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리 언크리치
더빙 : 톰 행크스, 팀 앨런, 조앤 쿠삭
개봉 : 2010년 8월 5일
관람 : 2010년 8월 12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쭈니의 4D 관람기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 여름휴가 기간 내내 가족을 위한 운짱 노릇을 했던 저는 오늘 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며 블로그 관리도 하고, 제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관리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채워지지않는 허전함이 절 짖누르더군요. 생각해보니 여름휴가 내내 본 영화라고는 중소기업 관리팀장의 가슴에 못을 박은 [내 깡패 같은 애인]과 웅이의 체험학습을 위해 졸음을 참으며 억지로 본 [오션스]가 전부였습니다. 내 소중한 여름휴가를 재미있게 본 영화 한 편 없이 보낸다면 정말 억울할 것 같아 웅이도, 저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 [토이 스토리 3]로 여름휴가의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
[토이 스토리 3]만큼은 정말 재미있게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지금껏 저를 단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았기에 믿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재미있다.'가 아닌 '정말 굉장히 재미있다.'라는 감정을 느끼며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일반 관람료보다 두 배나 비싼 4D 관람을 결정하였고, 더빙이 아닌 자막으로 예매함으로써 [토이 스토리 3]를 재미있게 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냈습니다.
자!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4D는 일단 대만족이었습니다. 마치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탄 것같은 쾌감을 안겨 주더군요.
3D안경을 낀 상태이기에 의자를 아주 살짝 움직여 주는 것만으로도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나, 땅으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며, 악당이 주인공의 발목을 잡을 땐 의자 밑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제 발목을 살짝 건드려 줌으로써 저를 화들짝 놀라게 했습니다.
샤방샤방한 미남 인형인 켄이 등장할 땐 비누방울이 극장안을 가득 채워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고, 의자와 등받이에서 울퉁불퉁한 것이 움직이며 영화 속 캐릭터가 추락할 때의 충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토이 스토리 3]를 3D로만 봤다면 그 감흥이 별로 뛰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영화의 재미와는 별도로 [토이 스토리 3]를 굳이 불편한 3D안경을 쓰고, 일반 영화보다 비싼 관람료를 내며 봐야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D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제가 처음으로 4D를 경험한 것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보는 영화만이 아닌 느끼는 영화로써의 4D는 제겐 정말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토이 스토리] 그 후 15년. 모든 것이 달리졌지만 재미만은 그대로이다.
4D에 대한 경험담은 여기까지... 이제부터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역시 픽사의 애니메이션답게 [토이 스토리 3]의 영화적 재미는 제게 대만족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웅이와 수 많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대부분 웅이의 눈높이에 맞춰진 영화들을 보며 어른들이 보기엔 너무 유치한 애니메이션 때문에 실망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면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애니메이션의 팬으로써 최근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너무 낮은 눈높이가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하지만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틀렸습니다. 지금까지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극장에서 봤는데... 지금까지 절 만족시키지 못한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단 한 편도 없었을 정도로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와 어른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특별한 재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토이 스토리 3]도 마찬가지인데... 주인인 앤디가 대학생이 되어 다락방에 처박힐 위기에 처한 장난감들이 우여곡절 끝에 탁아소에 기증되고 그곳에서 너무 기존 장난감들의 부당한 처사에 대항한다는 어찌보면 너무나도 유치찬란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내내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느끼기 어려운 긴박감과 웃음, 감동을 어른인 제가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소재가 무려 15년 전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15년 전, 픽사가 처음으로 [토이 스토리]를 내놓았을 때 애니메이션의 주류는 디즈니가 주도하는 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의 대성공이후 픽사의 3D 애니메이션은 연이어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와 동시에 셀 애니메이션은 [라이언 킹]을 기점으로 서서히 하락세에 접어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토이 스토리]로부터 시작된 3D 애니메이션의 바람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주류를 셀 애니메이션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는 일대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하면, 이젠 모두들 3D 애니메이션을 떠오를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관객들에게 3D 애니메이션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3D 애니메이션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어 버린 것이죠. 그러한 상황에서 3D 애니메이션의 돌풍을 주도하고 있는 픽사가 새로운 아이디어의 3D 애니메이션이 아닌 15년 전 아이템인 [토이 스토리]의 세 번째 이야기를 뒤늦게 꺼내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픽사의 애니메이션에서 언제나 새로움을 발견했던 저는 당연히 [토이 스토리 3]가 불안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토이 스토리 3]는 그러한 제 우려를 단숨에 날려버렸습니다.
역시 관건은 새로움이다.
[토이 스토리 3]가 상영하기 전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상영할 땐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먼저 상영하였습니다. 이번에 상영한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바로 [낮과 밤]입니다.
[낮과 밤]의 주제는 단순합니다. 미지의 것, 새로움을 두려워 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픽사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움을 추구해 나갈 것이라는 관객을 향한 픽사의 굳은 맹세와도 같았습니다. 픽사가 디즈니에 합병되며 안전한 기존의 흥행 법칙에 안주하려는 메이저 제작사의 안일함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제겐 아주 시기적절한 메세지였던 셈입니다.
그러한 새로움에 대한 추구는 [토이 스토리 3]에서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 3]에서의 새로움은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의 세계, [벅스 라이프]의 곤충의 세계, [니모를 찾아서]의 바다의 세계, [몬스터 주식회사]의 괴물의 세계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소재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추억'이라는 추상적인 소재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하긴 돌이켜 보면 최근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에 집중했었습니다. '맛'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라따뚜이], '스피드'를 소재로 사용한 [카], '외로움'을 절절하게 그려냈던 [월-E]까지... 픽사가 굳이 15년 전 아이템인 [토이 스토리]를 다시 꺼내 든 것은 '추억'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우리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해준 장난감, 혹은 인형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 경우는 워낙에 로보트 장난감을 좋아해서 용돈이 생기면 동네 문방구로 달려가 100원짜리 조립식 로보트 장난감을 사와 열심히 조립하고 그 장난감들을 다락방에 일렬로 정렬해 놓고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붙여주신 제 어렸을 적 별명이 바로 '안드로 군단'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캐산]이라는 만화를 보신 분이 있다면 그 의미를 잘 아실 겁니다.)
나이가 들어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나, 둘씩 버려진 제 장난감들. [토이 스토리 3]를 보면서 저는 그렇게 제 기억 속에서 잊혀진 장난감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토이 스토리 3]의 우디(톰 행크스)와 버즈(팀 앨런)를 비롯한 장난감들의 처지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들은 이젠 대학생이 된 앤디에게 잊혀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버려지고, 혹은 기증될 위기에 처한 그들은 어떻게든 앤디의 곁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의 그러한 노력을 보며 전 제 기억 속에 잊혀진 장난감들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토이 스토리 3]는 그러한 방식으로 '추억'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제게 끄집어 낸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새로움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 3]의 새로움은 단지 '추억'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소재로 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새로움을 추구하였습니다.
'난 앤디의 것이야.'를 외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앤디의 곁을 떠날 수 없다고 외치는 우디의 행동은 사실 픽사가 외치던 새로움과는 약간 동떨어진 선택이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우디는 새로움보다는 기존의 주인을 원했고, 장난감의 기능인 어린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는 앤디의 곁에 그냥 남아 있거나 다락방에 처박혀 영원히 추억이 되기를 선택하려 했던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비극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에 전 [토이 스토리 3]의 후반부 쯤에서 결말을 예상하였습니다. 제가 예상한 결말은 장난감들이 모두 앤디 곁으로 돌아가고 앤디가 그러한 장난감들을 대학 캠퍼스로 가져가 대학생이 되었어도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과 영원히 함께 한다는... 상당히 보수적인 결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픽사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픽사는 [낮과 밤]에서 선언했던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잊지 않았고, 영화의 결말을 통해 그러한 새로움을 실천해 나갑니다. 영화의 마지막, 추억을 놓아 주어야 하는 앤디의 아쉬움은 영화를 보는 제게도 생생하게 전해지는데...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언제나 그랬듯 이번 역시 잔잔한 감동을 받으며 극장을 나서야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 웅이는 놀이터에서 제가 사준 포켓 몬스터 피규어를 잃어 버렸습니다. 아파트 수위 아저씨를 동원해 놀이터에서 장난감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그 장난감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웅이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잃어 버린 그 장난감도 지금 어디에서 널 애타게 기다리며 슬프게 울고 있을꺼야. 그러니 앞으로는 장난감 잃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해.'라고... 장난감을 다소 거칠게 가지고 노는 웅이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렇듯 [토이 스토리 3]는 웅이에겐 교훈을, 제겐 추억을, 그리고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지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움을 항햐 달려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줬습니다.
장난감들이 보욱원을 탈출하는 장면에선 그 어떤 액션 영화보다 마음을 졸이며 봐야 했고, 바비와 켄의 로맨스는 그 어떤 로맨틱 코미디보다 킥킥거리며 닭살 돋아했고, 마지막 장면에선 그 어떤 영화보다 가슴 찡한 감동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픽사가 있기에 전 나이 마흔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 없는 어른입니다. 그리고 전 그러한 제 철 없음이 자랑스럽습니다.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진 어린시절 나의 장난감들.
그들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준 것만으로도 난 이 영화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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