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인셉션] - 크리스토퍼 놀란, 관객의 무의식을 '인셉션'하다.

쭈니-1 2010. 7. 27. 11:19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와타나베 켄, 마리안 코티아르, 조셉 고든 레빗, 엘렌 페이지

개봉 : 2010년 7월 21일

관람 : 2010년 7월 26일

등급 : 12세 이상

 

 

논리적, 이성적 판단을 쓸모없게 만드는 꿈의 세계.

 

전 참 꿈을 많이 꾸는 편입니다. 단 하루도 꿈을 안 꾸고 넘어가는 일이 없을 정도이며, 하루에도 수 십개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봐서인지 몰라도 제 꿈은 참 드라마틱합니다.

그 중 제 기억에 남는 꿈은 제가 슈퍼 히어로가 되어 악당을 무찌르고, 약한 사람을 도와 주지만 제 특별한 신분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 앞에 당당하게 나서지 못해 눈물을 흘렸던 꿈인데... 그 꿈에서 깨어나보니 베개가 눈물로 홍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혹시 '뭐야? [스파이더 맨] 꿈이냐?'라고 반문하시는 분께 대답을 하자면 이 꿈은 제가 고등학교 때 꿨던 꿈으로 [스파이더 맨]이 개봉하기 한참 전이었습니다.

여하튼... 꿈을 꿀 땐 그 꿈이 진짜 같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꿈으로 인하여 잠시 잠에서 깨어나보면 꿈에 대한 여운이 남아 한참을 그 꿈에 대해 생각하고 음미하다가 다시 잠에 들곤합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면 대부분 꿈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고, 기억을 한다고 해도 새벽에 잠시 깨어 음미했던 꿈의 감흥은 사라지고 밋밋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제가 꿨던 슈퍼 히어로 꿈의 경우 꿈 속에선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나설 수 없는 것이 그렇게도 서러워 울었고, 새벽에 잠시 깨어나서도 그 여운이 한참 지속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선 '그게 뭐?'라며 모든 것이 시시해져 버리더군요.

 

꿈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같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물리의 법칙 따위는 간단하게 무시됩니다. 꿈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꿈 속에서 만큼은 감성적이 되어 버립니다. 이성적으로 말도 안되는 것이 많지만 감성적으로는 웃고, 울고, 아파합니다. 

[인셉션]이라는 영화가 그렇습니다. [메멘토], [다크 나이트] 등 영화사에 오래 남을 걸작을 만들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기에 개봉 전부터 기대가 컸던 [인셉션]은 하지만 막상 보니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기엔 스토리 라인이 너무 복잡하고, 꿈이 난무한 결과 다른 영화에선 통용될 수 있는 논리와 이성적인 가치는 이 영화에선 전혀 쓸모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저 꿈을 형상화한 현란한 비주얼과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독특한 결말만이 남아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하나 하나의 퍼즐을 맞추면 맞출수록 제 머리 속은 복잡해지고 스토리는 점점 미궁에 빠져 버립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메멘토]에서도 비슷한 장치들로 관객을 놀라게 했었습니다. 결국 [인셉션]은 기억을 꿈으로 대체한 블록버스터 [메멘토]인 셈입니다.

 

 

코브는 과연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인셉션]의 주인공은 타인의 꿈 속을 침투하여 생각을 훔치는데 1인자인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입니다. 그는 아내의 살해 누명으로 인하여 도망자 신세지만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언제나 집으로 돌아갈 그 날만을 기다립니다. 

그러한 그에게 아주 솔깃한 제안이 들어옵니다. 사이토(와타나베 켄)라는 기업인이 경쟁 업체의 후계자인 피셔(킬리언 머피)에게 자신이 물려받을 거대 그룹을 쪼갤 결심을 심어달라고 의뢰한 것입니다. 남의 꿈 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것이 아닌 남의 꿈 속에 들어가 그의 무의식을 이용하여 생각을 바꾸는 '인셉션'이라는 고도의 작업이 필요한 상황. 사이토는 자신의 외뢰가 성공하면 코브의 수배를 풀어 그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인셉션]의 시작은 바로 여기에서부터입니다. 사이토의 제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코브는 '인셉션'을 위한 최강의 팀을 구성하고 곧바로 피셔를 '인셉션'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합니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며 코브 일행은 위기에 빠집니다. 

 

여기에서부터 저는 혼란에 빠집니다. 피셔를 '인셉션'하기 위해 코브와 그의 일행은 꿈 속의 꿈, 그리고 그 꿈 속의 꿈이라는 복잡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하나의 꿈만으로도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스토리가 복잡한데, 이 영화는 꿈 속의 꿈으로 자꾸만 기어 들어갑니다.

그렇게 스토리 라인이 점점 복잡하게 꼬이는 상황에서 영화를 보는 제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코브가 피셔의 '인셉션'에 성공하여 자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입니다.

영화는 코브의 기억 속의 아이들을 간간히 노출시키고, 현실의 아이들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코브를 방해하는 무의식 속의 맬(마리안 코티아르)을 등장시켜 더욱 강인하게 코브의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의지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파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스토리를 복잡하게 꼬아 놓음으로써 제 머리 속은 복잡해졌고, 그러면 그럴수록 제가 집착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전제는 '코브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제 머리 속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인셉션'당하고 맙니다.

 

 

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인셉션'당했다.(스포 가득)

 

사람들은 누구나 해피엔딩을 꿈꿉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보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짓는 영화가 관객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 대부분이 해피엔딩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해피엔딩에 대한 소망은 관객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강렬한 욕망이고, 많은 감독들이 그러한 관객들의 욕망에 못 이겨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해피엔딩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바로 이러한 점을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관객이 무의식 속에 원하는 결말을 준비해 놓고 1차적으로 관객을 만족시킵니다. 코브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아이들과 행복하게 재회를 하며 영화가 끝이 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꿈일까요? 현실일까요?

단순하게 영화가 보여주는 결말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조금 복잡하지만 잘 짜여진 상업영화입니다. 누명을 쓰고 도망다니던 주인공이 결국 누명을 벗고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다는 스토리 라인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지만 모두가 원했던 아름다운 결말이니까요. 하지만 2시간 30분 동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서서히 '인셉션'당했던 저는 그러한 해피한 결말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코브는 꿈의 가장 밑바닥인 림보에서 사이토를 구출하여 현실의 세계에 온 것일까요? 영화의 결말이 현실이라고 느끼기엔 너무 의심쩍은 부분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도 나이가 들어 있지 않았고(영화의 초반 전화상의 아이들 목소리는 좀 큰 아이들이었습니다.) 코브가 비행기에서 깨어나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오고 아이들과 재회하는 모든 장면이 몽롱한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으며, 결정적으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코브의 토템이 끝내 멈추지 않았다는 점도 상당히 미심쩍습니다.

아니... 그렇게 의심을 하기 시작하자 과연 사이토의 의뢰 역시 혹시 현실이 아닌 맬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무의식 속의 염원을 담은 코브의 꿈이 아닌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고, 어쩌면 이 영화의 전체가 현실이 아닌 꿈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전 감독이 마련해준 결말을 편안하게 즐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러한 제 무의식 속에 다른 생각을 심어 놓습니다. '의심해라. 끝 없이 의심해라. 그리고 스스로 영화의 결말을 생각하고 완성해라.'라고... 지금까지 열린 결말로 끝내는 영화는 많았지만 이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전체의 스토리 라인을 의심하게 되는 영화는 진정 처음입니다.

 

 

이건 영화라기 보다는 거대한 꿈이다.

 

한 편의 영화를 봤지만 [인셉션]을 보고 나온 제 느낌은 하나의 거대한 꿈을 꾼 느낌입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고,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되는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그러나 현실보다 작은 일에도 겪한 감정을 지닌 꿈의 세계처럼 맬에 대한 격한 죄책감과 아이들에 대한 과도한 그리움이 쌓인 코브라는 캐릭터에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러한 코브에 대한 애착은 무의식 적으로 해피엔딩을 원하게 되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마련한 해피엔딩에 잠시 취해 만족감을 느꼈지만, 그에게 제 머리를 '인셉션'당한 탓에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무엇이 진실인지 의심하고 찾고, 스스로 구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셉션]은 굉장한 영화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제 머리 속을 헤집고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생각을 심어놓고 자신이 원하던 대로 생각하도록 조정합니다. 이토록 복잡한 스토리 라인을 가진 영화에서 이만큼의 만족감을 이끌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굉장한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배우들의 매력도 놀라울 정도로 출중한데... 무의식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코브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셔터 아일랜드]에서의 이미지와 교묘하게 겹쳐지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미국의 국민 여동생 엘렌 페이지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교해서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 매력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그녀의 존재 덕분에 그녀가 연기한 아리아드네가 단순히 피셔의 꿈을 설계하기 위한 설계자가 아닌 코브를 죄책감의 미로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만듭니다. 특히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미궁의 탈출을 도와주는 여인의 이름입니다. 캐릭터의 이름까지 관객의 머리 속을 '인셉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 놀란 감독의 치밀함이 엿보입니다.

특히 제가 가장 절묘한 캐스팅이라 생각하는 인물은 사이토 역의 와타나베 켄인데, 초반엔 냉혈한 사업가에서 중반엔 코브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헌신하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이미지로 급변합니다. 그러한 그의 급작스러운 캐릭터의 이미지 변신이 혹시 사이토의 의뢰 마저도 꿈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한 꿈의 세계에 빠져드는 느낌이 드는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천재 감독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는 걸작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관객의 머리 속을 '인셉션'하려는 발칙한 짓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인셉션]은 거대하지만 모호한 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 꿈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결코 깨고 싶지 않다.

마치 림보에 빠져 현실을 거부한 맬처럼... 할수있다면 이 꿈 속에 좀 더 머물고 싶다.