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더빙 : 시다 미라이, 카미케 류노스케
개봉 : 2010년 9월 9일
관람 : 2010년 9월 9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금단현상에 시달리다.
지난 8월 22일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이후 극장에서 단 한 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의 경우는 웅이 때문에 본 영화이니 제외한다면 8월 19일 [익스펜더블]을 본 이후로 무려 20여일 간이나 극장에서 본 영화가 없는 셈입니다. 그나마 극장에서 최근에 봤던 [익스펜더블], [악마를 보았다]가 제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했기에 전 근 한달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셈입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조금 무리한다 싶으면 세 편까지도 극장에서 영화를 챙겨보는 저로써는 굉장히 오랫동안 극장 출입을 하지 못한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든 일에 의욕이 없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이 영화 볼까?'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3D로 상영하는 극장에 분노를 느끼며 제 나름대로의 금단현상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저는 이번 주에 금단현상에서 탈출하기로 결심을 먹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는 목요일에 무작정 [마루 밑 아리에티]를 예매했고, 토요일엔 회사 동호회 모임을 극장에서 하자고 (부회장의 권력으로) 버럭버럭 우긴 덕분에 [해결사]를 보기로 했으며, 다음주 화요일엔 정말 오랜만에 [그랑프리] 시사회에 가기로 계획을 잡아 놓았습니다.
뭐 그 외에도 [시라노 연애 조작단], [무적자], [퀴즈왕], [슈퍼 배드] 등 추석 연휴를 노리며 마구 마구 개봉하는 영화들도 최대한 많이 챙겨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그 동안 절 괴롭혔던 금단 현상이 벌써부터 말끔히 사라진 느낌입니다. 극장에서 볼 영화 리스트만 봐도 괜시리 뿌듯해지는 이 기분... 왜 그동안 이 좋은 기분을 무시하고 금단 현상에 시달렸을을까요?
동심 프로젝트...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딱이다.
돌이켜보면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서 제 기대를 만족시켰던 마지막 영화가 바로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3]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전 웅이 핑계를 대며 극장에서 참 많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에 대한 만족도도 꽤 높은 것 같습니다.
제가 제 글에서 여러번 밝혔지만 전 정말 애니메이션이 좋습니다. 일반 영화에서는 특수효과를 써야만 겨우 겨우 구축되는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그려나가고, 이젠 어른이 되어 잊어버린 동심의 마지막 끈을 끝까지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애니메이션을 저는 사랑합니다. 물론 너무 어린아이 눈높이에 맞춘 애니메이션마저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런 면에서 픽사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은 제겐 아주 딱입니다. 스토리 자체가 어른이 봐도 재미를 느낄 수있고, 영화의 기술력과 재미, 감동까지 일반 극영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계에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킨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꼬박 꼬박 극장에서 챙겨 보았지만 셀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오랫동안 고집하고 있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저와는 극장에서의 인연이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모두 챙겨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극장에서 본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 감독이 연출한 [게드 전기 : 어스시의 전설]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렇기에 [마루 밑 아리에티]의 극장 관람은 제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와는 달리 결혼하고 나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뚝'하고 끊어버린(그녀가 동심을 잃은 것은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만...) 구피는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러 가자는 제 말에 시큰둥한 반응으로 어쩔수 없이 쫓아 나온 기색이 역력했지만, 갑자기 몰아닥친 폭우를 헤치고 극장으로 향하는 제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소인들의 세상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자연 친화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특징은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이 영화에서 인간들의 물건을 빌려 생활하는 소인들의 삶은 기계적으로 바뀐 인간의 삶과는 대조적으로 자연적입니다.
하지만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항상 그러하 듯이 소인들의 삶이 항상 유쾌하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들킬 것을 걱정해야 하고, 고양이, 까마귀들의 습격을 피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점점 개체가 줄어드는 종족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한 면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냥 행복한 픽사 애니메이션하고 다른 지브리 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무심한 듯한 고양이의 날카로운 표정에서 위협이 느껴지고, 까미귀의 그 우스꽝스러운 날개짓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우리 주변의 생활 소음은 그 어떤 공포영화에서의 음향효과보다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특히 영화의 후반,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소인을 잡아 병에 넣는 가정부의 모습은 우리 인간의 시선으로 본다면 웃기는 장면이지만, 소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 무엇보다도 섬뜩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장난끼 가득한 악의없는 행동들이 당하는 입장(개미가 될 수도 있고, 강아지나 고양이가 될 수도 있고)에서는 무시무시한 테러가 될 수 있음을 간접 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들을 멸종시키는 것은 비용절감을 위해 환경오염을 자행하는 악덕 기업이나 개발지상주의에 빠져 자연 보존을 등한시하는 정부가 아닌 우리들의 작은 무신경한 행동들 때문일 수도 있음을 [마루 밑 아리에티]는 보여 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영화는 마냥 웃으면서 볼 수는 없는, 그 동안 무신경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소멸되어 가는 것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
전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며 아련함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점점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소인들에 대한 영화의 시선 때문입니다. 인간 남자 아이인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결국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종할 것이라고...
지구 역사상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의 길을 걸어야만 했는지 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쇼우의 말은 사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생존의 법칙은 가혹한 것이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들은 슬프지만 멸종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아리에티는 외칩니다. 멸종되지 않기 위해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고... 그녀의 그 절박한 표정을 보며 저는 그 동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되었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들도 멸종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지구상에는 멸종위기에 빠진 수 많은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그들 역시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리에티처럼 말이죠.
언젠가는 인간도 멸종하게 될 것입니다. 환경에 적응하기 보다는 환경을 적응시키려 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자연이 얼마나 지켜보고만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소인들처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멸종되지 않기 위해서... 아리에티의 신념에 찬 표정을 보고 심장 수술을 앞둔 쇼우가 희망을 되찾은 것처럼 언젠가는 맞이할 멸종의 위기 속에서 우리 인간들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루 밑 아리에티]는 제가 어렸을 적에 너무나도 재미있게 보았던 [미래 소년 코난]이 연상되었습니다. 미래의 지구에서 멸종 위기에 빠진 인간들의 모험을 다룬 [미래 소년 코난]. 아리에티는 라나가 연상되었고, 스필러는 포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낙천적인 미소를 잃지 않았던 코난의 모험처럼... [마루 밑 아리에티]의 소인들 역시 그렇게 희망을 잃지 않으며 멸종의 위기와 맞서 싸우겠죠.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아련했던 제 기분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희망에 찬 미소가 나도 모르게 번져 나왔습니다.
어쩌면 소인들처럼 셀 애니메이션도 소멸되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전통에 대한 고집이 있는한,
셀 애니메이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소멸과 맞서 싸울 것이다.
난 그저 그들의 싸움을 조용히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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