대로라면 총리 암살자로 몰린 이 남자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이 거대한 비밀 뒤에 숨겨진 진범을 밝힘과 동시에 스스로 영웅이 되는 일만 남은 셈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시작은 할리우드 스릴러의 전형성에 기대어 있지만 그 전개는 일본 스릴러 특유의 감성에 매달려 있습니다.

 

애초에 진범에는 관심이 없는 독특한 스릴러

 

평범한 택배기사 아오야기(사카이 마사토)는 총리 암살자로 몰립니다. 누군가 아주 치밀하게 그를 함정에 몰아 넣은 것입니다. 그는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것이 잘 될리가 없습니다. 그를 함정에 몰아 넣은 것은 아오야기가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조직이며, 증거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조작되어 아오야기로써는 뭘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때부터 이 영화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오야기의 인간적인 관계입니다. 할리우드 스릴러의 주인공과 비교해서 할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평범 그 자체인 아오야기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문제는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은 물론이고, 연쇄살인마에서부터 안면이라고는 전혀 없던 사람들까지 모두 발 벗고 그를 도와줍니다. 아오야기는 말합니다. 자신의 최대 무기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낙천적인 스릴러

 

그렇기에 이 영화는 낙천적입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무기로 자신의 위기를 헤쳐 나가는 이 평범한 택배 기사의 모험은 스릴러 영화의 최대 미덕인 스릴보다는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에 모든 것을 할애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진범 따위는 관심이 없는 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그래, 그래도 아오야기는 행복할까야.'라고 느끼는 것 역시 그러한 낙천적인 스릴러의 힘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악마를 보았다]를 보며 전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천적을 모두 없앤 사람이라는 동물의 만행에 맞서 神은 새로운 천적을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만이 사람의 천적인 셈이죠.

그런 면에서 [골든 슬럼버]는 [악마를 보았다]와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고 외쳤던 [악마를 보았다]와는 반대로 [골든 슬럼버]는 그래도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라고 외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제가 기대했던 스릴러는 아니지만 그 낙천적인 면에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꽤 만족스러운 스릴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