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잡담

'나도 제법 운전 잘하네!'라고 느끼는 왕초보의 착각

쭈니-1 2010. 7. 25. 22:11

운전 연수를 마치고 혼자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한지 어느덧 2주일이 지났습니다.

처음엔 과연 운전연수 강사가 없이도 혼자 운전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는데...

막상 해보니 어찌되었건 아직 작은 사고 한번 안내고 무난히 운전을 잘 하고 있네요.

운전대 앞으로 바짝 당겼던 운전석도 이제 뒤로 미뤄두고, 아무리 알던 길이라도 네비게이션을 꼭 켜두어야만 안심이 되었는데 요즘은 네비게이션 꺼두고 최신 가요 빵빵하게 틀어두고 온 몸을 들썩거리는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도 제법 운전을 잘하는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저녁... 할아버지께서 위급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신월동에서 의정부로 야간 장거리 운전을 하며 깨달았습니다.

내가 결코 운전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제가 어쩌다가 착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착각이 어쩌다가 깨졌는지...

 

시속 100km? 그거 별것 아니군.

 

제가 사는 곳은 신월동입니다.

그리고 회사는 부천입니다.

출퇴근은 신월 IC에서 경인고속도를 타고 부천 IC까지 무한대로 달려줍니다.

제가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을 해서인지 경인고속도는 언제나 한가했고,

제한속도 100km를 밟아주면 부천 IC까지는 10분 정도 밖에 안걸립니다.

이렇게 아침마다 100km를 밟아주다보니 처음엔 핸들을 잡은 손이 후달달 거렸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러면서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시속 100km도 이렇게 여유롭게 밟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젠 초보티가 벗어났나보다... 라고.

하지만...

지난 금요일 저녁 할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신월동에서 의정부로 향했습니다.

코스는 내부순화도로에서 동부간선도로를 거치는 것으로,

구피는 야간 운전이 위험하다며 차 놓고 가라고 만류했지만 전 '나 이젠 초보 아니거든'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차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길슨... 내부순환도로는 왜 일직선 길이 거의 없는 것인가요?

제한속도 70~80km구간을 달리며, 저역시 열심히 제한속도에 맞춰 악셀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요 넘의 길이 무조건 S자입니다.

툭하면 급커브 구간이고, 툭하면 터널도 나옵니다.

시속 70km에서 급커브 구간을 지나려니 나도 모르게 자꾸 제 차선을 지키지 못하고 옆 차선을 침범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면 제 뒤의 차들을 빨리 안간다고 빵빵거립니다.

이거 등줄기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더군요.

경인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밟았다고 난 이제 초보가 아니야...를 외쳤던 저는,

내부순환로에서 70km를 밟으면서도 급커브 구간을 씽씽 달리는 다른 차들을 보며 '아! 난 아직 초보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주차? 그거 그냥 하면 되는거 아냐?

 

저희 아파트 주차장은 참 널널합니다.

아파트 지하 1층은 차가 많지만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주차된 차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지하 2층 주차장에서 주차 연습 참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 주차장도 참 널널합니다.

특히 제가 아침 7시 20분 정도에 출근을 하면 사장님을 제외하고는(저희 사장님은 아침 7시에 출근하십니다.) 직원 중에선 제가 가장 먼저 출근을 하는 것이기에 회사의 널널한 주차장에 여유롭게 주차를 할수가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차하는 것 때문에 골치를 썩힌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목요일 직원들과 신선 설렁탕을 먹으러 차를 끌고 갔을 땐 주차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5분 정도만에 주차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전 또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주차? 이거 아무 것도 아니네... 라고...

하지만...

할아버지가 위급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의정부 백병원을 찾았습니다.

한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주차장에 차가 꽉 차있더군요.

주차를 하기 위해 여기 저기 눈치를 보다가 장례식장 한 켠의 자리가 남았길래 얼른 주차를 하였습니다.

사실 전면 주차를 해야 했지만,

빨리 할아버지께 가야 겠다는 생각에 대강 후면 주차를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할아버지를 뵙고, 다행히 괜찮으신 것을 확인한 저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차를 뺄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차는 했는데 제가 주차를 잘 못 해놔서 차를 빼다간 옆의 차를 긁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전 옆에 주차된 차가 빨리 빠져주기만을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할이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화에 저녁 식사도 못하신 어머니께 저녁 식사를 사드리며 제 옆의 차가 알아서 빠져나갔기만만을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밥을 먹고 나오니 옆의 차가 빠져 있더군요.

얼른 차를 빼서 부모님을 집에 모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부모님 집은 빌라이기에 주차 공간이 넓지 못합니다.

어떻게 또 후면 주차로 대강 주차를 했는데...

다음날 아침 차를 빼려니 또 애매한 곳에 다른 차가 세워져 차를 뺄수가 없더군요.

부모님께서 보고 계시길래 '괜찮아요. 제가 뺄 수 있어요.' 라고 호언장담하며 차를 빼려고 하다가 제 앞 오른쪽 범퍼를 주차장 벽에 긁고 말았습니다.

결국 집에서 자고 있던 누나가 나와 차를 빼줬습니다.

그러면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제게 한마디 던지더군요.

'야! 초보... 이것도 빼지 못하면서 운전은 제대로 하냐?'

우띠~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더니... 자기도 주차 못해서 동네 사람들한테 도움 받던 주제에...

암튼 그때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아직 난 주차하나 제대로 못하는 초보라는 것을... 

 

이제 난 최신 가요 들으며 운전한다!!!

 

제가 길치입니다.

몇 번 갔던 길도 잘 찾지 못해 헤맨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차를 구입할 때 무조건 에어컨은 없어도 되지만 네비게이션 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그래서 구피가 아예 네비를 매립하여 줬습니다.

출퇴근길... 사실 그 길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되었건 몇 년동안 항상 오가던 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괜히 불안했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여자 목소리가 안내를 해줄때마다 마치 운전 연수 강사가 제 옆에 앉아 있는 편안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출퇴근길 무조건 네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이젠 어느정도 자신감이 붙자 저는 구피에게 최신인기가요 CD를 선물 받고 신나는 음악을 크게 켜두고 따라 부르며 운전을 했습니다.

그리곤 착각을 했죠.

이제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난 운전 잘해... 라고...

하지만...

신월동에서 의정부를 가는 길.

초행길이었기에 저는 네비게이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로 안내판은 보지 않고 네비게이션만 뚫어져라 쳐다봐서 길을 잘못들기도 했고,

네비게이션만 쳐다보다가 차선을 넘어가 사고가 날 뻔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올땐 갑자기 네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어 네비게이션을 리셋하기 위해 도로 한가운데에서 시동을 꼈다가 켜기도 하는 위험천만한 만행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날 저는 최신 음악이고 뭐고 아무 것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여자 안내 목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직 나의 유일한 안식처는 네비게이션의 안내 목소리라는 것을...

그래서 아직 전 초보라는 것을...

 

오늘는 가족들을 태우고 공항 아마트에 갔습니다.

마트의 주차는 거의 전쟁 수준이라 바짝 긴장을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주차할 공간도 금방 찾았고,

주차도 두번 만에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난 자만하지 않으렵니다.

아직 내가 초보라는 사실을 알기에...

비록 경인고속도로에서 100km를 밟고, 아파트 주차장과 회사 주차장에서 수월하게 주차를 하고, 출퇴근 길에는 네비게이션 대신 최신 가요를 따라 부르며 운전을 해도...         

아직 초보 운전자라는 것을 지난 금요일 저녁에 운전을 하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