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잡담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3일!

쭈니-1 2010. 8. 2. 23:38

2010년 7월 31일 토요일

제 1단계 네비게이션이 날 물 먹이다.

 

주말이지만 회사내 동호회 모임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역곡 역으로 갔습니다.

원래 약속 시간은 오전 10시였는데...

역곡역을 처음 가보는 저는 아침 일찍 서둘렀고,

결국 역곡역에 도착한 시간은 9시 10분.

무려 50분 동안 역곡 역에서 혼자 서있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제 생애 가장 힘들었던 주말의 시작은 그러한 무료한 기다림부터 시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간단한 산책을 즐기고 점심식사로 맛난 버섯만두전골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볼링장에 가서 정말 오랜만에 볼링도 쳤습니다.

이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볼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구피로부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은 것입니다.

지난 주에 폐렴으로 인하여 응급실에 입원을 하셨지만 다시 상태가 좋아져 집으로 옮겼었는데... 결국 일주일만에 갑자기 그렇게 돌아가신 것입니다.

전 부랴 부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장례식장에 가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리고 제 차에 휘발유로 채워놓고 출발할 만반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하지만 하필 그 순간 네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월동에서 석관동에 가려면 내부순환로를 타야 하는데 제가 길치라서 내부순환로에 진입하는 길을 몰랐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비게이션이 작동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렇게 길에 차를 세워놓고 네비게이션 작동을 위해 거의 30분 동안을 끙끙거렸습니다.

차를 판 영업사원에게 전화도 해보고, 네비게이션 매립을 해준 업자에게 전화도 해보고, 구피의 아이폰으로 네비게이션이 작동을 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하는지 검색도 해보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결국 네비게이션은 먹통이었습니다.

결국 차를 놔두고 택시와 지하철, 버스로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2010년 8월 1일 일요일

제 2단계 이틀 밤을 새우다.

 

할아버지의 연세는 올해로 아흔.

지병도 없으셨고, 급작스러운 폐렴으로 하룻밤 응급실에 가신 것을 제외하고는 건강하셨기에 모두들 호상이라 했습니다.

제가 장손이다보니 삼촌들과 함께 상주였습니다.

상주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해서 이틀 동안 잠 한숨 못자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랜만에 본 사촌 동생들과 맥주를 마시기도 했지만

상주로써의 의무를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2010년 8월 2일 월요일

제 3단계 집에 불이 나다.

 

이틀 밤을 지새우고 발인을 앞둔 월요일 새벽.

여자들은 가까운 집에서 편히 쉬라고 보내고

남자들은 장례식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1시쯤 집에서 불이 났다는 다급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술을 마시던 사촌 동생들과 삼촌, 그리고 저는 정말 난생 처음 이렇게 빨리 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눈썹을 휘날리며 집으로 뛰어 갔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구피, 그리고 누나, 고모들과 숙모가 4층 빌라에 갇혀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층 계단에서부터 난 불은 어느새 새까만 연기가 되어 건물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소방차는 좁은 골목길인 탓에 쉽사리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머니를 진정시키며 발만 동동 구르는 것 이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사촌 동생은 어머니를 구하겠다며 빌라 안으로 진입하려다가 손에 화상만 입고 말았습니다.

결국 소방차가 도착을 했고,

다행히도 불길은 금방 잡혀 인명피해 없이 빌라에 갇힌 사람들을 모두 구출하였습니다.

유독가스로 인하여 목이 아프고 열이 난다는 어머니와 누나, 구피와 숙모님을 엠블런스에 태워 가까운 종합병원에 모셨습니다.

그렇게 월요일 새벽은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또다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었고, 할아버지 발인을 위해 퇴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화장을 위해 벽제 화장터로 갔습니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잠 한숨 못잤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영정사진을 들고 앞장서야 하는 상주였기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장례가 끝났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졸립고 피곤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떠내 보내고 어머니와 누나, 구피 등 불길로 인한 위험한 상황을 경험한 저는 아직도 그날의 두려움과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습니다.

너무 졸리워 자세한 이야기를 더이상 한다는 것은 무리이지만... 확실한 것은 제 생애 가장 힘들었던 3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