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 : 실베스타 스탤론, 제이슨 스테이섬, 이연걸, 돌프 룬드그렌, 에릭 로버츠
개봉 : 2010년 8월 19일
관람 : 2010년 8월 19일
등급 : 18세 이상
드디어 내 차로 극장에 갔다.
저와 구피가 주로 영화를 보러 가는 시간은 평일 오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입니다. 6시 30분 정도에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면 7시에서 7시 30분. 8시 30분까지는 웅이와 놀아주고 9시 정도에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그때서야 영화볼 시간이 나기 때문이죠.
늦은 시간에 영화를 보다보니 항상 집에 돌아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거의 12시가 넘는 시간인데... 버스는 거의 막차 시간이고, 지하철을 타자니 집에서 멀고... 그래서 결국 택시를 이용합니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비는 거의 5천원 정도입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영화를 싸게 보겠다고 할인 카드 동원하고, 극장에서 팝콘은 물론 음료수도 안 사먹으며 절약한 돈이 결국 고스란히 택시비로 나가는 셈입니다.
뚜벅이 시절... 영화가 끝나면 엘리베이터를 1층이 아닌 지하층을 누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지하층을 누른다는 것은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았다는 것을 뜻하기에 영화를 보고 비싼 택시를 이용하지 않고 편안히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한달 전 드디어 차를 샀습니다. 무려 38년 동안 이어지던 제 뚜벅이 생활에 종말을 고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은 초보 운전자이기에 출퇴근 이후에는 차를 몰고 어딜 가는 것은 삼가했지만 몇 주가 지나고나니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슬슬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 밤에 영화를 보러 갈 때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먼저 제가 자주 가는 목동 메가박스 지하 주차장의 위치를 확인하고, 지하 주차장이 넓어 초보 운전자가 차를 주차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드디어 제 차를 몰고 극장으로 가는 길. 아직은 네비게이션을 잘 볼 줄 몰라 길을 헤매곤 하지만 한번만 길을 잘 못 들어선 끝에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고(1번만 헤맸으면 제 입장에선 상당히 잘 한겁니다.), 편한 지하 2층 주차장에 주차하라는 구피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지하 2층 주차장은 여성전용 주차장이니 안된다는 굳은 신념으로 지하 4층까지 내려가서 겨우겨우 주차를 하였습니다.
주차장을 내려가는 통로가 좁아 정말 거북이 걸음을 하며 겨우 겨우 내려갔지만 앞으로 저도 영화가 끝나면 1층이 아닌 지하층을 누를 수 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액션 매니아라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캐스팅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제 차를 가지고 극장에 간 역사적인 날, 저와 구피가 선택한 영화는 바로 [익스펜더블]입니다. 애초에 [익스펜더블]에 전혀 관심이 없는 구피였지만 제가 [익스펜더블]이 지난 주 미국에서 압도적인 스코어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아놀드 슈왈제네거, 브루스 월리스가 나오는 [A 특공대]같은 영화라고 꼬드겼습니다.
사실 전 알고 있었습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브루스 월리스는 우정 출연이기에 출연 분량이 거의 없을 것이며, [A 특공대]와 비교를 하긴 했지만 1억1천만 달러가 투입된 [A 특공대]에 비해 8천만 달러라는 제작비가 들어간 [익스펜더블]은 조금은 투박한 액션영화라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브루스 월리스가 단 한 장면에서만 우정 출연하고, [A 특공대]에 비해 투박한 액션영화라고 할지라도 [익스펜더블]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바로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화려한 캐스팅 덕분이죠. 실베스타 스탤론과 제이슨 스테이섬이라는 신, 구 액션 스타와 동양의 대표적 액션 스타인 이연걸, B급 액션 스타인 돌프 룬드그렌, 악역 전문 액션스타인 에릭 로버츠, 게다가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미키 루크까지. 과연 이 완벽한 캐스팅에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는 액션영화 매니아가 있을까요?
분명 이 영화의 장점은 바로 이렇게 화려한 캐스팅에 있습니다. 실베스타 스탤론과 제이슨 스테이섬의 콤비 플레이는 의외로 잘 어울렸고, 거구의 서양 액션 스타에 비해 왜소한 이연걸 역시 어색하지 않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바니(실베스타 스탤론)가 의문의 사나이인 처치(브루스 월리스)의 의뢰를 받는 장면인데... 바니와 처치가 만나면서 흥정을 하는 도중 교회 문이 열리고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온갖 폼을 다 잡으며 들어옵니다.
세상에... 실베스타 스탤론과 브루스 윌리스를 한 화면에서 보는 것도 꿈만 같은데 거기에 아놀드 슈왈제네거까지 가세를 하다니... 80, 90년대 그들의 액션영화를 보며 열광했던 저로써는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물론 에전의 '터미네이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푸근한 아저씨 몸매를 자랑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모습은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실베스타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익스펜더블] 중에서 제 개인적으로는 가장 최고의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캐릭터는 빈약했고, 유머는 썰렁했다.
하지만 과연 배우들을 볼려고 비싼 극장비를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몇이나 있을까요? 영화에서 배우들은 분명 중요한 요소이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익스펜더블]은 안타깝게도 제게 한없이 아쉬운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는 캐릭터라는 것이 아예 없습니다. 제가 [익스펜더블]을 보기 전에 [A 특공대]와 비교를 했었는데 [익스펜더블]과 [A 특공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캐릭터의 유무였습니다.
[A 특공대]는 아무 생각없이 때리고 부수는 영화같지만 특공 대원의 캐릭터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익스펜더블]에는 그러한 캐릭터 자체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바니와 그의 대원들이 소말리아 해적들을 단번에 해치웁니다. 그리곤 갑자기 거너(돌프 룬드그렌)가 축출되고 스토리 라인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진행됩니다.
워낙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지니고 있기에 솔직히 캐릭터 설명이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단순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영화라고 할지라도 캐릭터가 있는 영화와 없는 영화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그러한 차이는 영화의 후반부에 나타나는데... 바니라는 캐릭터가 약하다보니 그가 갑자기 아무 이득도 없이 산드라를 구하기 위해서 빌레나로 향하는 장면은 그냥 헛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영화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유머 코드도 썰렁하기만 했는데 자꾸만 자신의 보수를 올려달라는 양(이연걸)의 투덜거림은 웃기기 보다는 찌질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보니 거구의 서양 액션 스타 중에서 왜소한 체격에서도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던 그가 중반부에 가서는 카리스마는 사라지고 찌질함만 남았습니다.(구피는 왜 이연걸이 이런 영화에 출연하여 자신의 액션 배우로써의 이미지에 먹칠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 외에도 이 영화는 간간히 유머를 삽입하여 때리고 부수는 거친 분위기 속에서 간간히 부드러운 유머로 분위기 전환을 꾀합니다. 하지만 진정 제가 이 영화를 보며 웃었던 장면은 실베스타 스탤론이 거들먹거리며 브루스 윌리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퇴장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뒷모습을 보며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저래.'라며 비아냥거리는 장면 뿐이었습니다. [익스펜더블]의 각본은 드웨인 존슨이 주연했던 [둠]의 데이브 칼라햄과 실베스타 스탤론이 썼다고 하네요.
한때 액션 스타의 양대산맥이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타 스탤론. 하지만 90년대 들어서 급격히 인기가 하락한 실베스타 스탤론에 비해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기 전까지 배우로써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액션 배우로써의 이미지에 한계가 있었던 실베스타 스탤론에 비해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액션배우는 물론 코미디배우로써도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익스펜더블]을 보니 실베스타 스탤론의 빈약한 유머 감각이 다시금 아쉬워 지네요.
[람보]가 되고 싶었던 [익스펜더블]
[익스펜더블]을 보기 전에는 [A 특공대]와 비슷한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익스펜더블]을 보고 난다음에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익스펜더블]과 비슷한 영화는 [A 특공대]가 아닌 [람보]였습니다.
[람보]는 [록키]와 더불어 실베스타 스탤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의 대표적인 영웅인 '람보'. 어쩌면 실베스타 스탤론은 그러한 '람보'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후반부, 이 영화의 무차별 액션이 그러한 '람보'시절의 영웅을 떠올렸는데... 후반부의 빌레나의 군인들은 마치 80년대 미국의 베트남 전 영화에 등장하는 베트콩처럼, 인간이 아닌 그저 죽여야할 버러지 같은 존재로 등장합니다. 찌르고, 베고, 쏘고, 자르고,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빌레나의 병사들은 죽어 나가는데... 그 수가 엄청나서 바니 일행의 활약상에 박수를 쳐주고 싶기 보다는 인구가 고작 몇 천명 밖에 안된다는 작은 섬 나라 빌레나의 앞날이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액션 영화에서 그러한 장면들에 너무 심각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쯤은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량 학살에 박수를 치던 시절은 80년대로 족합니다. 산드라를 구하고 몬로(에릭 로버츠)만 제거하면 될 것을, 수 많은 섬의 군인들까지 죽이는 설정은 아무래도 글로벌 시대의 액션영화의 추세에 역행하는 과도한 설정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영화를 보는 도중 구피는 조금 졸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제게 어쩌면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그랬냐며 절 원망합니다.
전 구피처럼 최악으로 재미없지는 않았지만 정말 많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익스펜더블]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닙니다. 단지 신구 액션스타들의 이미지를 통해 맛깔스러운 캐릭터를 구축하고, 그들의 활약상을 담은 재미있는 액션영화를 원했을 뿐입니다.(너무 많이 원한건가요? ^^)
하지만 실베스타 스탤론은 그들을 어렵게 모아놓고 80년대에나 나올 법한 골빈 대량학살 영화를 만들어 냈을 뿐입니다. 빌레나 군인들이 잔인하게 죽어 나갈 땐 액션영화의 쾌감보다는 '저래도 되나?'라는 걱정이 먼저 떠올랐고, 캐릭터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주인공들의 활약상은 그 어떤 감흥을 느끼기에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실베스타 스탤론이 한 물 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 [록키 발보아], [람보 4 : 라스트 블러드]를 통해 과거의 대표작들의 유명세를 등에 엎고 재기에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익스펜더블]이 그의 진정한 재기작이 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영화 자체가 오히려 [람보]시절로 역행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일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를까?
이 절호의 기회로 이런 영화 밖에 못 만들다니... 실베스타 스탤론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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