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누도 잇신
주연 : 히로스에 료코, 나카타니 미키, 키무라 타에
이누도 잇신의 영화는 신뢰감이 간다.
일본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로써는 그래도 일본의 감독 중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단연 이누도 잇신을 선택할 것입니다. 사실 그의 영화라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 [황색눈물]이 전부이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워낙 인상깊게 보았기에 그는 단숨에 내게 일본 감독 중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다른 영화는 모두 제쳐두고 [제로 포커스]를 꼭 봐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누도 잇신 감독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영화라면 영화적 재미는 장담못해도 그래도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스릴러? 글쎄...
그러한 이누도 잇신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보기 시작한 [제로 포커스]. 이 영화는 명백히 스릴러 장르의 영화입니다. 데이코(히로스에 료코)는 맞선을 통해 만난 겐이치라는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결혼 일주일 만에 겐이치는 가나자와로 출장을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실종됩니다. 실종된 남편을 찾아 가나자와에 도착한 데이코. 그는 남편의 행방을 찾으며 자신이 모르던 남편의 과거와 그로인한 새로운 비밀들을 알게 됩니다. 과연 겐이치는 어떤 남자였으며, 그는 어디로 갔을까? [제로 포커스]는 데이코의 시선을 쫓아 끊임없이 겐이치를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로써 [제로 포커스]를 평가한다면 솔직히 낙제점을 주고 싶습니다. 겐이치의 과거는 너무 쉽게 드러나고, 한정된 캐릭터들로 인하여 범인으로 오해할 만한 캐릭터가 한정되어 초반 그의 등장만으로도 '설마 저 사람이 범인은 아니겠지?'라고 의심하게 됩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범인을 감추거나, 영화의 중요한 단서인 겐이치의 과거를 감추는 것을 노련하지 못하게 처리했는데... 덕분에 [제로 포카스]는 스릴러라고 하기엔 조금은 심심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스포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누도 잇신 감독이 정말로 [제로 포커스]를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릅니다. 너무 쉽게 드러나는 범인, 그리고 비밀들을 보며 어쩌면 애초에 이누도 잇신 감독은 겐이치의 실종과 그의 과거 비밀을 꽁꽁 감춰두는 것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누도 잇신 감독이 [제로 포커스]를 통해 진정 관객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영화의 오프닝씬에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씬은 2차 세계 대전에 출병하는 일본의 젊은 병사들의 모습을 흑백 필름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의 패전이후 일본이 패전의 후유증을 극복하며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1950년 대의 모습을 잡아냅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고 폐병에 걸린 동생의 둿바라지를 위해서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미군에게 몸을 파는 일을 시작한 사치코(나카타니 미키)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누도 잇신 감독이 [제로 포커스]를 통해 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곧 일본의 근대사이다.
사치코는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 받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위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돈 많은 사업가에게 접근하여 결혼에 성공하고 그의 재력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갑니다. 그렇게 장밋빛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데에 있어서 그녀의 과거는 걸림돌에 불과했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과거를 감추기 위해서 겐이치를 죽이고, 또 겐이치의 살해를 감추기 위해서 계속 끊임없는 살인을 저질러야 했습니다. 결국 그녀가 그토록 소망했던 일본 최초의 여성 시장을 자신의 손으로 이룩해 내지만 그녀가 소망했던 장밋빛 미래는 결코 그녀에게 오지 않습니다.
사치코는 바로 일본의 근대사입니다. 제국주의의 허상에 사로잡혀 아시아의 국가들을 침략하고 2차 세계대전을 벌이지만 패전한 일본. 하지만 일본은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음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자신이 저지른 과거에 대한 청산은 하지 않은채 오히려 외면하고 감추려고만 합니다. 결국 일본이 소망했던 경제 대국의 꿈은 이루어 졌지만 일본은 경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과거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치코가 만약 자신의 과거를 올바르게 청산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녀는 일본 최초의 여성 시장을 만들어내어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핍박받지 않는 세상을 향한 자신의 꿈을 차근차근 이루어 나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겐이치만 없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는 하나 하나가 올가미가 되어 그녀에게 되돌아오고, 결국 자신의 진정한 친구였던 히사코마저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사치코는 과거를 감추려 하면 할수록 그녀의 과거는 발목을 잡을 뿐입니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용의자 X의 헌신]의 뒤를 잇는 일본의 감성 스릴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경제 대국에 대한 장밋빛 꿈을 향해 잘못된 질주만을 계속하다 결국 최근 휘청거리고 있는 일본에 대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반성문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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