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이끼] -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다.

쭈니-1 2010. 7. 15. 15:21

 

 

 

감독 : 강우석

주연 : 박해일, 정재영, 유준상, 유선

개봉 : 2010년 7월 14일

관람 : 2010년 7월 14일

등급 : 18세 이상

 

 

Daum 웹툰 [이끼]를 독파하고...

 

제겐 윤태호의 Daum웹툰 [이끼]보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가 먼저였습니다. 강우석 감독이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의 차기작으로 [이끼]라는 영화를 감독하겠다고 밝혔을 때 저는 비로서 Daum웹툰의 [이끼]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저는 윤태호 원작의 [이끼]를 찾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순전히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를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마디로 제게 윤태호 원작의 웹툰 [이끼]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웹툰 [이끼]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사건들을 다룬 [이끼]는 악당이지만 카리스마가 넘치는 천용덕 이장과 찌질하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집념의 사나이 유해국의 대결을 다루고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사건에 대한 의혹은 커지고 순박하게 보이던 마을 사람들이 점점 섬뜩하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저는 손에 땀을 쥐고 [이끼]를 하룻만에 독파했습니다.

 

이거 영화로 제대로만 만든다면 대박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저는 나름 강우석 감독의 팬이라고 자부합니다. 강우석이  감독 데뷔한 시기와 제가 영화에 푹 빠져든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인지 강우석 감독은 지금까지 저와 궁합이 잘 맞는 국내 감독 중 한명으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봐왔던 강우석 감독의 영화와 웹툰 [이끼]의 분위기가 너무 달랐던 것입니다. 아니 다른 것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상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지론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재미를 강우석 감독은 거의 웃음에서 찾았는데 [이끼]는 그러한 웃음 코드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숨이 먹히는 스릴과 점점 커지는 의문 속에 한 남자의 외로운 사투. 과연 이러한 것을 강우석 감독이 어떻게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 낼까요?

처음 [이끼]는 강우석 감독의 [이끼]였지만, 이젠 윤태호 웹툰의 [이끼]와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가 교묘하게 제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영화 [이끼]가 개봉했고 전 그 결과물을 당장 확인하였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이끼]를 어떻게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시켰나?

 

강우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웹툰 [이끼]를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시키며 웃음코드를 삽입했다고 직접적으로 밝혔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제 예상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며, 가장 강우석다운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웹툰 [이끼]는 웃음코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한 원작에 어떻게 웃음코드를 삽입했다는 것일까요?

강우석 감독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천용덕 이장 캐릭터였습니다. 전직 형사였던 천용덕(정재영)은 잔인하면서도, 치밀하고,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이 손아귀에 쥐고 자신이 계획했던대로 이끌어 내려합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왕이고, 신이며, 두려움이었습니다.

강우석 감독이 정재영에게 노인 분장을 시키면서까지 캐스팅햇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천용덕 이장에게 웃음코드를 삽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치 [강철중 : 공공의 적 1-1]에서 정재영이 연기한 악당 이원술처럼 강우석 감독은 천용덕 이장이 웃음코드가 적당히 가미된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이길 바랬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강우석 감독의 계산은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틀렸다고 진단해 주고 싶습니다. 사실 강우석 감독이 직접 연출한 유일한 시리즈인([투캅스]는 1편만 강우석 감독이 만들었으므로 제외) [공공의 적]에서 가장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3편 격인 [강철중 : 공공의 적 1-1]입니다.

돈을 위해 자신의 부모를 죽인 패륜 살인범 조규환(이성재)을 공공의 적으로 설정했던 1편과 거대 사립교육재단의 비리를 담은 2편의 악당 한상우(정준호)에 비해,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의 이원술은 기업형 조직폭력배이면서도 가정에 충실한 보통 가장의 모습과 유머스러운 모습을 함께 보여줬습니다.

이 세 편의 악당 모두 사회에서 사라져야할 공공의 적이지만 그마나 가장 인간적이었던 악당이 바로 이원술이었으며, 그러한 영화의 요소는 오히려 시리즈중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을 가장 실망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끼]의 천용덕도 바로 그러한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할 공공의 적이 인간스러움을 갖추며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이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듯이, 한 마을의 왕이자 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천용덕 이장에게 유머스러움을 입힘으로써 그 악마적 카리스마를 반감시킨 [이끼]는 그 자체만으로도 원작인 웹툰 [이끼]보다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다지 폭발적이지 못한 웃음코드, 그리고 가벼워진 캐릭터들

 

강우석 감독이 천용덕 이장의 악마적 카리스마를 반감시키면서까지 가지고자 했던 웃음코드들은 그러나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애초부터 코미디에 능한 감독입니다. 최근은 주제의식이 살아있는 대작을 주로 만들다보니 감독시절 초기처럼 대놓고 코미디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영화는 언제나 유머 감각이 넘쳐 흘렀었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그러한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신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어차피 원작과 판박이로 만들 수가 없다면 자신의 스타일로 원작을 변형시켜야 겠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는 웃음코드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해서 갖춰진 웃음코드는 폭발적이지 못합니다. 간간히 헛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박장대소를 터트리지는 못합니다.

하긴 그것은 강우석 감독의 탓이 아닐 것입니다. 원작이 워낙 웃음코드와 거리가 멀었었으니 강우석 감독이 그러한 원작을 아무리 변형시킨다고해도 폭발적인 웃음을 심어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우석 감독은 웃음코드들 포기했어야 했습니다. 완벽하게 관객을 웃기지 못했다면 차라리 안웃기는 것이 나을 뻔 했습니다.

 

강우석 감독이 고집스럽게 웃음코드를 고수하면서 영화 [이끼]는 원작에 비해 잃은 것이 너무 많아져 버렸습니다. 우선 앞에서 언급했던 천용덕 이장의 악마적 카리스마가 반감된 것이 영화가 가장 크게 잃은 것입니다. 그가 과자를 아삭아삭 먹으면 관객은 잠깐의 헛웃음 짓게 되지만 천용덕의 카리스마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영화의 심각한 분위기를 확 깨는 김덕천(유해진)의 말한마디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아야할 영화의 분위기를 자꾸면 헛웃음 분위기로 돌려 버립니다.

유해국(박해일)으로 인하여 탄탄대로였던 자신의 미래를 잃고 지방 검사로 좌천된 박민욱(유준상) 역시 웃음코드로 인하여 원작의 매력적인 캐릭터에서 별로 웃기지 않는 코믹 캐릭터로 변형되어 버렸으며, 원작에서 가장 은밀한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캐릭터인 이영지(유선)는 영화에선 마을 사람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가 웃음코드로 인해 잃은 것은 가벼운 분위기와 가벼워진 캐릭터입니다. 이러한 헛웃음을 위해 원작의 무시무시한 분위기와 캐릭터들의 카리스마를 잃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손해가 큰 선택이었습니다. 진정 이번만큼은 강우석 감독이 원작을 자신의 스타일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스타일을 원작에 변형시켰어야 했습니다.      

 

 

마지막 반전은 없다고 이야기해죠. 제발...(스포 잔뜩)

 

게다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반전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성경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아야 한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기독교인이 아니라 정확히는 기억 못하겠네요.) 그리고 절묘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와 비슷한 형태로 죽어 나갑니다.

산에서 자신의 곗돈을 가지고 도망쳤던 친구를 엽총으로 살해했던 전석만은 산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섬에서 포주로 일하다가 불로 여자들을 모두 태워 죽인 하성규 역시 불에 타 죽습니다. 그렇다면 천용덕의 자살 역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해국의 아버지인 유목형(허준호)이 자살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실제로 원작에서 천용덕이 자살할 때 그 뒤에서 유목형의 원혼이 천용덕을 자살로 이끄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유목형은 자신이 천용덕과 마을 사람들을 벌할 수 없음을 알고 아들에게 자신의 임무를 물려주고, 마을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 것입니다.

 

원작이 그러했듯 영화도 거기에서 끝을 냈어야 했습니다. 마치 이영지가 모든 것을 꾸몄고, 유목형도 이영지가 죽였다는 식의 암시를 풍기는 마지막 반전은 소름이 끼치기 보다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영지는 어릴 때부터 마을 청년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고 임신당한 채 마을에서 쫓겨난 비련의 여성입니다. 결국 천용덕이 그에 대한 복수를 해주지만 천용덕 역시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수컷적 본능을 마을의 유일한 여성인 이영지에게 풀려 했고, 그것은 다른 마을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한 아픈 과거와 아픈 과거를 잇는 현재의 굴레에 살고 있는 여자가 쾌활한 웃음을 짓고 밤마다 수컷적 욕망을 위해 자신의 몸을 탐하는 남자들에게 농담을 하며 웃고 떠들고, 유해국을 음흉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슈퍼마켓에 배달온 남자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며 '빨리 빨리 안해'라고 성추행을 한다고요? 그러더니 유목형을 죽이고 그의 아들인 유해국을 이용해 자신의 복수를 한다고요? 에이~ 강우석 감독님은 농담도 잘하셔~

이 마지막 반전이야 말로 강우석 감독이 얼마나 원작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이끼]를 만들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영화 [이끼]는 강우석 감독은 자신과는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기 위해 옷을 발기발기 찢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무리 강우석 감독을 좋아하더라도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색한 춤을 추고 있는 그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옷이 몸에 맞지 않다면 옷을 바꿨어야 한다.

이렇게 옷을 발기발기 찢어 놓는다고, 맞지 않던 옷이 자신에게 딱 맞지 않는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